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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0-06-18 08:07:53, Hit : 72,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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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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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주전 7세기말, 남왕국 유다는 국력이 심히 쇠락한 상태였습니다. 이는 왕을 비롯하여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진 것이 그 원인입니다. 유다 멸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므낫세인데 그는 55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가나안 족속들이 섬겼던 바알과 아세라 뿐 아니라,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숭배하였고, 더구나 예루살렘 성전 안에 온갖 우상들을 위한 제단을 만들어 놓고 제물을 바치고 분향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전을 우상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죽자 아들인 아몬이 왕이 되었으나 므낫세의 악한 길을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아몬이 재위 2년 만에 죽고 그의 아들 요시야가 여덟 살에 왕이 되었는데,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고 그 조상 다윗처럼 신실하게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는 성전을 수선하고, 므낫세가 더럽힌 성전을 정화하였으며, 신앙의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뿌리 깊은 불신앙과 우상숭배의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였고, 그나마 요시야는 39살에 전사했습니다. 이로써 유다 왕국은 개혁될 희망이 사라졌고, 그 이후로 나온 왕들은 하나 같이 신앙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 많은 예언자들을 보내시어 우상숭배의 죄를 지적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셨으나 종내 듣지 않았습니다. 선민이 그들의 왕이신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니 어찌 형통할 수 있겠습니까?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북방의 강국인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보내셔서 유다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었고 성전은 불타 무너졌으며, 왕은 두 눈이 뽑힌 채 쇠사슬에 묶여 끌려갔으며, 수많은 백성이 살해당하고 많은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유다 땅에 소수의 비천한 백성들만 남겨두었습니다.

바벨론에 잡혀온 유다인들은 절망상태였습니다. 몸은 살아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죽은 자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고 했습니다. 당시의 처량한 형편에 대하여 시편 137편 1절에는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노라면 실패할 때도 있고 성공할 때도 있으며, 건강할 때도 있고 병들 때도 있으며,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으며, 사랑할 때도 있고 미워할 때도 있습니다. 낮이 오면 밤도 오듯이,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만났을지라도 희망이 있기에 일어설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한 망한 것이 아닙니다. 희망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역경을 딛고 일어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잃어버리면 마치 죽은 자처럼 무기력해 집니다. 살았다하나 죽은 자와 같으며, 그저 목숨이 붙어 있으니 죽지 못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절망에 빠진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유다 백성을 징계하셨으나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금 긍휼을 베풀어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보내어 절망에 빠진 유다 민족에게 “너희가 다시 소생할 수 있다”는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에스겔 선지자 역시 바벨론에 사로잡혀 온 백성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 에스겔 선지자를 어느 골짜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 골짜기는 좁은 산골짜기가 아니라 수만의 군사들이 전쟁하던 광활한 벌판을 말합니다. 그곳에서 에스겔은 싸움에 패하여 처절하게 살육 당한 자들의 뼈들이 낮에는 햇빛에, 밤에는 달빛과 별빛에 바짝 마르고 바랜 채 사방에 널려 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해골 떼를 에스겔에게 보이시면서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죽은 지 오래되어 백골이 된 뼈들이 어찌 소생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같이 질문하신다면 무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에스겔은 대답하기를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상식이나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려 하지 않고 결론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가망이 전무하지만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므로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겼던 것입니다.

에스겔은 우리에게 진실한 믿음이 어떤 것인지 보여줍니다. 진실한 믿음은 그 근거를 하나님께 둡니다. 성도들은 무슨 어려움을 만날지라도 지레 낙심하고 망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운명은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거나 처한 형편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떠한 형편에서도 에스겔처럼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잡힌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인간에게는 불가능할지라도 대저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볼 때에는 망했다고 판단이 될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망한 것이 아닙니다. 끝장났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때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40장 26절에 이같이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하시니 빛이 생겨났으며,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만상을 각각 그 이름을 불러 존재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근거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로마서 4장 17절에 이르기를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믿었는지 말해 줍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삭을 죽여 번제로 바치면 한줌 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골짜기 사방에 흩어져 있던 마른 뼈들과 마찬가지로 절망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망설이지 않고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언약하시기를 ‘이삭으로 말미암아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마’고 하셨으므로, 그는 이삭을 번제로 바칠지라도 하나님께서 재 가운데서 이삭을 살려내실 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이 하나님께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경외하는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렘 32:27)고 하셨습니다.

에스겔이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대답하니, 하나님께서 이같이 명하셨습니다.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에스겔이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대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대언할 상대는 살아 있는 자들이 아니라 죽은 지 오래된 마른 해골들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무슨 말을 한들 마른 뼈들이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마나한 일이 아닐까요? 그러나 에스겔은 묵묵히 하나님의 명을 좇아 그대로 대언했습니다.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고, 또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였습니다. 그리하여 골짜기에 널려 있던 무수한 뼈들이 완전한 사람의 형체를 갖추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아갈 때 위대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이 찾아와서 수태할 것을 알려주었을 때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으리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대답하기를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7)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때가 되자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바벨론에 잡혀간 유다인들은 이제는 이방 땅에서 속절없이 죽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마른 뼈들과 같이 절망 상태에 놓여 있는 자기들의 처지를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유다인들이 포로 생활 70년 만에 귀환하여 다시금 나라를 세우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을 이상을 통하여 에스겔에게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그 당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앗수르 제국을 멸하고 애굽의 대군을 갈그미스에서 패퇴시켰습니다. 떠오르는 태양과 같은 바벨론이 멸망할 것을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제국은 70여년 만에 메대 바사에게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새로운 통치자가 된 고레스는 바벨론과 달리 그의 지배 아래 있는 각 민족의 특성을 인정하고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을 고토로 돌려보내는 정책을 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이 같은 정책을 시행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무슨 어려움을 만났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이 말씀을 성도님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55장 8절로 9절에 이르기를 “8)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9)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내 생각과 내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지 말고, 또한 사람들의 말을 듣고 동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도인 사마리아가 아람 군대에게 포위된 적이 있었습니다. 포위가 오래가자 성중에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부정한 짐승으로 여겨서 먹지 않던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나 하고, 여물지도 않은 콩 한 홉이 은 다섯 세겔에 팔렸습니다. 급기야는 어느 두 여인이 자녀를 잡아먹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회개하지 않고 엘리사 선지자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워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왕은 신앙이 없는 자였으므로 엘리사에게 말하기를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라고 했습니다. 그 때 엘리사가 대답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에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하는 판국에 고운 가루 한 말이 한 세겔에 매매 될 것이라고 하자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왕과 함께 온 한 장관이 엘리사를 비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그러자 엘리사가 그 장관에게 말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그 즈음,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날 굶어 기진맥진한 상태였습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지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지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 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그들이 황혼녘에 일어나 비틀거리며 아람 진을 향하여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아람 진에 이르러보니 진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로 하여금 병거와 마병을 거느린 대 군대가 돌격해 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혼비백산하여 도망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람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고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로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황혼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와 양식을 고스란히 놓아두고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도망쳤던 것입니다.

그 때 아람 군대가 두고 간 양식이 얼마나 많은지 엘리사의 예언대로 사마리아에 양식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면서 엘리사를 비웃었던 그 장관은 성문에서 사람들을 통제하다가 그만 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으면 “아멘” 하고 그대로 될 줄 믿어야지, 불신앙의 말을 했다가 풍부한 양식을 보았으나 먹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사람의 머리로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 함은 곧 하나님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 없고, 귀에 들리는 것 없고, 손에 잡히는 것 없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십시오. 반드시 위대한 응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한편,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 마른 뼈들이 온전한 사람의 형태를 갖추었으나 아직 그 속에 생기가 없었습니다. 생기가 없으니 여전히 죽은 상태입니다. 숨도 쉬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이는 유다 백성이 고국에 귀환할지라도 정신적으로 죽은 자들처럼 무력한 상태에 놓여 있다면 새롭게 나라를 세울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런 상태로는 또 다시 남의 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나라를 이룩하려면 유다 백성의 정신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어떻게 새 정신, 새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것도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에스겔서 11장 19절로 20절에 이같이 말씀합니다.

“19)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20)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그리고 36장 26절로 27절에는 이같이 말씀합니다.

“26)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마음을 우리에게 주셔야 합니다.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셔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새 영과 새 마음을 만들어 가질 수는 없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죄인들의 마음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먼저 믿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불신 이웃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명하시기를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에스겔이 그대로 대언하였더니 사방에서 생기가 불어와서 죽어 누워 있는 자들 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수적으로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도 남을 만큼 의욕이 넘치게 된 것을 말합니다.

새로운 일을 이루려면 주위 여건이 좋아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긴요한 것은 새 정신, 새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에스라서를 보면, 귀환한 유다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고 이방인들과 거래하고 통혼하는 것을 본 에스라가 옷을 찢고, 대 각성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이 회개하고 타락한 생활을 청산하게 되었습니다. 타락하고 영적으로 무능한 상태에 놓인 자들을 새롭게 하는 것은 인력으로 할 수 없고, 제도나 법으로 할 수도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께서만 하실 수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에게 새 영과 새 마음을 갖게 해 주셔야 비로소 진정한 갱신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유는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정신이 타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신의 소생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우리 심령에 불어와서 죽음과 부패의 세력을 몰아내고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셔야 합니다.

기드온을 보십시오. 그가 처음부터 강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매우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포도주 틀에 숨어서 밀을 타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강림하시니 겨우 삼백 명에 불과한 군사를 거느리고서 바닷가의 모래같이 무수한 미디안 대군을 무찌르고 이스라엘을 구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가 날 때부터 용맹한 사람이었던 것이 아닙니다. 키가 3미터나 되는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고 물맷돌 하나로 쓰러뜨린 것은 순전히 사무엘이 그에게 기름을 부음으로 하나님의 신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어려움을 만났더라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희망을 상실한 사람은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희망을 붙잡은 사람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도전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또는 “세상만사 세옹지마”라는 말로 위안을 얻습니다. 그들은 막연한 요행수에 희망을 겁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희망의 근거를 둡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 13:5)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신념도 큰 힘을 발휘한다면, 성령의 능력은 얼마나 더 우리를 강하고 담대하게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생기가 죽은 자들을 살려내었듯이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그 어떠한 좌절과 두려움도 이겨내는 믿음의 용사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지만, 구원 받은 성도들은 능력 있는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셔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시고, 우리의 지혜가 되시고 능력이 되실 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데도 늘 불안하고 두렵고 걱정이 되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삼년 반 동안이나 예수님과 동거 동락하면서 가르침을 받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두려워 숨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뵈었지만 여전히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열흘 동안 전심으로 기도하는 그들 위에 성령께서 강림하시자 모두 다 성령 충만을 받고 강하고 담대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여종 앞에서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다 모인 공회에 서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19,20)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의 앞길을 가로막는 어려움이 있습니까? 지금 무슨 일로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슥 4:6-7)

에스겔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문제를 향하여 담대하게 대언하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소망을 가지십시오. 부르짖어 간구함으로 성령 충만을 받으십시오. 골짜기에 널려 있던 마른 뼈들을 살려내셔서 극히 큰 군대가 되게 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생기를 불어넣어주셔서 생명력이 넘치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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