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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19-12-18 14:50:12, Hit : 109, Vote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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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자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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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인류가 이룩한 성과는 여러 방면에서 눈부신 바가 있습니다. 수렵 채취 시대에는 천연 동굴을 거처로 삼았으나, 인류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점점 집 짓는 기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요즘은 백층이 넘는 건물을 예사로 짓고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 우리나라의 삼성물산이 지은 부르즈 칼리파는 209층에 높이가 829m나 됩니다. 우리나라에도 여의도에 264미터의 63빌딩과 서울 잠실에 123층에, 555미터를 자랑하는 롯데월드타워가 있습니다.

또한 과거에는 여행을 할 때 주로 걸어 다니거나 짐승을 타고 다녔으나 지금은 자동차나 비행기, 고속열차, 기선 등을 만들어서 거리를 초월하여 왕래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지막 때가 되면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4)고 한 다니엘서의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통신의 발달은 또 얼마나 놀랍습니까? 몇 십 년 전만 해도 편지를 주고받고, 비싼 비용을 내고 시외전화를 했는데, 지금은 전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곳과도 즉시로 화상 통화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의학의 발달도 예외가 아닙니다. 심장이건 콩팥이건 간이건 대부분의 장기를 이식할 수 있고, 의술의 발달로 인간 수명이 크게 늘었습니다. 이러한 발전과 변화를 거론하자면 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어 인공지능시대가 열렸습니다. 아직은 초보단계지만 머지않아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신세계가 될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어떤 미래 학자들은 인공지능시대의 인류를 과거 인류와 구별하여 신인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기술 문명의 발달이 가져다주는 희망적인 면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면도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공해입니다.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비롯하여 농약의 사용으로 토양과 지하수가 거의 다 오염되었고, 화석연료의 과도한 사용으로 공기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었습니다. 강과 바다가 중금속과 오물과 쓰레기로 죽어갑니다. 플라스틱이나 비닐, 그리고 환원되지 않는 물질로 지구 전체가 오염되었습니다. 온난화 현상으로 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있으며, 기온상승으로 기후재앙이 일어나고 있으나 인류는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미세먼지 때문에 숨쉬기를 걱정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현대는 핵무기와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수천 기가 넘는 핵폭탄이 언제 어떻게 터질는지 알 수 없고, 체르노빌 원전사고나 후쿠시마 원전사고처럼 원자력발전소는 한번 사고가 나면 수습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시대가 열려 좋아지는 부분이 많더라도, 오염이나 핵이나 기후재앙을 막을 수 없다면, 인류의 미래는 희망이 없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영적 실상은 아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 세련미를 뽐내지만 사람들의 내면은 죄와 욕망으로 가득합니다. 마귀의 종이 되어 온갖 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살아갑니다. 로마서 3장은 인간의 실상을 이렇게 진술합니다. “10)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실로, 인간의 비극은 타락에서 비롯된 것이지,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데서 기인한 것이 아닙니다. 문명의 발달은 인간을 선량하게 만드는데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악함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전적 타락을 말씀합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제 힘으로 선을 행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찾지도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을 얻는데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한 존재입니다.

영적 무지가 인간의 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섞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고 말았습니다(롬1:22-23). 이 사실은, 세계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우상 숭배의 습관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상 숭배에 대한 욕망은 현대인의 마음속에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귀신들을 숭배하는 신흥 종교들을 따르는 자들은 늘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빙자한 이단들도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마치 더듬이가 망가진 곤충처럼 인간들은 영적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멸망 길로 내닫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를 구원할 수 없으므로 구원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께서 주도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타락하였을 때 이미 하나님께서는 구세주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뱀을 저주하시면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고 하셨는데, ‘여자의 후손’은 구세주 곧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 3:21). 가죽옷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그를 믿는 자들이 의롭다 함을 얻게 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인류 역사가 그리스도의 오심을 대망하는 한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세상 권력을 쥔 자들이 아니고, 공산주의자들의 말처럼 무산계급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오심을 대망해 온 성도들입니다. 인류를 대표하는 진정한 계보는 아담과 아벨과 셋과 에녹과 노아와 셈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유다와 다윗과 요셉과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거룩한 계보입니다. 이천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심으로 인류는 구원의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흑암에 거하던 자들이 빛을 보게 되었고, 저주와 사망과 사단에게 종노릇하던 자들에게 자유가 선포되었습니다.

오늘 봉독한 누가복음 4장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즈음, 어느 안식일에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하신 내용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이 예언을 읽으시고 책을 덮어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는지 주목하여 보는 회중에게 이르시기를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 자신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아시라는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들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들은 삼십년 동안이나 그들과 같이 지내던 예수님이 스스로를 그리스도라고 선언하자 도리어 예수님을 배척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의 배척을 당하실 것을 이 같이 예언했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1-3)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왜곡된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되 대단한 위용을 갖추고 출현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해서 외세를 물리치고 유대를 독립시키고 만국 위에 군림할 메시아 왕국을 세울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기대에 비추어 볼 때 예수님은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님을 낭떠러지로 끌고 가서 밀쳐 버리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그릇된 선입견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오늘날도 그릇된 선입견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어본 적도 없고,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도 무턱대고 기독교를 배척합니다. 또는 과거에 교회나 기독교인들로부터 받은 부정적인 인상에 사로잡혀 기독교 신앙 자체를 비난합니다. 우리는 이 같은 현실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복음은 인간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열어 주셔야 비로소 복음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가서, 어느 안식일에 강가의 기도처에 모인 여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날, 사도 바울의 말을 들은 여자들 가운데 오직 루디아 만이 바울의 말을 듣고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3절을 보니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또한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였을 때, 유대인들은 두 사도를 배척하였으나 많은 이방인이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이르기를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내가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이르기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게 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첫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가난한 자란, 우선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를 가리킵니다. 대체로 부유하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가난하면 마음이 낮아져서 주님을 영접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가난한 자’란 마음이 가난한 자를 가리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 함은 겸손한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스스로를 의롭다고 자부했으므로 예수님을 배척했으나, 세리와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음을 알았으므로 겸손히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던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경제적으로 매우 부요하였으나 그 때문에 신앙상태가 미지근하여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아 주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물질적인 부요가 그들의 마음을 교만하게 만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권면하시기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마음이 가난하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게 되고,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마음이 가난한 자들의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역사상 다른 나라에 포로로 끌려간 일이 여러 번 있었으므로 포로생활의 고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져서 포로가 되면 이미 자기 목숨에 대한 권리가 없어지고 사로잡은 자가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1) 예수님께서는 죄에 매인 인생을 자유케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 8:34)고 하셨습니다. 자연인은 선을 행하기보다 죄를 짓는 것을 훨씬 수월하게 합니다. 이는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죄의 사슬에 매인 인생들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친히 십자가에 달려 대속의 죽음을 당하셨으며 삼일 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죄에서 해방시켜 자유인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사망에 매인 인생들을 자유케 하십니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인간이 죄인되었고 사망의 권세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한 결과는 육신의 죽음 뿐 아니라, 영원한 지옥 형벌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결과,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이 의인되었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고 하셨습니다.

3) 예수님께서는 질병에 매인 인생을 자유케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의 많은 부분을 병자를 고치시는데 할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24절에 이르기를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고 하였고, 8장 16절로 17절에는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하였습니다.

메시아께서 우리의 질병을 대속하실 것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하였으며, 말라기 선지자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말 4:2)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질병에서 놓여나 건강한 삶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4) 예수님께서는 사단에게 매인 인생을 자유케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인류의 원수인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입니다(요일 3:8).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것은 사단의 머리를 밟아 부수시고 사단에게 매인 인생들을 자유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십팔 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를 보시고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하시고 안수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자가 곧 몸을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때, 회당장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못 마땅히 여겨 화를 내며 무리에게 이르기를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기를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단에게 매인 인생을 자유케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5) 예수님께서는 악습에 매인 인생을 자유케 하십니다.

악한 습관에 매이면 인생을 낭비하고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수가 성의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을 다섯이나 바꾸었습니다. 이 여인은 남성 편력의 나쁜 습관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자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그리스도를 만난 데 대하여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물동이를 버려둔 채 동네로 들어가서 “나의 행한 일을 말한 이 사람을 와서 보라, 이가 메시야가 아니냐?”고 외쳤습니다. 그 여인의 전도로 인해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불의한 재물을 탐했습니다. 그는 고질적으로 재물에 집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자 그 악한 욕심의 사슬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고하기를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죄악 된 습관은 인간의 의지로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도박으로 패가망신한 사람들, 또는 술이나 마약에 사로잡혀 종노릇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악습에 사로잡히면 빠져나오려 해도 불가능합니다. 애쓰고 노력해도 악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 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롬 7:19)라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악습에서 해방된 사람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외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악한 습관을 고쳐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맡기십시오. 새로운 피조물답게 거룩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사지백체가 다 소중하지만, 그 중에서도 눈은 보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앞을 볼 수 없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런데 육신의 눈보다 더 중요한 눈이 있는데, 그것은 마음의 눈입니다. 영의 눈입니다. 아람 군대가 도단 성에 있는 엘리사를 사로잡기 위해 성을 겹겹이 포위했습니다. 아침에 선지자의 사환이 밖에 나갔다가 이 광경을 보고 두려워 떨며 선지자에게 고하기를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라고 했습니다. 그 때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사환의 눈을 여시니 그가 보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두른 것을 보았습니다.

인류 최초의 우주인인 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1961년 4월 12일 사상 처음으로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지구궤도를 일주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귀환 후에 기자 회견을 하면서 “내가 우주에 나가 하나님을 찾아보았으나 하나님은 계시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그는 육신의 눈만 가졌지 영의 눈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971년 아폴로 15호를 타고 달을 밟고 돌아온 미국의 우주인 짐 어윈은 우주의 신비로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그 후 그는 전국을 다니면서 자기가 체험한 하나님의 솜씨와 사랑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불신자들은 물질세계만 보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영의 눈으로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면서 삽니다. 현대인들 가운데는 황금에 눈이 먼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욕에 눈이 먼 사람들도 많습니다. 육신의 눈은 밝아서 이 땅의 것은 잘 보면서 신령한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소경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의 눈을 뜬 성도들은 매일의 삶 가운데서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희년을 명하셨습니다. ‘제 오십 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니라’(레 25:10)고 했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은 매 7년 마다 안식년을 지키고 안식년을 일곱 번 지킨 다음 해, 곧 50년 되는 해에 전국에 나팔을 불어 눌린 자들에게 자유를 공포했습니다.

이를 희년이라고 하는데, 희년이 되면 이스라엘 자손으로서 남에게 종되었던 자들이 다 놓여났고, 남에게 팔아넘긴 가옥이나 전답이 원 주인에게로 되돌려졌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하여 자신을 종으로 팔았던 자들이나 기업의 땅을 남에게 넘긴 사람들은 이 희년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희년의 나팔이 울려 퍼질 때 이스라엘 자손들의 마음은 환희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이 땅에 오신 것을 이 희년을 선포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의 저주 아래 눌린 자들, 죄책에 눌린 자들에게, 사탄에게 종된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진정한 자유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 8:36)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희년을 맞이하여 참 자유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아메리카 합중국의 모든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켰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사망과 사단과 율법의 저주에 사로 잡혀 있던 인류를 해방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진정한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성경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와 해방은 완전한 것입니다. 그런즉, 이제 우리는 해방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릴 뿐 아니라, 아직도 죄와 마귀에게 종살이하는 사람들에게 자유케 하는 복음을 힘써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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