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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1-01-02 14:09:41, Hit : 81, Vote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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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일을 기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은 구세주를 보내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류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보다 더 크고 영광스러운 일은 달리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구세주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구세주의 필요성을 절감하든, 무관심하든 상관없이 인간은 범죄로 인해 영원한 멸망을 받아야 할 운명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구세주를 믿는 사람보다 거부하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영적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복음 1장에 이르기를 “5)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하였고, “9)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참빛이시므로 누구든지 이 빛으로 나아오는 자는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구세주께서 탄생하셨으나 환영하는 자들보다는 거부하는 자들이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을 찾아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라고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 거민이 듣고 소동했습니다. 아닌 밤중에 “불이야!” 하는 외침에 잠이 깨어 허둥대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그런 중에도 왕위를 지켜야겠다는 일념으로 이 일의 전말을 조사하기 위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소집하고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즉각적으로 대답하기를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밤에 박사들의 말을 듣고 놀라 소동했던 사람들 가운데 단 하나도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를 찾아 나서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의 거리는 10킬로가 채 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이는 박사들의 말을 곧이들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그 밤의 소동은 한갓 해프닝으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아는 바에 의하면, 유대인들에게 메시아의 탄생처럼 크고 중요한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메시아는 선민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유대민족의 가장 간절한 바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를 찾아온 사람은 머나먼 페르샤에서 온 박사들뿐이었고, 선민을 자부하던 유대인들의 대다수는 무관심으로 일관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물론, 아기 예수를 알아보고 경배한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이 아니니까 예외로 치더라도, 밤중에 밖에서 양 치던 몇몇 목자들이 주의 천사가 전해준 구주탄생의 소식을 듣고 찾아와 천사의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은 이같이 증언합니다.
“8)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18)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19)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20)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목자들 외에도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알아본 경건한 성도 시므온과 안나가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구세주의 오심을 고대하였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아기 예수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다만 그런 사람의 수가 적었던 것이 아쉽습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한 사람들, 세상에 도취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성탄절이 그저 즐겨야 할 공휴일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까닭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서 1장은 이 같이 증거합니다. “18)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20)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주의 사자가 전해 준 대로 ‘나사렛 예수’를 이 땅에 오신 구세주로 믿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강대국 로마의 압제에서 유대민족을 구하실 분이 아니고, 유대를 다윗의 왕국처럼 재건하실 분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2천 년 전에 유대인들처럼 오늘날도 예수님을 정치적 또는 이념적인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는 자들이 있으나 그런 자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자기 백성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들만을 지칭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창 22:18)고 하셨듯이, 하나님의 뜻은 선민 이스라엘을 시작으로 해서 온 천하만민을 구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죄인이므로 구세주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왜 죄인인지를 밝히는 데는 무슨 어려운 이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본성이 악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의 첫 아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 형제 살인이 태고 적에 아담의 자식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무섭고 절망적인 일입니까? 그런가하면 창세기 6장은 노아 시대의 사람들의 타락한 실상을 이같이 증언합니다.
“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6장 11절을 보니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고 했습니다.
선한 자들과 악한 자들이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자들이 다 부패하였고 포악함이 가득했습니다. 옛말에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다”고 했듯이, 노아 당시 사람들은 완전히 부패하여 개선될 가망이 없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당시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을 경외했으므로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이르기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짓게 하셔서 그와 그의 가족을 홍수 심판에서 구해 내셨습니다. 방주는 홍수 심판 가운데서 비로소 진가를 드러냈습니다. 이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노아의 시대에 비해 더했으면 더했지 나은 점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구세주가 절실한 때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어둠이 깊어갈수록 빛이 더욱 더 필요하듯이, 오늘과 같이 타락한 때일수록 우리에게 구세주가 더할 수 없이 필요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세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37)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지금 온 세상이 죄악의 어둠 속에 잠겨 있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죄악이 가득하고 사람들은 못된 생각만 하고 살아갑니다. 디모데후서 3장은 말세 사람들의 형편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1)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지금은 21세기가 시작된 지 20년이 지난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지 2020년이 더 지났습니다. 성경에 예언한 대로 지금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입니다. 인간들의 악함으로 인해 도덕과 질서가 무너졌으며, 인간들의 탐욕으로 지구 생태계가 파괴되어 회복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들에게 기대를 걸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희망찬 내일을 제시할지라도 그들은 인류를 구해낼 수 없습니다.
역사상 출현한 영웅들은 하나같이 이 세상을 이상향(理想鄕) 곧 유토피아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러한 그들은 자칭 타칭 구세주 행세를 한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영걸은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니므롯이었습니다. 그는 탁월한 능력과 리더십으로 나라를 세웠고, 사람들에게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위대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한 마음이 되어 성과 대를 쌓아올렸습니다. 그 성과가 하도 엄청났으므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으며, 그들의 도모가 서지 못하게 하시려고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니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성 쌓기를 그치고 온 지면에 흩어졌습니다. 말하자면, 니므롯은 구세주를 자처한 최초의 사람인 셈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위대한 비전을 보여주었고 한 동안 큰일을 도모했으나 유토피아를 만들 수 없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십 대 초반부터 10년에 걸쳐 동서를 아우르는 대 제국을 세웠습니다. 그는 단지 대제국을 건설하는 것보다 세계를 헬라 문화로 계몽하려는 계획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정복지마다 자기 이름을 딴 도시들을 세우고 그리스 문화를 전파했습니다. 말하지만 그는 구세주 노릇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칼로써 어떻게 세상을 구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가장 강력한 유토피아 운동은 칼 마르크스와 레닌에 의해 시작된 공산주의입니다. 공산주의란, 누구나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빈부격차와 인권의 불평등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공평한 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레닌과 그 동지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혁명을 일으켰고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산주의국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여파를 몰아 주변나라들을 적화시켰습니다.
그러면 공산주의는 지구상에 노동자들을 위한 낙원을 세웠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공산주의는 무자비한 숙청과 폭력으로 수천만 명을 살해하고 기독교 신앙을 말살하여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지옥을 만들어냈으나 70년 만에 종주국 소련이 멸망함으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유토피아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공산주의보다 우월한 체제이지만 인간사회를 온갖 불평등과 불의로 가득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인간들이 내세운 유토피아 운동이 모두 실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내세운 영웅들, 정치가들, 종교가들과 사상가들, 기업가들 할 것 없이 모두 구세주가 될 수 없음이 입증되었습니다. 어느 나라든 혁명을 일으킨 세력이 초심대로 국민을 위해 정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며, 오래지않아 그들 자신이 독재자가 되거나 부패하여 청산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타고난 본성의 악함으로 인해 구세주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속고 또 속아도 여전히 거짓 구세주들에게 속아 넘어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을 보면, 종말의 때에 최종적인 거짓 구세주인 적그리스도가 출현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종교, 정치, 경제, 사회 전 방면을 지배하며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선전할 것이지만, 실은 인간들을 사탄의 종으로 삼습니다. 그뿐 아니라, 적그리스도는 성도들을 대적하여 핍박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날은 길지 못할 것이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사탄과 함께 사로잡혀 불못에 던져질 것이며, 그를 추종하던 자들 역시 영원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구세주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정치력으로 또는 군대의 힘으로 나라를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죄가 남아 있는 한 인간들은 하나님과의 불화를 청산할 수 없습니다.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어 주실 분은 구세주이신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으십니다.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여자의 후손’이시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등등한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십니다. 우리와 모든 면에서 동일하시나 죄가 없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행 4:12)
지금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유럽은 본디 기독교 국가들이었으나 지금은 이름만 남아 있을 뿐 복음의 능력을 부인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은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였으나 지금은 기독교가 알게 모르게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널리 확산되고 있고, 기독교인 가운데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향하는 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세속의 물결이 홍수처럼 교회 안으로, 기독교인들의 생활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뚜렷해서 어디서든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하는데 현실과 타협하는 신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실되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며 따르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죄악의 밤이 깊어갈수록 구세주를 더욱 간절히 찾고 의지해야 합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에 들어감으로 홍수 심판에서 건짐을 받은 것처럼,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모든 악한 세력들과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천 년 전, 유대의 작은 고을인 베들레헴의 어느 여관집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목숨을 대속물로 바치셨으며, 장사되신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그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천 년 교회사를 통틀어 사도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의 제물이 되었고, 온갖 고초를 감내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핍박 앞에 굴하지 말고 죽기까지 믿음을 지켜나갈 때 영생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는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운 특별한 시대를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닻줄이 끊긴 배와 같이 시대의 풍조와 유행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가장 잘 사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영혼의 닻을 복음의 진리 위에 내리고 세상 풍조에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시련의 바람이 불어와도 패배주의에 사로잡히지 말고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따라 앞에 있는 천국 문을 향하여 힘차게 걸어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하신대로 지금 이 순간에도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실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까지 동행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어떤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핍박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역경 앞에서 움츠러들지 마십시오.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구세주보다 더 강하고 더 지혜로운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 누가 구세주의 품에 있는 성도들을 해치거나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천국의 문에 들어가기까지 구세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걸음을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은 어둠에 속한 자들이 아니고 빛에 속한 자들입니다. 사망에 속한 자들이 아니고 생명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심판이 임할지라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구주 탄일을 맞이하여 교회에 모여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 아버지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며 영광을 돌리는 성도님들의 심령 속에 임마누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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