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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0-05-20 21:42:25, Hit : 19,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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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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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세상을 정글에 비유하기를 좋아합니다. 만약 우리가 밀림 속에 떨어졌다면, 급선무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측 불가능한 위험한 상황 가운데서 생존의 방안을 찾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글에는 사자나 곰, 표범과 같은 맹수 뿐 아니라 맹독을 가진 독사나 먹이를 통째로 삼키는 거대한 뱀이 우리를 노리며, 말라리아모기를 비롯하여 수많은 독충이 생명을 위협합니다. 정글에서는 법이나 질서, 도덕이 소용없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 사회는 법과 도덕, 양심에 의해 사는 것이 원칙일 것 같은데, 사람들은 오히려 정글에 가깝다고 느낍니다. 곧 법과 도덕과 양심에 의해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물리적인 힘이나 금력, 권력에 의해 지배되는 정글과 같은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정글의 법칙을 배워서 적용해 나갑니다.

사악한 자들이 큰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사람들을 꾀어 재산을 빼앗는가하면, 정의를 빙자해서 욕심을 채우는 자들도 있습니다. 누구라도 자칫 잘못하면 악한 자들의 꾀에 속아 넘어가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번에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N번방 사건을 보면 그 주모자들이 얼마나 사악한 짓을 했는지 놀라울 지경입니다. 더구나 성 착취물 동영상을 만들어 돈을 받고 유포한 범인들이 하나 같이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나이로 사람을 평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청년들은 세파에 찌든 어른들보다 건강한 삶을 추구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비유하자면, 그들은 정글에서 생존하는 법을 일찍 터득한 젊은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기 마련입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코로나 사태와 같은 재난은 나만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겪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한 평생 사노라면 수많은 우여곡절을 만납니다. 질병에 걸리기도 하고, 실직을 하기도 하고, 슬픔에 빠지기도 하고, 가족이나 친지들 때문에 마음 아파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은 나만 잘한다고 피할 수도 없습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코로나 역병이나 그로 인한 경제공황이 적절한 사례가 될 것입니다. 나의 탓이 아니지만 모든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그런가하면 우리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겪지 않으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당하는 시련과 시험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끊임없이 시험 당합니다.

아삽이라는 성도는 괴로운 마음을 이 같이 토로합니다.

“1)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2)나는 그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했구나.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했구나. 3)그것은, 내가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4)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며, 몸은 멀쩡하고 윤기까지 흐른다. 5)사람들이 흔히들 당하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다. 6)오만은 그들의 목걸이요, 폭력은 그들의 나들이옷이다.

7)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쪄서, 거만하게 눈을 치켜뜨고 다니며, 마음에는 헛된 상상이 가득하며, 8)언제나 남을 비웃으며, 악의에 찬 말을 쏘아붙이고, 거만한 모습으로 폭언하기를 즐긴다. 9)입으로는 하늘을 비방하고, 혀로는 땅을 휩쓸고 다닌다. 10)하나님의 백성마저도 그들에게 홀려서, 물을 들이키듯,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11)덩달아 말한다. "하나님인들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무엇이든 다 알 수가 있으랴?" 하고 말한다. 12)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가 악인인데도 신세가 언제나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는구나.

13)이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내 손으로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 14)하나님, 주님께서는 온종일 나를 괴롭히셨으며, 아침마다 나를 벌하셨습니다. 15)"나도 그들처럼 살아야지" 하고 말했다면, 나는 주님의 자녀들을 배신하는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16)내가 이 얽힌 문제를 풀어 보려고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내가 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시 73:, 새 번역 성경)

아삽의 시편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겪는 심적 갈등을 적나라하게 말해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불합리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형편을 만날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상실하는 일만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은 이 악한 세상에게 굴복하는 것을 의미하며, 영영한 파멸을 자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시련의 때에 취할 신앙의 태도가 무엇일까요? 시편 121편이 그 답을 일러줍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산을 향하여 눈을 들어야 합니다.

“산을 향하여 눈을 든다” 함은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진 상황에서 취하는 태도입니다. 이 성도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강구해 보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고 산을 향하여 눈을 들었습니다. 이 성도가 바라본 산은 예루살렘의 시온 산을 가리킵니다. 그 산 위에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서 있었습니다. 따라서 산을 향하여 눈을 들었다는 말은 곧 성전을 바라보았다는 뜻입니다.

이 성도가 눈을 들어 성전을 바라본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있는 사람은 곤란한 일을 만났을 때 자기의 역량을 의지하거나 사람들의 도움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성전이 서있는 시온 산을 향하여 눈을 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이 성도는 시온 산을 바라보면서 자문자답합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로써 우리는 이 성도의 확고한 신앙을 대합니다. 그는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명하시니 빛이 생겨났습니다.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온 우주 삼라만상이 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당면한 일이 아무리 크고 지난할지라도 하나님께는 조금도 문제가 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우리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걱정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능력 밖의 일이라면 사정이 다릅니다.

엘리 위젤이라는 유대인이 쓴 ‘나이트’ 곧 밤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저자가 소년 시절에 겪었던 죽음의 수용소 경험을 소설 형식으로 진술한 것입니다. 그가 열 살 쯤 되었을 때, 하루는 나치 대원들이 트럭을 타고 들이닥쳤습니다. 확성기로 유대인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몇 시까지 간단하게 짐을 꾸려 광장에 모이라고 했습니다. 친위대원들은 유대인들을 화물열차에 태웠습니다. 겨울인데 폭설이 연일 내리는 가운데 저자와 아버지와 한 무리의 유대인들이 지붕도 없는 열차 짐칸에 실려 강제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영문도 모른 체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에 의해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아야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처지를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는 다행히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당시의 참상을 소설과 강연으로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상의 하나님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치가 멸망한 후에, 독일의 어느 집 지하실 벽에 나치를 피해 숨어 지냈던 어느 유대인이 쓴 이런 글귀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태양이 빛나지 않을 때에도 태양이 있음을,

나는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사랑이 있음을,

나는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에도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

아무리 힘든 형편에 놓여 있더라도 우리가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잊지 않고 앙망한다면 소망이 있습니다. 누구나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나가면 의기양양해서 불가능이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섰다고 생각할 때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욥을 보십시오.

그토록 만사형통하던 그에게 재앙이 연거푸 엄습하여 그는 아무것도 없는 빈손이 되었고 온몸에는 악성 종양이 생겨 죽을 고생을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 재앙이 임할 것을 욥이 단 한 번이라고 예상했을까요? 그러나 재앙은 우리가 생각지 못하는 순간에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믿고 으스대는 것은 미련한 짓입니다.

예레미야 9장 23절, 24절에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위기를 만났을 때 사람들을 향하여 도움을 구하면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도우심을 구하면 소망이 있습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는 마흔 살에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찾아와서 전하기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아직 자식들이 어려서 그를 이어 나라를 다스릴 형편이 못되었고, 더구나 그 즈음에는 북방의 강대국 앗수르의 대군에 의해 예루살렘을 포위당한 상태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전언(傳言)을 들은 히스기야는 침상에 누워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하고 심히 통곡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이사야에게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이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너를 위한 징조이니 곧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그가 이루신다는 증거이니라 보라 아하스의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병에 걸려 영락없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을 바라고 눈물로 간구하여 기적을 체험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서는 위기를 만났을 때 자기의 무능을 보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히스기야와 같이 눈을 들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앙망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눈을 들어 하나님을 앙망할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도와주실까요?

먼저, 실족치 않게 해 주십니다. 3절에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실족’이란,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시련을 만났을 때 끝까지 믿음으로 이겨내지 못하고 시험에 들어 범죄하는 것을 말합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가 버리는 신자들이 생겨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떡을 얻어먹기 위해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사람들처럼 오늘날도 세상 것을 위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생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다만 현세적인 복을 받기 원해 종교생활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생명의 주님을 끝까지 따르지 못하고 중도에서 실족해서 세상으로 가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은 영혼의 구원을 얻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실족하지 않으려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세상 유혹과 마귀의 시험에 실족치 않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4:12)하신 대로, 자기 지혜를 믿고 행하면 결국 실족하여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하나님을 앙망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걸음을 지켜주셔서 실족치 않고 의와 평강의 길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위험에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3절에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고 했습니다. 요즘은 산에 호랑이나 늑대와 같은 맹수들이 없어졌습니다. 그렇지만 과거보다 안전한 세상이 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위험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문밖을 나서면 질주하는 수많은 차량을 대합니다. 언제라도 사고가 날 여지가 있습니다. 건물들이 밀집해 있고, 집집마다 전기 제품을 많이 사용하고, 보일러와 가스 주방기기가 설치되어 있어서 누전이나 가스 누설로 인한 화재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생활이 편리해진 대신에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자연재해나 교통사고나 화재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악한 사람들에 의한 범죄입니다. 개인적인 원한도 없이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는 패역한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인신매매가 공공연히 자행되는 사회입니다.

그뿐 아니라, 부정부패가 심해서 자의건, 타의건 부정에 연루되기 쉽습니다. 도처에 우리를 넘어뜨리고 망하게 만들려는 함정이 널려 있습니다. 인구가 많고 사회가 복잡해져 가는데 사회안전망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심약한 사람들 중에는 공황증에 걸려 외출도 하지 못하고 불안 속에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불꽃같으신 눈으로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유능한 경호원이라도 경호 대상을 완벽하게 지켜줄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악한 세력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강한 자라도 하나님처럼 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91편을 지은 성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1)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2)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5)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6)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7)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악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3절에 하나님을 일컬어 “너를 지키시는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호자가 되셔서 지켜주시는데 누가 감히 우리를 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이같이 대우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된 성도들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5절에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늘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고 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늘의 고마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낮에 내리쬐는 햇빛으로 곤비한 때 큰 바위를 만나 그 그늘에 들어가면 얼마나 시원한지 모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눈을 들어 하나님을 앙망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참 평안을 주십니다. 엄마 품에 안긴 갓난아이는 주위 여건이 어떠하든지 간에 한없는 평안을 누립니다. 갓난아이의 평안은 자기 엄마를 절대적으로 믿는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품에 안겨 있는 성도들에게 어찌 평안이 없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사 49:15,1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가져다주는 평안은 조건부적입니다. 건강하면 평안하지만 병들면 평안이 사라집니다. 부하면 평안하지만 가난하면 평안이 사라집니다. 일이 잘되면 평안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평안도 사라집니다. 이처럼 세상이 주는 평안은 우리의 형편과 여건에 좌우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어떠한 형편이나 악조건도 주님께서 주신 평안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역경과 시련을 만났을 때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고 하였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만 누릴 수 있습니다. 이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때 세상의 염려 근심이 우리를 넘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켜주시되 모든 악한 세력으로부터 지켜 주십니다. 6절에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해는 낮을 주관하고, 달은 밤을 주관합니다. 그러므로 해와 달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므로 해와 달조차도 성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붙들어주시되 권능의 오른손으로 붙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위하여 모든 환난을 면케 해 주십니다. 이 말씀은, 성도들은 전혀 환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하셨습니다. 성도들도 환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환난을 넉넉히 이길 힘을 주십니다. 아무리 큰 시험이 닥쳐도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이르기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지켜 주십니다.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귀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이제 성도들의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호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8)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8,29)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받은바 구원의 확고함을 믿고 언제나 담대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영원히 함께 계십니다.

8절에,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고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형통한 삶을 누리고 있으십니까?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혹 곤란한 일을 만났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121편을 지은 성도가 하나님의 성전이 서 있는 시온 산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듯이, 성도님들도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앙망하고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리할 때 사악하고 재앙이 횡횡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아 은혜롭고 평안한 삶을 누리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간증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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