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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0-02-10 12:39:13, Hit : 37,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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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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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는 설 연휴를 보내고 있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모처럼 바쁜 일과를 쉬고 가족 친지를 만나 따뜻한 인정을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명절이지만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은 것은 국가경제가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경제가 나빠질수록 국민들의 생활은 더 바빠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만큼 경제활동을 많이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경제가 나빠지면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경제활동 때문에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이 줄기 마련입니다. 주일을 지키지 못하면, 신앙의 원칙을 고수하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것에 대하여 마음이 편치 않고 하나님께 송구스럽지만, 대가를 치르고라도 그런 상태를 바꾸지 않으면 영적 침체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경제가 좋아져서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신앙생활에 열심을 낼 수 있을까요? 반드시 그렇다고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인생을 엔조이 하려는 욕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게 세속화되어 갑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가 직면한 위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쩌면 좋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 하는 질문에 바른 답을 갖고 있기만 하면 경제 여건이 어떻게 변하든지 상관없이 성도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로, 성도들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 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고 했습니다. 죄인이 구원을 받으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는 하나님의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은 인간이 의로운 행위를 하여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성도들의 첫째가는 신앙원칙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인정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실 때에는 오직 믿음을 보십니다.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위대한 조상들, 예를 들 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사무엘, 다윗,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등과 같은 분들은 하나 같이 믿음의 거장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믿음으로 이루어냈습니다. 그들의 생애는 믿음의 위대함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믿음은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입니다. 선진들에게 믿음은 삶의 원칙이고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드린 아벨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셨으며, 에녹은 300년 동안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었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거대한 방주를 지어 홍수 심판에서 그와 가족을 구원했으며,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났으며, 백세에 독자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는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고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꿈을 믿음으로 바랐더니, 노예의 처지에서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야곱의 가족과 천하 백성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지위를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편을 택했으며,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 민족을 구출해 냈습니다. 또한 그는 믿음으로 유월절을 제정하였고, 믿음으로 홍해를 건넜고, 믿음으로 40년 광야생활을 이끌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인물들을 한 사람씩 소개하려면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복되고 은혜롭고 위대한 생애를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경제위주의 시대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기 위해 많은 애로를 경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장애물이 많더라도 구원주 하나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아니, 시험이 많고 방해가 심할수록 더욱 더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미지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고 앞서 간 많은 선진들의 성공사례를 보고서 확신 가운데 믿음의 길을 걸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 고민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믿음은 우리 마음을 강하게 붙들어 주며 소망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어떤 힘든 형편 속에서도 소망을 붙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그는 백세가 되었으나 아들을 주시마 하신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할 것이라”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끝까지 소망했습니다. 로마서 4장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18)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19)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아직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여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믿음과 소망은 손바닥과 손등처럼 언제나 함께 합니다. 우리가 욥기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욥이 당한 환난은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동방에서 제일가는 부자였으며,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둔 다복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재앙을 만나 모든 재산을 잃었으며, 태풍에 지붕이 무너져 열 자녀가 몰사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온몸에 피부종양이 생겨서 재 가운데 앉아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말하기를 “그래도 당신이 순전함을 지키느냐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위로 차 멀리서 찾아온 세 친구는 욥의 형편을 보고서는 할 말을 잃었으나 곧이어 이 불행의 원인이 욥의 범죄 때문일 것이라고 여기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들은 위로는커녕 고통을 더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절망 중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욥기 23장 10절에서 그는 말하기를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고 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욥의 믿음을 귀히 보시고 그에게 은혜를 주셨으므로 병이 물러가고 건강이 회복되었으며, 다시금 열 명의 자녀를 주셨고, 이전보다 갑절로 부자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경제가 어렵다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더욱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 생활을 온전히 맡기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근거이므로 중요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것이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신앙의 기준입니다. 우리는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하나님을 섬기면 안 됩니다. 남들이 하는 것을 본 따서 하나님을 섬겨서도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섬겨야 합니다. 말세가 되어, 기독교를 표방하면서도 비성경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본받지 말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때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간혹 기독교인 가운데 암암리에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에 미신을 섬기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무슨 중요한 일을 앞두고 점쟁이를 찾아가서 길흉을 묻습니다. 그것은 무서운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미신에 대한 습관이 없는 기독교인이라도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돌이나 철로 만든 우상뿐 아니라 무형의 우상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탐심은 곧 우상 숭배’라고 했습니다(골 3:5). 돈을 사랑하는 것은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이며, 쾌락을 사랑하는 것은 쾌락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부모나 배우자나 자녀를 불문하고 무릇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되 말씀에 근거해서 섬겨야 합니다. 레위기 10장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산 아래 머물면서 성막을 짓고 제사장들을 세웠습니다. 하루는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분향을 해야 했는데,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분향했습니다. 그랬더니 불이 하나님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니 죽고 말았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의 귀한 직분을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으신 불을 향로에 담아 향을 살랐다가 죽임을 당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는 이들의 실패를 거울삼아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으신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우상숭배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불순종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사람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으면 선민의 초대 왕으로 세우셨을까요? 그런데 사울은 왕이 되고 나서부터 교만해졌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기를 반복했습니다.

한번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는 아말렉이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괴롭힌데 대하여 심판을 내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전쟁에서 이겼을 때, 모든 백성은 진멸하였으나 아말렉 왕 아각은 죽이지 않고 사로잡았으며, 가치 없고 하찮은 짐승은 죽이고 기름진 우양은 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하나님께 부르짖고 아침 일찍 일어나 사울을 만나러 길을 떠났습니다. 사무엘이 찾아왔을 때 사울은 말하기를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말하기를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비록 늦었더라도 사무엘의 지적을 받았을 때 솔직히 죄를 시인하고 용서를 구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사울 왕은 변명하기에 바빴습니다. 이에 사무엘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고 했습니다.

사울 왕은 시작은 좋았으나 중도에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다가 버림을 받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세 아들과 함께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는 순종의 사람 다윗을 택하여 사울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높여주시고 형통한 삶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생활의 기준이기도 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살아갈 때 형통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다윗은 시편 19편에서 그의 체험을 이렇게 진술합니다. “7)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8)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9)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10)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우둔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면 지혜로워지므로 남에게 속거나 사기를 당하는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성경은 사업의 성공 비결을 가르쳐 줍니다. “13)너는 네 주머니에 두 종류의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14)네 집에 두 종류의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15)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신 25:)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직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사람은 겸손하게 처신할 뿐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므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습니다.

성도들은 자기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받아 형통하게 되어야 합니다. 시편 127편에 이같이 말씀합니다. “1)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2)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혼자의 힘과 노력으로 살려고 하면 힘들고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혹 성공을 하고 부자가 되었더라도 마음의 초조감을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성도들은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었더라도 실은 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알기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고 평안한 마음가짐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만찬자리에서 제자들에게 “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고 하셨습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체포되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심문을 받으실 것이며, 날이 새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절박한 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요 10:11)고 하신 대로, 목숨을 버리기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새 계명을 주셔서 사랑을 강조하신 것은 사랑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표지와 같기 때문입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묻기를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하였을 때, 주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37)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고 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새로운’이라는 단어로 시간적으로 새롭다는 ‘네오스’가 아니라 ‘시간을 초월해서 언제나 새로운 것’을 의미하는 ‘카이로스’를 사용했습니다. “사랑하라”는 계명은 율법에 이미 명하신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모세 오경에 수록된 계명의 수는 613개인데, 이중 248개는 “하라”는 계명이고(Positive), 365개는 “하지 마라”는 계명(Negative)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계명을 단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곧 율법의 요점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계명을 다 언급하지 않고 다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랑의 수준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시간 나의 사랑이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에 비해 어느 수준인지, 주님의 새 계명을 지키고 있는지 진단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요한1서 4장 8절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먼저, 주님께 대한 사랑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여부를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입술로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이웃을 사랑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로마서 13장 10절에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합니다(요한1서 3:18).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시간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요,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원칙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은 곧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뢰하고 자기 명철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며,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에게 반드시 복을 내려주시고 앞길을 지도해 주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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