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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0-12-13 19:19:14, Hit : 101, Vote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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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로몬의 탄식


오늘은 전도서에 기록되어 있는 솔로몬의 탄식을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우리는 전도서의 서두에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는 구절에 근거해서 이 책이 솔로몬의 저작이라고 인정합니다. 솔로몬은 다윗 왕이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에게서 낳은 아들입니다. 그의 이복형들 가운데는 출중한 인물이 여럿 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다윗의 후계자로 지명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솔로몬은 약관 20세에 다윗 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왕이 되고 나서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는데, 그 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라고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솔로몬을 귀히 여기시고 그에게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셨을 뿐 아니라 구하지 아니한 부귀도 주셨습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얼마나 탁월했던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났다’(왕상 4:30)고 했습니다. 그는 잠언 삼천을 말했고, 일천 다섯 개의 노래를 지었으며, 학문적으로도 뛰어나서 초목을 논하되 레바논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또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를 논했습니다. 먼 나라에서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듣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에디오피아의 스바 여왕도 솔로몬의 지혜를 알아보기 위해 찾아왔는데, 예루살렘에서 솔로몬을 만나보고 나서 말하기를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진실하도다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목도한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나의 들은 소문에 지나도다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복들이여 항상 당신의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매우 부했습니다. 열왕기상 10장 14절을 보면, 그의 일 년 수입이 금 666달란트였다고 합니다. 금 한 달란트를 약 35킬로그램으로 환산하면 666달란트는 약 23톤에 해당합니다. 솔로몬은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었고 정금으로 입혔으며, 그가 사용하는 그릇은 다 정금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두로 왕 히람과 합작투자해서 무역선단을 운영했습니다. 그 외에도 소와 양과 노비가 많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은 강대국으로서 주변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았습니다. 열왕기상 10장 23절에 이르기를 “솔로몬왕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 열왕보다 큰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왕이 된 후 한 동안 지혜와 부(富)를 하나님을 섬기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선용했지만, 언제부턴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부를 자기 욕망을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왕이 되었을 적에 가졌던 경건함을 잃어버렸고, 권력과 부와 지혜를 의지하고 교만해졌으며, 온갖 세속적인 쾌락을 탐하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바로의 딸을 왕비로 맞이한 외에도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왕상 11:). 그에게는 후비가 칠백 인이고 수청 드는 궁녀가 삼백 인이나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나이가 많아지자 이방 여인들을 따라서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그토록 많이 받은 솔로몬이 어떻게 우상숭배자가 된 것일까요? 그것은 그가 지혜와 부귀에 도취되어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지혜로써 많은 사람을 가르치고 잠언을 말했지만 그 자신은 그가 말한 교훈을 따라 살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처럼 연단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그가 말한 잠언은 체험이 결여된 교훈, 체화(體化) 되지 않은 가르침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유혹 앞에서 무력한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사치와 향락을 탐닉하고 온갖 우상을 섬기는 데 힘썼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솔로몬이 죽고 나자 그 나라를 찢어 둘로 나누셨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영영 버리지 않으시고 생전에 정신을 차리게 해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신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 같은 약속하셨습니다.
“12)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3)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14)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삼하 7:)
사실, 솔로몬은 사울 왕보다 더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버리셨으나 솔로몬에게는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재물과 권세를 가지고 일평생 선한 일을 위해 힘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솔로몬이 늦게나마 자기 죄와 허물을 뉘우치고 돌이켰으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늦었다고 생각되더라도 돌이켜야 합니다. 늦었다고 자포자기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면 영영 망하고 말지만 늦은 때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멸망을 피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실패한 인생을 산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그가 참담한 실패를 통하여 깨닫고 전도서를 남긴 것은 후대의 우리에게 큰 유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무식한 사람이 많이 배워봤자 쓸 데 없다고 말하면 비웃음을 살 일이지만 솔로몬과 같이 탁월한 사람의 말이라면 설득력이 있습니다. 부자로 살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재물이 많아 봤자 헛것이라고 하면 설득력이 적지만, 솔로몬처럼 마음껏 부를 누려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새겨들을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전도서는 솔로몬이 젊어서 쓴 잠언과 달리, 인생의 단 맛과 쓴 맛을 두루 경험한 말년에 몸소 겪은 경험에 근거해서 썼다는 점에서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천금의 무게가 있습니다. 솔로몬은 말하기를 ”2)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전도서를 저술한 목적과 의도를 보여 줍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입니다. 그것도 조금 헛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헛되다는 말을 다섯 번이나 반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솔로몬이 헛되다고 한 ‘모든 것’ 속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되어 있을까요? 이 모든 것 안에는 아마도 우상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우상은 사람들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신들을 돌이나 나무나 철로 만들어 놓고 섬기는 것이니 헛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많은 처와 첩을 거느린 것도 ‘모든 것’ 안에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사용하는 그릇을 모두 금으로 만든 것도, 상아 보좌를 만들어서 자기의 영광을 과시한 것도 지나고 보니 다 헛된 것이라고 깨달았을 것입니다. 잠자는 시간을 아껴서 여러 분야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습득한 것도 헛된 것에 속할 것입니다. 지금은 시간 관계상 솔로몬이 말한 그 모든 것을 일일이 열거하지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 하나님을 경외한 것은 그가 말한 헛된 모든 것 가운데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전도서의 마지막 장인 12장 13절에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떠나 살 때 행한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솔로몬이 늦게나마 이 진리를 깨달은 것은 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을 것처럼 덤빕니다. 우리말에 “소리를 지르며 서로 다투는 짓”을 악다구니라고 하는데, 오늘날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악다구니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서로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 좀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 몸을 내던집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얻어 누릴지라도 실은 헛되고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몇 년 전에, 호주 사람들은 28살 난 유명한 여자 앵커가 투신자살한 사건으로 큰 충격에 휩싸인 적이 있습니다. 샤메인 드래건이라는 이 여성은 티비 방송의 간판스타 앵커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는데 그만 해안가 절벽에서 투신자살했습니다. 밝혀진 자살 이유는 ‘우울증’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앵커는 치열한 방송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말 못할 스트레스를 받아서 우울증을 앓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티비 앵커 쯤 되면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여성은 젊은 나이에 스타 앵커가 되어서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게 되었지만 그 자리를 지켜나가기 위해 피나는 경쟁을 해야 했고 그 과중한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에 걸렸고, 결국은 자살로 생을 끝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성에게는 앵커가 된 것이 그야말로 헛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라고 말했습니다. 전도서에는 ”해 아래“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의미합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했듯이, 인간의 지혜와 능력이 아무리 탁월해도 해 아래 사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해를 비롯하여 모든 천체 위에 곧 하늘 위에 계십니다. 인간 세상은 해가 없으면 살 수 없지만, 천국에는 해가 쓸 데 없습니다. 계시록 21장 23절에 이르기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비록 해 아래 살아가지만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그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해 아래서의 일을 전부처럼 생각하면서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이 영원한 내세를 준비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한다”고 했습니다. 해 아래서 땀 흘리며 수고하는 것은 아담의 후손들에게 주어진 운명입니다.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범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심신이 피곤할 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신 이 말씀을 떠올립니다. 여러분, 주위를 살펴보십시오. 일생 동안 수고하면서 사는 이 원칙에서 제외된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알 것입니다. 사람마다 하는 일의 종류가 다를 뿐이지 누구나 수고하면서 살아갑니다. 흔히 재벌 회장들은 부귀만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들도 남모르는 수고를 많이 합니다. 대 기업을 경영하려니 머리 쓸 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어느 대기업 회장은 일 년의 절반을 해외 출장을 다닌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알고 보면 대통령 자리가 편한 것이 아니라 남보다 몇 곱절 수고하는 자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권력을 유지하고 정책성과를 내려면 쉴 틈도 없이 머리를 짜내야 하고, 온갖 욕을 다 먹어야 하니 얼마나 수고가 크겠습니까?
요즘은 취직도 어렵지만 직장 생활도 쉽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늦게까지 일하는 것은 기본이고, 일감을 사들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도 수고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공부하느라 잠도 못자고 수고합니다. 이렇게 볼 때 해 아래 살면서 수고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만 더 많이 수고하면서 산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수고하면서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정하신 운명입니다. 그리고 현대인들만 수고하는 것이 아니고 수천 년 전에 살던 사람들도 수고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기에 모세는 말하기를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했습니다(시 90:).

그러면 언제쯤 수고를 그치고 쉴 수 있을까요? 이 땅에서는 사는 동안은 쉴 곳이 없습니다. 그러면 죽어 무덤에 누우면 쉼이 있을까요? 일평생 고단했던 몸이 깊이 잠들어 쉬는 곳이 무덤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묻힐 땅이 부족해서 잠시 누웠다가 후손들에게 자리를 넘겨주어야 합니다. 산 자나 죽은 자나 편히 쉴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을 위해서 영원한 안식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비해 두신 천국이 그곳입니다. 천국은 일이 없는 곳이 아니라 수고가 없는 곳입니다. 천국에 가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비롯해서 창조적이고 행복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수고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천국은 진정한 쉼과 안식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기 전까지는 수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도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세인들과 마찬가지로 땀 흘려 수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수고하는 가운데서도 심령에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평안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고 하셨습니다.

수고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마음으로 하는 수고입니다. 꿈을 갖는 것은 좋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을 바라보면서 살면 마음이 피곤해 집니다. 마음속에 미움과 시기가 가득해도 마음이 피곤해 집니다. 오늘날과 같은 경쟁사회에서는 마음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삶 전부를 주님께 맡기고 살 수 있으므로 욕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 때문에 갈등으로 고생하지 않고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대신,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이 하지 않는 수고를 하는데, 그것은 주의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수고는 솔로몬의 말과 같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수고이지만, 성도들이 주의 일을 위해 하는 수고는 헛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땅에서 하는 수고 가운데 헛되지 않은 수고는 오직 주의 일을 위해 하는 수고밖에 없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주를 위한 수고는 많이 하면 할수록 우리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고 기쁨이 충만하게 합니다. 이는 하면 할수록 심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세상의 수고와 대조적입니다. 성도들은 이 땅의 헛된 것을 위해 수고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상급을 위해 수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솔로몬처럼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짓지 못해도, 화려한 생활을 못해도, 그처럼 지식이 많지 않아도,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면 솔로몬처럼 헛된 인생이 아니라 영원히 가치 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전무후무한 지혜를 가졌으나 하나님을 떠났으므로 무익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솔로몬은 말하기를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수고가 전혀 헛되고 무익하다고 한 것은, 궁극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사람들의 수고는 나름대로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자녀 양육을 위해, 필수적으로 수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중요한 일일지라도 이 땅의 일은 영원한 가치를 지니지 못하며, 일시적으로만 유용할 따름입니다. 더구나 우리의 영원한 운명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점에서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는 헛된 것입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랍비여,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해 주십시오” 라고 호소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다툼이 생기면 랍비를 찾아가서 중재를 부탁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도 자기 형과 상속재산을 나누는 일로 문제가 생기자, 예수님을 찾아와서 호소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무리에게 이르시기를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 가지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부자는 부지런히 수고해서 큰 재산을 소유했지만, 그 밤에 하나님께서 그의 호흡을 거두시니 모든 것을 고스란히 두고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습니다. 그 부자가 해 온 모든 수고가 헛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비유를 통하여, 주님께서 하시려는 요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보다 귀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 귀한 진리를 알지 못하고 재물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26)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은 한번 죽으면 그만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어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존재에 불과하다면 사람의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사람을 만물의 영장으로 인정하지만 그것은 다른 동물보다 좀 더 낫게 진화한 것을 의미합니다. 비유하자면, 강아지가 지렁이보다 탁월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나 개나 지렁이나 다 공동의 조상인 아메바에서 진화한 것이므로 본질이 같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진화한 존재라면 우리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할 리가 만무합니다.

사람의 귀한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은 물질로 된 육체와 달리 불멸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육체가 죽더라도 영혼은 죽는 것이 아니며 여전히 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살아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일상을 위해서만 살 것이 아니라 자기의 영혼을 위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영혼에는 무관심한 채 지상의 행복을 위해서만 수고하는 것은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위해서 아무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에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솔로몬이 처절한 깨달음을 통하여 교훈을 받아서 무슨 일을 하든지 이 수고가 나의 삶을 영원히 가치 있게 하는지, 아니면 헛되게 만들지는 않는지를 생각하며 행동하는 슬기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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