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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0-01-17 22:49:37, Hit : 190, Vote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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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제목 없음

 오늘은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여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드디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대를 이을 아들을 주실 것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75세 때 하신 약속이 25년이 지나서 비로소 성취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감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듣고 땅에 엎드렸더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찌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생전에 이 모든 언약 가운데 오직 독자 이삭에 대한 언약이 이루어진 것을 보았을 뿐이지만, 성경은 나머지 언약들도 후대에 다 성취되었음을 증언합니다. 비유하자면, 이삭은 씨앗이 싹을 틔운 것에 불과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그 새싹이 점점 자라서 많은 새들이 깃들고 들짐승들이 그 그늘에서 쉬는 거대한 나무가 된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일점일획도 어김없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동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려면, 우선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알아봅시다.

첫 번째로, 아브라함이 경외한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가졌던 하나님께 대한 지식은 그의 사색이나 탐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기를 계시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본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데 대한 최초의 증언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언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75세난 아브라함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것을 보면, 그가 이미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음이 분명합니다.

창세기 15장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온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던 때에 있었던 일을 말해 줍니다. 북방의 왕들이 동맹을 맺고 남방의 왕들과 전쟁을 하였는데, 북방의 왕들이 승리하여 남방 연맹에 속해 있었던 소돔을 약탈하고 그 거민들을 잡아갔습니다. 그 중에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사병 318명을 거느리고 야간기습을 하여 북방 동맹군을 격파하고 잡혀간 소돔 거민들과 빼앗긴 재물을 찾아서 돌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승리했으나 내심 북방 왕들이 보복하지 않을까 하여 두려웠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이 어려서부터 양육한 종인데, 총명하여 양자로 삼으려 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말씀하시기를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지만, 아브라함은 ‘네 자손이 하늘의 무수한 별과 같이 번성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드디어 아브라함의 나이 99세가 되었을 때, 그러니까 독자 이삭을 낳기 한 해 전에,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창 17:1-2)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백세가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면서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한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심 없이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백 세와 구십 세난 노인들로서 자식을 생산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죽은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가능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전능하지 않으시다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천사들도 능력이 있지만 전능한 것이 아닙니다. 사탄과 악령들도 능력이 있으나 전능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 지음 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전능할 수 없습니다. 인간들이 과학기술을 의지하여 피조물인 것을 망각하고 마치 전능하기라도 한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교만한 생각을 가지면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음 받은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계시는 이십니다. 곧 자존자이십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모세가 양 떼를 인도하여 광야 서편에 있는 호렙 산에 이르렀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모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했습니다. 모세가 신기하여 가까이 다가갔더니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부르셨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또 이르시기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하시고,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자손을 해방시키실 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더구나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라는 성호의 뜻은 ‘스스로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우상 종교들은 ‘스스로 있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탄과 악령들 그리고 해와 달, 별들, 산과 강, 바다, 동식물들을 신으로 숭배하거나 상상 속에서 지어낸 것들을 신으로 섬깁니다. 우상 숭배의 배후에는 사탄과 악령들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우상이 허망한 것 같이 허망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그 믿음이 헛되지 않고 믿은 대로 이루어지는 은혜로운 결과를 누리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 사실을 웅변적으로 말해 줍니다. 그가 백세에 구십 세난 사라를 통하여 독자 이삭을 낳은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경외하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믿었던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곧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영원불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생활을 할 적에, 고기가 먹고 싶다고 울며불며, 애굽에서 살 적이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같은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모세는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구하기를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가로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찐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민 11:11-15) 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백성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되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이십일만 먹을 뿐 아니라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간을 먹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대답하기를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일 개월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민 11:21-22)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중해로부터 메추라기 떼를 몰아 이스라엘 자손의 진 사방에 떨어지게 하시니 백성들이 질리도록 고기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간구를 들으시고 해결책을 주셨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변함없는 능력으로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원하거든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약 1:6상) 하신 대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가 아무리 크고 어려울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할 때 놀라운 방법으로 해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브라함과 같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아브라함이 경외한 하나님은 미쁘신 하나님이십니다.

미쁘다 함은 믿을만하다는 뜻입니다. 무릇 말에는 미쁨이 있어야 합니다. 한자로 믿을 신(信) 자는 사람 인(人) 변에 말씀 언(言) 자가 붙어서 된 것입니다. 곧 사람의 말은 신용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에게도 미쁨이 있다면, 하나님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가진 미쁨은 크게 신뢰할 만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예레미야 17장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하였듯이, 사람은 그 마음이 거짓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미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 15:29)라고 했습니다. 변개치 않는다 함은 뜻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성이 거짓되므로 수시로 이해타산에 따라서 뜻을 바꾸므로 사람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다가 낭패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미쁘신 분이시므로 그 하신 말씀은 무엇이든지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언약의 하나님으로 계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조상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를 에덴에서 살게 하시며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16)…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고 하셨습니다. 대홍수 후에는 하나님과 노아와 및 모든 생물 사이에 무지개로써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하리라’(창 9:)는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도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런가하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언약들은 오늘 우리와 세우신 것이기도 합니다. 모세는 광야생활 40년을 마쳤을 때, 모압 평지에서 온 이스라엘 앞에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1)…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2)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3)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신 5:)

40년 광야생활을 마쳤을 때에는 출애굽 일 세대는 다 죽은 후였으므로, 모세는 그들의 아들딸인 2세대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했습니다. 호렙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은 일 세대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죽고 없으므로 더 이상 언급할 이유가 없으며, 이제 하나님의 모든 언약은 지금 살아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계승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할 이 세대 사람들과 언약을 체결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같은 원리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언약들은 오늘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와 세우신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열심히 읽고 듣고 탐구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세운 언약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언약은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지켜야 할 의무이고,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과 화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신명기 28장에는 복과 화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나옵니다. 거기 보면, 먼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하여 말씀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내리실 복과 화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1)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3)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율법을 불순종하면 화를 내리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15)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16)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17)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18)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19)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언약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 혹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 혹은 하나님과 오늘날 우리들 사이에 체결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구약의 이스라엘 자손은 이미 죽고 없으므로, 이제 하나님의 언약은 지금 살아있는 우리와 맺으신 것이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행함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언약의 성취를 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에 이르기를 “7)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8)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9)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이방인이지만,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녀로 인정을 받았으며, 그리하여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을 자격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쁘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복 된 언약의 성취를 누리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무슨 어려운 일을 만났습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미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도님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약속하신 대로 복된 응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세 번째로, 아브라함이 경외한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21장 33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라고 했습니다. 이 때는 독자 이삭을 낳은 후 몇 년 되지 않았으므로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이삭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생각하면서 희망찬 생활을 하던 때였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이 땅에 영원한 소망을 두지 않고 영원한 본향을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전능하시고 미쁘신 분이실 뿐 아니라 영생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이같이 말씀합니다. “8)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9)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13)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4)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15)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 이 땅에서도 번성하고 평안을 누려야 하지만, 그러나 더 본질적인 복은 영원한 천국에서 누리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일상의 삶을 성실하게 영위해 나가야 하지만, 이 땅에서의 번영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님을 알고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달려 나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영생에 대한 소망이 얼마나 컸던지 가나안에 살면서 평생 장막을 치고 거했습니다. 장막 곧 텐트는 임시거처를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지상의 삶을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 길로 여겼습니다. 그가 바라본 본향은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영원한 천국의 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앞두시고 제자들과 유월절 식탁을 나누는 자리에서 근심에 잠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1)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이 땅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의 집을 소망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아브라함은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일 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순종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자라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음으로써 믿음의 모범을 후대에 보여주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모든 언약이 문자대로 성취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약한 믿음의 상태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본받아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미쁘심과 영원하심을 믿고 오직 그 말씀을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살아가기로 다짐하는 성도님들에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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