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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0-06-23 20:23:03, Hit : 64,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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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피조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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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새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경사스런 날에는 새 옷을 입습니다. 음식도 새 것을 좋아하고, 가구도 새 것을 좋아하고, 가전제품도 새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새 것도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고 맙니다. 그래서 여유가 생기는 대로 낡은 것을 버리고 새 것으로 바꿉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새롭게 변모시키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을 고치고, 성형수술도 하고, 생활방식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지라도 사람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새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솔로몬은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본질적으로 새롭게 되는 비결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본문에 이르기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하였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은, 우리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된 것을 말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이전의 상태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요, 공중 권세 잡은 자인 마귀의 종노릇하던 자였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엡 2:1-3).

그런데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곧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영이 거듭났으며, 마귀의 종노릇하던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이전에 지니고 있던 결함을 개선하고 시정해서 새롭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요즘은 성형수술이 발달해서 얼굴 생김새를 완전히 뜯어고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외모를 고친 것에 불과하고 그의 인격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외모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본질이 전혀 새롭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생각하는 것이나 가치관, 삶의 목적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새로 지음 받은 존재라는 뜻으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한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한 사람이어야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 외의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로 13절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하였고, 야고보서 1장 18절에는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태어났다”, “낳으셨다”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이는 성도들이 본질적이고 존재적인 차원에서 새롭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이 위대한 진리를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났으나 신앙생활에 열심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자기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받았으나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아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지 못하고 여전히 육신을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답게 행동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진리를 알게 되면 새로운 피조물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고 하였으므로 성도들은 의지를 발동하여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열심을 내야 합니다.

처음 한 동안은 설교를 들어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주 듣다보면 조금씩 영의 귀가 열려 진리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 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세상의 이야기도 우리를 감동시킬 수 있지만,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라고 하신 대로, 하나님의 능력이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데 열심을 내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여러분의 영적 신분을 명확하게 알게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들이 추구할 삶에 대해 알아봅시다.

첫째로, 새로운 피조물답게 살려면 회개 생활을 힘써야 합니다. 회개는 천국에 들어가는 첫 관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외치신 첫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누구라도 회개 없이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회개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뉘우치고 악한 생활을 청산하고 참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잘못을 뉘우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이제껏 가던 길에서 180도 돌아 서는 것이 회개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세인들은 할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인들만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죄 사함을 받았으며, 의로운 자라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지금 당장 죽더라도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도 죄를 짓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짓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들은 지옥 갈 죄를 짓지 않습니다. 지옥 갈 죄란 예수님을 배반하는 죄를 말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저버리면 그 누구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자선을 많이 하고 훌륭한 일을 많이 해도 하나님의 정죄를 면할 수 없으며 결국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죄를 짓더라도 지옥 갈 죄를 짓지는 않습니다. 죄를 지었더라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 취소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에게 죄란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자녀로서 아버지께 잘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범했을 때 뒤로 미루지 말고 곧바로 회개함으로 용서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8절로 9절에 이르기를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회개는 목욕한 사람이 발을 씻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 받았고 의롭다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목욕을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성도들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죄를 짓는데 이것은 발을 더럽힌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목욕한 자가 외출하고 돌아와서 발을 씻듯이 성도들은 날마다 자기를 돌아보아 허물과 죄를 회개함으로 정결한 상태를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회개는 농부가 씨앗을 뿌리기 전에 밭을 기경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 마음은 밭과 같아서 생명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를 통해서 기경하고 거기에다 말씀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또한 농부가 씨를 뿌린 후에도 수시로 나가서 김을 매듯이 우리도 수시로 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회개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영적 무지와 교만에 빠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더러운 옷에는 오물이 묻어도 표가 잘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희고 깨끗한 옷에는 아주 작은 오물이 튀어도 금방 표가 납니다. 이와 같이 마음이 깨끗한 성도는 작은 죄를 지어도 양심에 가책을 받고 회개합니다. 그리고 회개할 때 사죄의 은총을 받아 누림으로 정결한 마음상태를 회복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 생활을 힘씀으로 언제나 새로운 피조물답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새로운 피조물답게 살려면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지혜와 수단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자기 본위로 행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본위로 행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무슨 할 일이 생겼다고 할 때, 세인들은 이 일이 자기에게 얼마나 유익이 되는가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 여부를 생각합니다. 세인들은 무슨 일을 할 때 자기의 역량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감당한다고 말합니다. 성경에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 14:24)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히 11:6). 아무리 큰일을 할지라도 믿음으로 한 것이 아니면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창세기 11장을 보면, 바벨탑 사건이 나옵니다. 그 당시 인류는 언어가 하나였는데,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났습니다. 그 때 인간들은 영걸 니므롯의 영도 아래 모여 바벨탑을 쌓기로 했습니다. “자, 벽돌을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였습니다.

높은 탑을 쌓은 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 탑을 쌓은 동기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기 위한 목적으로 탑을 쌓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들의 이름을 내기 위해 탑을 쌓았으니 순전히 인본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돈케 하시니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아 바벨탑 쌓는 일을 중도에 그치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산지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큰일을 이루는 것이 잘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다. 이천년 전에,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열 두 제자 가운데 어부 출신이 네 명이나 되었고, 열심당원이 한 사람, 세리가 한 사람, 나머지 역시 평범한 사람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주님을 따라 나섰고 사도가 되어 복음의 증인 노릇을 충실히 감당했습니다. 사도들이 기록한 신약성경을 근거로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었고,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새로운 피조물답게 무슨 일이든지 믿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 믿음의 기적을 나타내 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새로운 피조물답게 살려면 세속에 물들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전 것이 지나갔다 함은 지난날 세상에 속하여 살던 때와 달리 전혀 새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사는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을 좇아서 살았는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갑니다.

또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삽니다. 이전에는 인간의 지혜와 수단 방법을 의지해서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전의 삶은 세속적인 삶이었으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 지금은 거룩한 성도로서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조심해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박해와 핍박이 기독교 신앙을 말살하는 데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교회의 초창기에 약 250년에 걸쳐서 열 명의 로마 황제에 의해 자행된 무시무시한 핍박 가운데서도 기독교는 사라지기는커녕 들판에 번져나간 불같이 전파되어 드디어는 로마를 기독교 국가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기독교 신앙이 공인되고 모든 핍박이 사라지고 나자 기독교는 세속화되어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로마교회의 감독이 교황이 되어 세속권력을 휘둘렀으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성직을 매매하고, 면죄부를 파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한 동안 조카 롯과 동거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가축 떼가 많아지자 헤어지기로 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택하라”고 하자 롯은 물이 넉넉하고 목초지가 넓은 소돔 들판을 택하고 떠났습니다. 롯은 경제적인 이익과 생활의 안일을 탐하여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던 중 점점 그 장막을 옮겨 나중에는 아예 소돔성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소돔이 하늘에서 퍼부은 불과 유황에 멸망할 때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에 힘입어 겨우 목숨만 건졌던 것입니다.

롯이 패가망신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한 삶을 포기하고 세속화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롯의 일을 거울삼아서 항상 새로운 피조물답게 거룩한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넷째로, 새로운 피조물답게 살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겸손한 것이 특징입니다. 교만한 그리스도인이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겸손이란 하나님의 권위 아래 순종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겸손에 대하여 성경은 이 같이 말씀합니다.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 또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와서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원하시거든 주님의 겸손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평안을 누리기 원하십니까? 겸손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물이 낮은 데로 흐르듯이 하나님의 은혜는 낮아진 마음에 임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타락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명하시기를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으나, 뱀은 말하기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뱀은 하와의 마음속에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을 넣어주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먹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동기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교만한 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찌 지음 받은 존재가 창조주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도 교만한 마음을 품게 되면 그 같은 엉뚱한 생각을 하고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 사람 아담의 정신을 따라 행할 것이 아니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본받아 겸손히 행함으로 새로운 피조물답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다섯째로, 새로운 피조물답게 살려면 세월을 아껴 주의 일을 힘써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사상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므로 세속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성도들이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의 시간을 낭비케 만드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좋으나 무분별하게 아무 책이나 읽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티비를 보는 것이 필요하지만 티비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세월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평생 교육을 위한 강좌가 많이 개설되어서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분야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꼭 배우지 않아도 되는 것을 배우느라고 시간을 쓰는 것은 세월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말하기를 “내 아들아 또 경계를 받으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전 12:12)고 하였습니다. 이 권면은 공부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없는 목적을 위해 하는 공부는 헛된 일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주의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일은 무엇이든지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세월을 아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다른 동물에 비하면 상당히 길지만, 자칫 생각을 잘못하면 허송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세월을 아낄 줄 알아야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목회자가 될 것은 없습니다. 평신도로서 얼마든지 주님의 일을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것도 주님께서는 그 상을 잃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에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십시오. 그리하여 세상일보다 주님의 일을 위해 더 많은 시간과 힘과 물질을 드림으로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여섯째로, 새로운 피조물답게 살려면 영적으로 깨어있어 재림의 주님을 대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지음 받은 성도들이 영원히 거할 곳은 이 땅이 아니고 영원한 천국입니다. 장차 성도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볼 것이며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살 것입니다. 그것도 현재와 같이 늙고 쇠하는 몸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몸으로 들어가 살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하는 것은 이 모든 영광스러운 일이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주님의 재림은 성도들의 가장 큰 소망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깨어 있어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의 서신에도 한결같이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영적으로 깨어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고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들의 시대에 비하여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말세의 마지막 시기입니다. 그만큼 주님의 강림이 가까운 때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홍수가 나서 멸망하기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욕망을 따라 사는데 몰두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다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던 것처럼 현대도 마찬가집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행태가 노아 시대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기독교인 가운데도 영적인 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졸며 자는 신자들은 예상치 못했던 때에 홀연히 “보라, 신랑이니 맞으러 나오라”는 외침을 듣고서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믿음으로 살아감으로 재림하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렇다면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 사람을 입고 새로운 삶의 목적과 생활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육체는 점점 늙고 쇠하여갈지라도 우리의 속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날로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고 실천하여 언제나 새로운 피조물답게 살아감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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