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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0-03-17 21:02:06, Hit : 98,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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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믿은 대로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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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가버나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복음서에는 가버나움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갈릴리 지역의 여러 도시 가운데 하나로서 공생애 동안 예수님의 선교본부가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한번은 주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오셨을 때, 한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와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흔쾌히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시자, 백부장은 대답하기를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고, 백부장에게 이르시기를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찌어다”고 하셨더니, 그 시로 하인이 나았습니다. 오늘은 백부장의 간청을 들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첫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평가하기를 좋아하는데, 그것은 상대방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믿음이 있는 것 같은데 실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 앞에서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행동했으나 그것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꾸며낸 것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바리새인들을 일컬어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처럼 믿음이 없으면서 경건한 척 외식하는 사람은 주님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올라가셨을 때,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눅 21:3-4)고 하셨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헌금의 액수를 보지만, 주님께서는 헌금을 바친 사람의 형편을 감안하여 경중을 평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은 따로 서서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바리새인에게 존경을 나타내고 세리를 깔보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사람의 겉모습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믿음이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에게서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으며, 그것도 유대 민족을 지배하기 위해 주둔해 있었던 로마 군대의 장교였습니다. 선민의식이 강한 유대인들은 그러한 백부장을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국적이나 인종이나 사회적 위치 따위를 보시지 않고 그의 중심에 믿음이 있는지 여부를 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갖추고 있는 세상적인 조건을 보지 않으십니다. 얼마나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인지, 재산이 많은지 적은지, 학식이 얼마나 되는지, 젊은지 늙었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따위를 보시지 않으며 다만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입니다. 안식일에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있던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일로 유대인들과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대적하는 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요 5:40, 42)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의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가 겸손한지 교만한지를 보십니다. 교만한 자는 자기 역량을 의지하고 자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자는 자기의 부족을 시인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이 진실한지 거짓된지를 보십니다. “내 모습 이 대로 주 받으옵소서” 그렇게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은혜를 입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하나로 요약하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하는 문제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주님께서는 백부장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겸손과 진실함을 귀하게 보시고 그의 믿음에 응답해 주셨던 것입니다.

요즘은 기독교인 가운데 복음을 순수하게 믿기보다는 성공이나 번영을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구원의 복음을 기복의 복음으로 변질시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에 대하여 이 같이 증거했습니다. “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지(마 1:21), 이 땅에서 성공하고 번영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산상수훈 가운데 팔복의 가르침을 읽어 보면, 여덟 가지 복 가운데 세상적인 성공이나 번영을 약속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

이 가르침 속에는 천국 백성이 가져야 할 가치관과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주님의 인정을 받으려면 팔복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이 있는 사람을 위해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 사실은 성경이 일관되게 증언하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오직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긍휼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한이 없으십니다. 천지만물의 창조주시므로 우리의 형편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하등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선민 이스라엘 자손이라도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공생애의 초기에,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시고 성령이 충만하시어 고향으로 가셨을 때였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며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고 오히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고 하면서 배척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능력을 행치 않으셨습니다.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었다’는 표현은 믿음이 없는 자들을 위해서는 아무 능력도 행하실 마음이 없으셨다는 뜻입니다. 만약에 그런 자들을 위해 능력을 행하시면 마음을 열고 믿을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여 또 다른 이적을 보여 달라고 계속해서 요구할 뿐입니다. 믿음은 무슨 신기한 이적을 보아야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이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음부에 떨어져 불꽃 가운데서 고통하던 부자가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그러나 그의 청은 거절당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부자는 포기하지 않고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고 요청했습니다.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찌니라”고 하자,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라고 대꾸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말하기를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가서 천국과 지옥을 말해 준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것 같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만약에 무슨 신기한 것을 보면 믿게 된다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을 보고서도 믿지 않은 자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믿음이 없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기적을 본 자들은 구경꾼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천국 잔치에 참석한 자들이 아니라 구경삼아 온 자들이므로 잔치의 진수를 맛볼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읽어 보면, 예수님의 이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믿음의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백부장은 이방인이었으나 주님께 인정받은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호소를 들으시고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셨으나 그는 대답하기를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명령 앞에서 중풍병이 복종하여 떠나갈 것이라고, 예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백부장의 대답을 들으셨을 때 예수님께서 기이히 여기셨습니다. 곧 놀라움을 금치 못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선민의 자부심을 가진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인 백부장의 입에서 이런 믿음의 고백이 나왔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찌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주님의 이적을 체험하기 원하시거든 백부장처럼 여러분의 믿음을 주님께 나타내 보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5)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눅 4:) 나아만은 아람나라의 군대 장관이었고, 사렙다 과부는 시돈나라의 가난한 백성이었으니, 둘 다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두 사람은 다 믿음으로 파격적인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대에 살았던 선민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는 그 같은 은혜를 받은 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우리 믿음을 주님께 나타내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곧 주님에게서 우리 믿음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이적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셨을 때, 백부장은 대답하기를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백부장은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는 것이 너무나 송구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그들과 한 자리에 있는 것조차 피했습니다. 이방인과 사귀는 것 자체가 부정한 일이었습니다. 백부장은 이런 유대인의 규례를 알았으므로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는 것이 주님께 대한 큰 결례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백부장의 이 같은 언행은 그가 예수님을 위대한 랍비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친히 그의 집에 오실 것도 없이 말씀으로도 얼마든지 명하시면 중풍병이 복종하고 그의 하인에게서 떠나갈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하신 사람이시며 동시에 완전하신 하나님이라고 증언합니다. 이사야 7장 14절에 예언하기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는데, 마태복음 1장 23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가리켜 임마누엘이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신 독생자이신 것을 증언합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하신 요한복음 1장 18절 말씀이 바로 그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자기가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신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고 하셨으며,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고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은 이런 구절로 시작합니다.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창세기 1장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창조의 주역이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시며, 그가 인성(人性)을 취하시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사도 요한처럼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함을 경험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뵈었을 때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다”(요 20:28)라고 고백하였고, 주님께서는 그의 신앙고백을 받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복음서를 저술한 목적에 대하여 “30)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수많은 이적을 행하신 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한번은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시므로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는데, 그만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겁에 질려 고물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하고 외쳤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하시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며 서로 말하기를 “이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라고 했습니다.

공생애의 초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안식일에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는데,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꾸짖어 이르시기를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즉시로 나왔습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다 놀라 서로 말하기를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보리떡 다섯 개로 장정만 오천 명이나 되는 큰 무리를 배불리 먹이고도 남은 부스러기를 거두니 열 두 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 이처럼 병을 명하시니 병이 복종하고 떠나갔으며, 바람과 물결을 명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물결이 잔잔해 졌으며, 귀신을 명하시니 귀신이 항복하고 떠나갔으며, 이적의 떡으로 무리를 먹이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낸 표적이었던 것입니다. 구원 받는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는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 대속을 위해 십자가 죽음을 당하셨으나 무덤에 장사되신지 삼 일만에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때가 되면 하늘 구름을 타시고 강림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인정받는 믿음이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영원히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이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올 때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믿음을 나타내 보일 때 백부장의 간구를 들어주신 것처럼 우리 기도에도 응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지만, 믿음이 없거나 반신반의하는 사람에게는 마치 계시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백부장과 같이 주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순수하고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기이히 여김을 받고 “이 땅의 기독교인 가운데서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는 인정과 함께, “네 믿은 대로 되라”하시는 응답을 받아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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