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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0-01-08 14:52:44, Hit : 147, Vote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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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행복한 사람

제목 없음

  오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은 전 세계인의 명절로서 기독교인이든 비 기독교인이든 기쁜 마음으로 서로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복을 기원합니다. 어렸을 적에 산타 클로즈 할아버지가 선물이 담긴 양말을 주고 간다는 전설을 사실인줄 알고 성탄절을 손꼽아 기다렸으며, 청소년 시절에는 성탄절 새벽에 추위를 무릅쓰고 성가대를 편성해서 성도님들의 집집을 다니면서 성탄 찬송을 불렀던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다녔던 교회에서는 성탄절 예배를 마친 후에는 일 년에 한번 전 교인이 다 함께 소고기 국밥을 먹었는데, 지금도 그 때의 그 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요즘은 성탄절의 열기가 많이 식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생활이 과거보다 바빠진 것이 주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아무리 일이 많고 마음이 분주하더라도 주님의 탄일을 기억하고 교회에 나와 경배하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 사람들은 부모님의 생신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형제자매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축하 모임을 갖지 않습니까? 하물며 어떤 이유이건 성탄절을 망각한다면 자신의 영적 상태를 진지하게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산타 클로즈가 있다고 믿는 어린아이들은 성탄 선물을 바라고 성탄절을 기다리며 선물을 받으면 성탄의 기쁨이 배가 됩니다. 그러나 철이 들어가면서 성탄절이 선물을 주고받는 날이 아니라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구세주 예수께서 탄생하신 날임을 알고 성탄의 참 뜻을 기리게 됩니다. 부모 슬하에서 생활하는 자녀들은 고생다운 고생을 할 기회가 거의 없으므로 인생의 어려운 사정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장성하여 부모를 떠나 독립된 인격체로서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질 때가 되면, 인생이 만만한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석가모니는 작은 왕국의 왕자로서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었으나 인생의 생로병사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려고 29세에 출가했습니다. 얼마나 고민이 컸으면 처자와 왕위를 포기했을까요? 그러나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는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10)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고 단언합니다. 석가모니의 위대함은 그가 인생의 비참한 실상을 직시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비참함을 깨닫는 것만 가지고는 불행한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해결책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될 뿐이라’고 단언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인류에게는 구세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구세주가 아니면 인류 가운데 구원 받을 사람이 단 하나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구세주를 필요로 한다는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걸 모르면 제 노력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복음을 거부하게 됩니다. 인간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은 죽음을 이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죽는 까닭은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구세주가 필요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아무리 지혜가 탁월하고 부귀를 누릴지라도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죽는다면, 우리는 결코 그런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영원한 멸망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옛 속담에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 석 자를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지 못했다면 훌륭한 인물로서 이름을 남긴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구주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이든 무명인에 불과하든 하나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생명책에 기록해 두셨으니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고후 6:9).

요한계시록 20장에는, 최후의 심판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11)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한번은 예수님께서 칠십 인 제자를 전도하러 파송하신 적이 있었는데, 얼마 후에 그들이 돌아와 기뻐하며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18)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20)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큰일을 해서 널리 이름을 알렸더라도, 심지어 노벨상을 수상했더라도,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여 영원한 불못에 던져질 수밖에 없다면, 유명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나 구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누가복음 2장에 단 한번 나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살았던 평범한 서민에 불과했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 역시 평범한 이웃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유대 역사책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므온을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로 인정하셨습니다. ‘의롭고 경건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실한 신앙인이라는 뜻이고,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다’는 것은 시므온이 메시아께서 오시기를 학수고대하던 사람이었음을 말해 줍니다.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고 한 구절을 보면, 그가 얼마나 신실한 성도로서 성령의 감화 가운데 살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간절한 소원은 죽기 전에 메시아를 만나 뵙는 것이었습니다. 성령께서 그를 감동하셔서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계시를 주셨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시므온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최대 관심사는 유대 사회에서 성공하고 널리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 죽기 전에 메시아 곧 그리스도, 구세주를 만나 뵙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대할 때 먼저 그 사람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관심사가 곧 그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를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시므온의 최대 관심사는 죽기 전에 구세주를 만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서점에 가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의미하는 ‘버킷 리스트’에 대한 책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버킷 리스트라는 영화도 있습니다. 죽기 전에 여행을 다녀와야 하는 곳이나 죽기 전에 먹어보아야 하는 음식 등을 소개하는 식입니다. 죽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인간관계 회복에 대한 목록도 있습니다. 당연히 사람에 따라서 버킷 리스트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버킷 리스트의 첫째 칸에 적어 놓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세주를 만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구세주는 우리 각 사람의 영원한 운명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하신 대로, 구세주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의해 그 사람의 영원한 운명이 판가름 납니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소중한 것을 소중히 알고, 하찮은 것을 하찮게 아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시므온은 이 가치 기준이 분명했습니다. 그는 무가치한 것, 세상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만나 뵙는데 집중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 생전에 구세주로 오신 아기 예수를 알아보고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요즘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또는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인자의 때’ 곧 주님의 재림 때가 노아의 때 및 롯의 때와 비슷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6)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28)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30)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 17:)

노아가 살던 당시, 이 세상은 사람들이 번성하고 물질적으로 번영을 누렸습니다. 사람들은 사업에 바쁘고, 물건을 만들어 사고파느라 바빴으며, 먹고 마시는 일에 바빴으며, 장가들고 시집가느라 바빴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오직 현세적인 번영과 즐거움을 누리는데 모든 관심을 집중했습니다. 그들은 홍수가 나서 멸망할 때까지 그것이 그들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정은 롯의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늘에서 쏟아 붓는 유황과 불에 의해 소돔성이 멸망할 때까지 소돔 거민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 위에 임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듯이, 노아는 온 세상 사람들이 번영과 향락에 취하여 때를 분별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홀로 깨어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분부에 순종했습니다. 무려 120년에 걸쳐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러려면 다른 일들에 관심을 분산시킬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 노아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순종하는데 마음을 집중해야 합니다. 세상의 즐거움도 맛보고,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본 따서 살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서서히 잃어버리고 나중에는 빈껍데기만 남아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게 되고 맙니다.

마태복음 24장 39절에는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이란 무엇에 정신을 빼앗기면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것도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질주합니다. 믿는 사람들도 세속적인 생활을 좋아하느라 하나님 섬기는 일을 등한히 하면 결국 믿음의 길에서 떨어져나가고 맙니다. 사도 바울은 말년에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 4:10)라고 말했습니다.

디모데와 데마는 한 동안 사도를 도와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계속해서 신앙의 진보를 나타냈으나, 데마는 한 눈을 팔기 시작하다가 결국 사명감을 망각하고 세상을 사랑하게 되어 사도 바울을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그것은 단지 사도 곁을 떠난 것을 의미하지 않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떠날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지경까지 추락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므온처럼 구세주 예수에 대한 생각으로 세상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는 시므온처럼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만나주시고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계시하신 대로, 요셉과 마리아가 결례를 행하려고 아기 예수를 안고 성전으로 들어오는 것과 그 아기가 바로 구세주로 오신 분이신 것을 알고 아기를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29)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시므온이 구세주로 오신 아기를 품에 안았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요?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그는 하나님께 아뢰기를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구세주를 보내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진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품에 안아보았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을 자기의 주님과 그리스도롤 영접한 사람은 지금 당장 죽어도 아쉬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인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구세주를 만나는 것입니다.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마음에 영접하여 천국의 백성이 되었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을 뿐 아니라 최상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경제활동도 하지 않고 사회를 등지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열심히 사업도 하고 직장생활도 하고 학생은 공부를 하고 주부는 가사를 돌봅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살든지 죽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데 목적을 둡니다. 구세주를 만난 사람은 그 시간 이후의 삶은 덤으로 누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구세주를 만난 그 때 이미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언제 세상을 하직할지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떠날 수 있습니다.

누가 가장 잘 살은 사람일까요? 구세주를 믿고 천국 가게 된 데 대하여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입니다. 임종의 순간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다가 천국 가게 된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기도를 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처럼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1)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들은 언제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기쁨으로 “아멘”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다른 일들은 우리가 구원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는 이 세상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을 많이 했느냐, 얼마나 착한 일을 많이 했느냐는 그리 의미가 없습니다. 형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났느냐가 중요합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에 대하여 모친 마리아에게 말하기를 “34)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된다고 했는데, 여기서 패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못하여 영벌에 떨어지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흥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조용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패하는 자들과 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해서 부귀를 누릴지라도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면 결국 예수님 때문에 패한 사람으로서 영원한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으므로 예수님 때문에 흥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공에 대한 기준을 성경적으로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또한 행복에 대한 기준도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성도들의 기준은 구주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삼십 여년의 길지 않은 생애를 오로지 예수님을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해 바쳤으므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눅 7:28)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위대함은 전적으로 구세주이신 예수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백성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구세주이신 것을 증거하기 위해 전생애를 바쳤으므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했던 시므온과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시므온의 생애가 구세주 예수님 때문에 의미가 있었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 때문에 태어난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만나 품에 안고 “29)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오신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품에 안아보았으니 그의 눈이 주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메시아를 기다렸으나 보지 못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정신을 차리고 기다리지 못하고 영적으로 졸며 자다가 정작 구세주께서 오셨으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늘 깨어 있었기에 구세주 아기를 알아보고 품에 안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기 위해 이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님들 역시 시므온과 같은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시므온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시므온은 구주께서 아기로 이 세상에 탄생하신 것을 보았으나 우리는 구세주 예수께서 인류의 대속을 완성하신 것을 사도들의 증언을 통하여 자세히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 땅에 태어난 보람이 있으며, 매일 매일의 삶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시므온이 구주로 오신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맛보았듯이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행복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구주 예수의 성탄을 기뻐하며, 구주를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의 심령에 구원의 기쁨과 감사와 능력이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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