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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0-12-14 22:23:49, Hit : 150, Vote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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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소원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소원이 없다면 결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른 일들을 뒤로 하고 예배에 참석한 것 역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예배가 전부는 아닙니다. 예배 행위는 구약 식으로 말하면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선민이 송아지나 양이나 염소를 잡아서 제단 위에서 불 태워 바치면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제사와 관련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제물을 태운 연기를 맡으신 것이 아니며, 다만 제물을 바친 사람의 하나님을 향한 중심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외심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제물을 바칠지라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시편 50편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바쳤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에게 큰 지혜와 부귀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많은 제물을 바쳤기 때문이 아니라 일천 번제를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과 사랑을 나타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물보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까를 늘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문자답하기를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요 더구나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백성에게 선포하는 예언자로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열의가 남달랐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방도를 오랫동안 열심히 찾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미가 선지자와 같이 삶의 우선순위 가운데 첫째가 하나님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그리할 때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하신 대로,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미가가 깊은 궁리 끝에 생각해 낸 방도를 살펴봅시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은 일 년 된 소나 양이나 염소를 제물로 바쳤는데, 그 중에서도 일 년 된 송아지를 바치는 것은 율법이 정한대로 최상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가는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일 년 된 송아지를 기꺼이 바칠 작정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미가 선지자는 할 수 있다면 솔로몬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제물을 바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미가 선지자가 솔로몬처럼 부자가 아니므로 일천 번제를 바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가급적 많은 제물을 바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그는 앞의 두 가지보다 더 귀한 제물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라고 했습니다. 선민의 조상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듯이 자기도 맏아들을 바칠 생각을 했습니다. 맏아들을 바친다면 이보다 더 큰 헌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아들을 실제로 죽여서 제물로 바친다는 것이 아니라 일평생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나실인으로 바치겠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신제물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어찌되었건 미가 선지자가 자기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바칠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바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힘써 율법을 지키노라 자부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기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일조와 헌물을 철저하게 드린 것을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그 보다 더 중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린 것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무엇을 바쳐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까 골똘히 생각하는 미가에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비로소 미가 선지자는 일 년 된 송아지를 바치는 것이나, 많은 제물을 바치는 것이나, 심지어 맏아들을 바치는 것조차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최선의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율법은 어느 것 하나 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에도 더 중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신 말씀과 같은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 백성 된 우리가 이 같이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공의를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일컫습니다. 이사야 30장 18절에 이르기를 “…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의를 행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 동안 우리사회는 지도층의 불공정한 행위 때문에 갈등을 겪었습니다. 일반 국민에게는 준법을 요구하면서 그들은 편법으로 특권을 누린다면 공정한 사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한 공의로운 나라가 되려면 공권력 곧 사법권이 공정하게 시행되어야 합니다. 억울하게 옥살이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안 되고, 더구나 무고한 사람이 살인죄를 뒤집어쓰는 일이 생기면 안 됩니다. 이런 피해자가 생기는 사회는 불의한 사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판관들에게 공정한 판결을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6)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 7)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8)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출 23:) 어느 시대나 재판의 불공정이 있지만, 요즘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상식처럼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의 분배가 공의롭지 못한 것이 큰 문제입니다. 미국의 경우, 국가 부(富)의 99%를 상위 1%가 차지한다고 하는데, 이런 사정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라’(리 19:13)고 하셨습니다. 일을 시켰으면 제 때에 임금을 주는 것이 공정한 것입니다. 임금을 지체하면 굶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혼의 구원에만 간여하신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이스라엘이 공의를 버리고 불의한 사회가 되었을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징벌이 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의 구원을 받았으니 그만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공의의 하나님을 믿는 성도답게 우리 사회를 공의롭게 만들어 나가는데 힘을 보태야 합니다. 세인들은 이해타산을 따라 행동할지라도 기독교인들은 공의롭게 살아감으로 과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다르다는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 년 된 송아지나 많은 제물이나 심지어 맏아들을 바치는 것보다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자를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신 분이십니다(시 116:5). 에스겔서 18장 23절에 이르기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라도 멸망하지 않고 회개하여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려 대속의 죽음을 당케 하신 것은 우리 인생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자비가 얼마나 큰가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자비를 행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유다 왕 아하스의 시대는 종교적으로, 윤리적으로 심히 타락했습니다. 그러나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를 게을리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의 지도계층을 소돔의 관원이라, 유다 백성을 고모라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이 같이 책망했습니다.

“11)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많은 제물을 바치고, 안식일과 월삭을 지키고,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과 같은 삼대절기를 성대하게 지켰습니다. 절기마다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수천수만의 양이나 염소를 잡아서 제단 위에서 태웠고, 짐승의 피가 강을 이루고 기드론 시내로 흘러내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기는커녕 그런 헛된 제물을 다시는 가져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의 원한을 풀어주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는 것이며, 사회적인 약자들을 보살피고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유다 백성은 금식을 자주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특별한 기도 제목이 있을 때 금식합니다. 매끼 빠짐없이 밥을 챙겨 먹던 사람이 금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만큼 우리는 금식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간절한 심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은 하나님께 불평하기를 “하나님,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 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 하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정한 금식이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6)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밥을 굶는 것이 금식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진정한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라는 것은 금식하면 우리를 얽어맨 흉악의 결박이 끌러진다는 뜻이 아니라 집에서 부리는 종들을 혹사시키지 말고 인간 대우를 해 주라는 뜻입니다. 압제 당하는 자들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빚이나 생활고로 고생하는 자들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라는 것입니다. 또한 주린 자에게 양식을 주고, 헐벗은 자를 입히고, 집 없는 자에게 쉴 곳을 제공하고, 특히 부모 형제, 친척을 외면하지 않고 보살펴 주는 것이 진정한 금식이라고 했습니다. 이 같이 행하면 금식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나아가는 길을 호위하시고 기도하는 즉시 응답을 내려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일하여 넉넉한 생활을 해야 하지만, 힘써도 가난하게 살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가난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난한 삶을 사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이웃을 멸시하는 것은 곧 주님을 멸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배움이 부족한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주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대우하는 것 역시 주님을 차별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강림하셔서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심판을 행하실 터인데, 구원받은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그러면 그들이 대답하기를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라고 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이르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번에는 악인들에게는 말씀하시기를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도 대답하기를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라고 할 것입니다.

이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을 때였습니다. 마태가 자기 집에서 잔치를 열고 예수님과 제자들과 동료 세리들과 평소 친하던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마태의 집에 가셔서 함께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이를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12)…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긍휼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마 5:7)고 하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영원히 형벌을 받아야 할 우리가 죄 사함 받고 천국 백성 된 것은 우리에게 무슨 자격이나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자비하심 덕분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법대로 처치하신다면 구원 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자타가 의인이라 인정하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기준에 의하면 불의한 죄인에 불과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아니면 심판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를 받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까다롭고 몰인정하게 대한다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 선생은 말하기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 2:13)고 했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도들이 가장 잘사는 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에녹은 365세를 살았는데 65세부터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기뻐하셨던지 창세기 5장 24절에 이르기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엘리야처럼 죽음 없이 천국으로 데려 가셨습니다.

여행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던가요? 돈일까요? 물론 여행 경비가 두둑하다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면 절약하면 됩니다. 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시인하는 것은 마음이 통하는 친구입니다. 아무리 호화판 여행이라도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동행한다면 여행 내내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 여정은 누구와 함께 동행하는 것이 최상일까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아무나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사울 왕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명을 거역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그에게 이르기를 “22)…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 15:)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겸손해야 제 뜻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다윗은 고백하기를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라고 했습니다. 어느 고라 자손은 말하기를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이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즐거워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목자와 양들은 동행하는 관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반대하는 유대인들에게 이르시기를 “26)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고 하셨습니다. 동행은 언제나 함께 하는 것, 어디든지 함께 가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는 형통할 때를 말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역경의 때를 말합니다. 다윗은 형통할 때나 역경의 때나 변함없이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우리는 미가처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을까를 두고 깊이 생각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우리의 생명과 지혜와 재능과 물질 할 것 없이 기꺼이 드리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우선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이무엇인지를 올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이 소중한 진리를 명심하고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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