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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0-02-10 13:03:14, Hit : 38, Vote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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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라

 오늘은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자랑’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 자신이나 자기와 관계있는 사람이나 물건, 일 따위가 썩 훌륭하거나 남에게 칭찬을 받을 만한 것임을 드러내어 말함. 또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랑하고픈 심리를 갖고 있습니다. 자랑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나 대우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엄마들은 자기 아기가 너무 예쁜 나머지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모든 엄마가 자기 아기에게서 탁월한 천재성을 발견하고 놀라워하며 자랑합니다. 아기가 태어난 지 네다섯 달이 되면 스스로 몸을 뒤집는데, 자기 아기는 다른 아기들보다 훨씬 빨리 몸을 뒤집는 것을 보니 운동 능력이 뛰어난 것이 분명하다고 자랑합니다. 또는 아기가 나타내는 반응을 보면서 남다르다고 자랑합니다. 우리는 이런 엄마의 자랑을 별나게 여기지 않고 기꺼이 들어주며 함께 기뻐합니다.

또한 사람은 오랫동안 힘쓰고 애써서 어려운 일을 이루어냈을 때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은 교만한 마음으로 자랑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큰일을 이루었으니 나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자부심에 사로잡혀 자기를 자랑하기 시작하면 보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또는 비싼 옷이나 가방이나 집이나 자동차 등을 자랑하는 경우도 여기 해당합니다. 그것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내세우는 것이므로 교만한 마음에서 나온 자랑입니다.

기독교인은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됩니다. 기독교인도 자랑할 수 있지만,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고후 10:17)고 했습니다. 주 안에서 자랑하려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 15:10)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내게 있는 모든 유익하고 선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 나의 역량으로 이룬 것이 아닙니다’ 하는 고백이 뒤 따를 때, 그 자랑은 자기 과시가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유럽의 관문인 마게도냐에 건너가 최초로 세운 빌립보 교회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교인들의 대다수가 우상숭배의 관습을 가진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 개종한 상태였으므로 구약성경이나 율법에 대한 지식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담임 목회자가 없이 사도들이 전해준 말씀에 따라서 신자들이 자율적으로 신앙생활을 해 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이단적인 가르침을 받아들여 홍역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매우 단순하고 쉽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유대에서 온 거짓 선생들이 빌립보 교회 신자들에게 사도가 전해 준 복음에 어긋나는 교훈을 전해주어 신앙에 큰 혼란이 생겼던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은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 가지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으며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할례 받은 것과 절기와 안식일을 지키고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가려먹고 금식하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와 전도자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히 10:29).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경계하기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고 했습니다. 사도는 거짓 선생들을 가리켜 거리를 배회하며 사람들을 물어뜯는 들개에 비유하고, 신자들의 영혼을 파멸로 이끌어가는 행악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개들과 행악자들은 사도 시대 뿐 아니라 오늘날도 신자들의 영혼을 노립니다. 오늘날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들에게 속아 넘어가서 그들의 종노릇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은 분별력이 없는 좀비처럼 이단들이 주입하는 대로 믿고 맹종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복음의 진리로 무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거짓 선생들은 할례 받은 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자랑하였으나,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고 했습니다.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의 표피를 잘라내는 것 요즘말로 하면 ‘포경수술’을 말합니다. 할례는 선민의 조상 아브라함 때로부터 시행되었는데, 그것은 선민의 표지로서 유대인 남자는 누구나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할례는 의롭게 되는 것 곧 구원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 근거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라는 인정을 받았을 때가 언제냐 하면 할례 받기 이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행했을 때 그의 나이 구십 구세였습니다(창 17:24).

창세기 15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것이 이스마엘을 낳기 이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곧 85세 이전이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던 것입니다(창 15:6). 따라서 할례와 의롭다 함을 받는 것 곧 구원 받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자랑하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으며, 단지 자기를 자랑하는 교만한 행동에 불과합니다. 유대인이 할례를 받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운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됩니다. 사도는 그런 거짓 선생들을 가리켜 ‘개들, 행악자들, 손할례당’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분으로 충분합니다. 여기에 할례라든가 여타 율법의 행위가 필요치 않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 다른 조건들을 내세운다면 그런 사람은 주님과 상관없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누가 주님의 종이냐, 사도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생들은 그들 자신을 자랑했으나,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노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생들은 육체를 신뢰하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4)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내가 팔 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도가 그때까지 육체를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거짓 선생들이 육체를 내세운다면 그는 그들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서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그는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거짓 선생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할례를 사도는 율법대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사도가 순수한 히브리인의 혈통을 지켜온 가문 출신으로 유대 사회에서 귀족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셋째로, 그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곧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율법을 지켜왔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그는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할 때 찬성표를 던졌고, 증인노릇을 했으며, 대제사장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아서 기독교인들을 체포하려고 다메섹까지 달려갔던 사람입니다. 다섯째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이 말은 당시 유대인들의 기준에 의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가 자기 육체를 자랑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할례나 혈통이나 열심이나 율법을 지킨 이 모든 행위가 구원을 받는데 아무 소용이 없음을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이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다면 사도는 그들보다 더 많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구원 받을 공로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는 5대째 기독교인이고, 조상 중에는 순교자가 여럿 있다고 자랑하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일찍 기독교를 믿은 것은 좋은 일이고 순교자가 나온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자칫하면 육체를 자랑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럴수록 더 자기를 낮추고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만을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육체를 자랑하는 자들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가르침이 복음을 떠나 율법주의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율법주의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 복음의 진리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거짓 선생들의 그릇됨을 지적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수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23)…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고 했습니다.

거짓 선생들은 하찮은 자랑을 자랑했으나 사도는 주님을 위해 당한 고난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더 이상 그러한 것들을 자랑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말하기를 “28)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30)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우리의 장점이나 공로를 자랑하지 말고 오히려 약함을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적인 것을 자랑하지 말고, 자기의 부족함과 약한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이는 겸손한 척 하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만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주님을 잘 섬겨왔습니까? 주의 몸인 교회를 위해 헌신 봉사해 오셨습니까? 그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로 된 줄 알고 성도님들에게 직분을 주신 주님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뵙기 전에는 앞에서 언급한 육체의 자랑이 하나님 앞에서 그의 의를 내세울 근거가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엄격하게 율법을 지켰고, 다 많은 선행을 하였으며, 교회를 핍박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그가 기독교를 핍박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줄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뵌 그 순간, 지난날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전에 그가 의지하고 자랑했던 것들이 실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데 방해가 될 뿐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나 고상하므로 이전에 그에게 유익하던 것들은 거기 비하면 배설물처럼 하찮은 것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함을 아는 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 분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원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신앙생활에 열심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지 못하면 예수님보다 물질이 더 귀하고 세상 즐거움이 더 좋게 보이는 것입니다. 보화를 가졌으나 보화의 가치를 알지 못하여 하찮게 취급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은 사람은 자기가 유익하게 여겼던 모든 유리한 조건을 다 잃어버려도 아깝지 않으며 오히려 배설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 대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자랑하고 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최초로 클로로포름을 마취제로 사용한 심프슨 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클로로포름을 사용한 때가 1847년이니 그 이전까지는 마취제 없이 모든 수술을 시행했습니다. 그러니 환자의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수술하려면 환자의 손발을 침대에 단단히 묶어야 했으며, 고통 때문에 정신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심프슨 경이 클로로포름을 마취제로 사용하여 수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할 수 있게 길을 텄습니다. 요즘은 이 약품의 부작용이 알려져 마취제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오랫동안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데 큰 기여를 한 것이 사실입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심프슨 경에게 “당신의 최대의 발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질문한 사람은 심프슨 경의 입에서 “당연히 클로로포름의 발견이지요”라는 대답이 나올 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심프슨 경은 대답하기를 “나의 최대의 발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클로로포름을 수술실에서 사용하게 된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소중한 발견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수많은 환자들이 심각한 고통을 덜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심프슨 경은 그 약품을 최초로 수술에 사용하는 길을 열은 사람으로서 그 사실을 자랑으로 삼을 것 같은데,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을 더 큰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여러분의 가장 큰 자랑은 무엇입니까?

♪ 1.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2.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 전에 즐기던 세상일도, 주 사랑하는 맘 뺏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3.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유혹과 핍박이 몰려와도, 주 섬기는 내 맘 변치 않아.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이 찬송가가 저와 성도님들의 진실한 고백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사도처럼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의 고상함’을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선한 행위 때문이 아닙니다. 율법의 기준에 비추어 의롭다고 자부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의롭게 된 것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로움을 옷 입은 결과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 역시 우리 자신이 믿기로 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눈을 열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자랑할 것이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할 뿐입니다.

이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주 그리스도 예수를 더 깊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오는 동안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어서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도 소중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2장 2절에 그리스도를 일컬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라고 하였으며, 3절에서는 “그 안에는 (곧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아직 완전하지는 못하므로 열정을 품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지만 우리는 아직 그 전체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은 일부에 불과하며, 아직도 무궁무진한 보화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기를 원하고 갈망함으로 더 성숙한 신앙의 세계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 “예수 더 알기 원함은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예레미야 29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에게 말씀하시기를 “12)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13)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지도 않는데 거저 은혜를 받는 법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려는 마음이 없는데도 저절로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경우도 없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는데,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는 법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지 않는데, 내가 주님의 자랑이 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지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리지 않는 한 아무것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생을 비롯하여 모든 신령한 보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 곧 재물과 명예와 권력과 쾌락을 손에 넣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렸다면 실패한 인생에 불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육체를 자랑하지 마시고 오직 자기 생명을 바쳐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만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풍성한 생명을 얻으며 영적 싸움에서 승리를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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