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양 제 일 교 회
목양제일교회 교회안내 교회기관 설교말씀 예배생활 성경찬송 성도교제 교회소식  
                                                                                                            
 

 


:::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0-08-20 16:49:00, Hit : 72, Vote : 0
 http://www.mogyang.org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

제목 없음

 예로부터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강했습니다. 이 선민의식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죄인취급을 하고 상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원에 관해서도 왜곡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곧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으로 인정받았으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만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정죄를 받았으므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납니다. 성경은 유대인들 역시 이방인들과 다름없이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아시아의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에베소 교회에 보낸 서신인데, 그 2장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1)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이 말씀 가운데 “너희”는 에베소 교회의 이방인 신자들을, “우리”는 유대인 신자들을 가리킨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셔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신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을 심판의 보편성이라고 합니다. 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하였고, 7절과 10절은 의인에 대한 심판을, 8절과 9절은 악인에 대한 심판을 언급합니다. 의인과 악인 모두가 심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여기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은 각 사람이 개인의 자격으로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6절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하였고, 9절에는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그리고 10절에는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민족 단위로나 가족 단위로 받는 것이 아니라 각 자가 개인의 자격으로 받습니다.

혹 부모가 하나님을 잘 믿으니 자기도 천국에 들어갈 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의 믿음이 자식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아내의 믿음이 남편을 구원할 수 없고, 남편의 믿음이 아내를 구원하지도 못합니다. 각 자가 자기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서” 심판하십니다. 6절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라고 하였고,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심은 대로 거두는 원칙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절대 불변의 원칙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처럼, 선을 행하면 선한 결과를 거두고, 악을 행하면 악한 결과를 거두는 것이 만고의 진리입니다. 또한 이 원칙은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둔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더니 이제 보니 행위로 받는 것이구나”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곧 행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하신 말씀과 같이,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것입니다. 세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까닭에 멸망을 받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느냐, 믿지 않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1절〜15절은 최후의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11)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심판장이신 주님의 보좌 앞에 두 종류의 책들이 펴 있는데, 생명책은 하나의 책으로 되어 있으나 행위를 기록한 책은 몇 권인지 알 수 없으나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구원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만 받고, 생명책에 그 이름이 없는 사람은 불못에 던져집니다.

그러면 누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없으므로 불못에 던져집니다. 이렇게 볼 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를 위해 파송한 70인의 제자들이 돌아와 기뻐하며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하였을 때,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어 낫게 한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그러나 이 모든 능력을 행하는 것보다 더 기뻐할 것은 우리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각 자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이는 우리의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믿음과 관련해서 생각해야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이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말하며,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들은 믿음이 없는 형식적인 신자들을 말합니다.

7절에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믿음의 본질을 말해 줍니다. 믿음은 단지 마음속으로 ‘복음의 진리를 수긍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 선생은 말씀하기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9)고 하였습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하여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가진 그러한 믿음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귀신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7절을 보면,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고 선을 행하는 것이나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것은 곧 복음을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입술로는 믿음을 말하지만 실생활 속에서 믿음의 실천과 순종이 없다면 그 믿음은 거짓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귀신들의 믿음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서 그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자비하시니까 구원을 주시겠지요.” 기독교인 가운데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복음을 배척한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진실한 신앙인으로 살려면 참기를 잘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영생의 길임을 알기 때문에 다가오는 환난과 핍박을 참아냅니다. 참는다는 말에는 계속해서 인내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고 하셨으므로 우리는 핍박을 견디되 끝까지 견디고, 악한 세력과 싸우되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 헌신할 때에도 즉흥적인 기분으로 할 것이 아니라 결심을 하고 변함없이 충성해야 주님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믿음에는 행함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려면 고난과 핍박을 각오해야 합니다. 만약에 고난이나 핍박 대신에 번영과 축복만 말한다면 그것은 비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하셨지, “나를 따라오면 아무 어려움도 겪지 않을 것이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도들이 추구하는 것은 세인들이 추구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성도들은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의 썩어질 영광과 명예나 부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하는 천국의 영광과 존귀를 구하는 자들입니다. 세인들은 타락한 욕망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지만, 성도들은 거룩한 욕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사는 목적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다릅니다.

그렇다고 교회 안에는 진실한 신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거짓된 자들도 있습니다. 8절은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교회 안에서 당을 짓고 그들의 불의한 목적을 위해 행동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며 불의를 좇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언행을 합니다. 이들은 교회생활을 할지라도 목적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의 지체로서 순종하며 헌신하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을 빙자하여 자기 욕심을 만족시킬 목적을 위해 행동합니다.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는데, 큰 박해가 일어나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사도들과 유대인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직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빌립 집사는 이 같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처럼 여긴 것을 감안할 때, 빌립 집사의 행동은 파격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이 때, 시몬이라 하는 유명한 마술사가 빌립이 행하는 기적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마술을 행했지만, 빌립 집사는 실제로 능력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도 믿고 세례를 받았으며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습니다. 두 사도가 사마리아에 와서 갓 믿은 신자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이 광경을 본 마술사 시몬이 조용한 시간에 돈을 사들고 두 사도를 찾아와서 말하기를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하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사도 베드로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 그 중 어떤 사람들이 그 이튿날 아침에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은 메시아로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떡 문제를 해결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요 하늘에서 내려온 음료라”고 하시고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서로 다투어 말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고 하면서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시니,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되 베드로처럼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에게 보응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9)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10)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악인에게는 그 영에 환난과 곤고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환난은 밖에서 오는 고통을 의미하고, 곤고는 심령 상의 고통을 말합니다. 영원한 불못은 감각적으로도 고통스럽지만 그에 못지않게 심적으로도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보면, 나사로가 죽자 그의 영혼이 천사들에게 받들려 낙원에 들어갔고, 부자는 죽어 그 영혼이 음부에 떨어졌습니다(눅 16:). 부자가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큰 소리로 호소하기를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고민’이란 심령상의 깊은 고통을 말합니다. 영원히 고민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때가 이미 늦었을 때 자기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것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옥에 관해 듣기를 싫어합니다. 천국이 있다는 것은 괜찮지만 지옥에 관해서 설교하면 무식하다고 말합니다. 개중에는 교회 나가고 싶지만 지옥에 관한 설교가 싫어 나가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은 신학자나 목사가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지옥이 어떤 곳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1절을 보면, 최후의 심판 때 심판장이신 예수님께서 불신무리에게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아는 이상, 우리는 불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차 불꽃 가운데서 영원토록 고통당하며 고민하게 될 그들을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반면에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하신 말씀은 성도들이 영생에 들어갈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설 때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상급을 받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지만, 상급은 이 땅에서 행한 대로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는 구원만 받으면 족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과 행함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갓난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젖을 먹는 것은 본능입니다. 아기는 젖을 갈망합니다. 이와 같이 영이 거듭난 사람은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기는 하루하루 지나면서 누워 지내던 상태에서 뒤집기를 하고, 그 다음에는 방바닥을 기어 다니기 시작합니다. 돌이 다가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걸음마를 시작합니다.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포기하지 않고 제대로 걸을 때까지 끊임없이 걸음마를 계속합니다. 이것이 생명의 법칙입니다.

이와 같이 거듭난 사람은 믿음의 삶을 추구합니다. 때로 시험에 들기도 하고 세상 유혹에 넘어지기도 하지만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 나갑니다. 그런 가운데 세월이 지남에 따라서 속사람이 자라고 강건해져 갑니다. 이것은 거듭난 성도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때로 쓰러지고 넘어지더라도 완전히 세상으로 가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썩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분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경기장에서 경주하는 선수와 같습니다. 선수가 최선을 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선수는 수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상대 위에 서서 메달을 거는 순간을 생각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 9:24)고 하였는가 하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7절을 보면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이 땅에 재림하실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날에 불 가운데서 건짐 받은 것처럼 간신히 구원받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될 것입니다. 앞서 간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아 언제나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최후의 심판 때에 천군 천사들과 앞서 간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름이 호명되고 주님께로부터 칭찬과 더불어 썩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  mogyang 2020/08/20 72 0
718   시험을 은혜 받는 기회로 삼으려면  mogyang 2020/08/04 66 0
717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구원  mogyang 2020/07/06 82 1
716   새로운 피조물의 삶  mogyang 2020/06/23 65 0
715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mogyang 2020/06/18 73 0
714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mogyang 2020/05/31 84 0
713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  mogyang 2020/05/26 104 0
712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mogyang 2020/05/20 100 0
711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mogyang 2020/05/12 98 1
710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할까?  mogyang 2020/04/20 156 2

1 [2][3][4][5][6][7][8][9][10]..[72]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ro

[목사님 메일]   [전도사 메일]   [운영자 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