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양 제 일 교 회
목양제일교회 교회안내 교회기관 설교말씀 예배생활 성경찬송 성도교제 교회소식  
                                                                                                            
 

 


:::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1-01-31 18:27:25, Hit : 69, Vote : 3
 http://www.mogyang.org
 https://www.youtube.com/watch?v=B9j-Ok92Akk&t=1273s
 표적을 분별하는 성도 (2021년 1월 24일 주일예배 설교)

무제 문서

오늘은 “표적을 분별하는 성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먼저, 표적에 대하여 간략하게 알아봅시다. 사복음서를 읽어 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에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병자들이 줄을 이어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나병환자, 소경, 중풍병자, 앉은뱅이, 혈루병자, 등등 현대의술로도 고치기 어려운 병자가 대부분이었으나 주님께서는 단 한 사람도 거저 돌려보내신 적이 없이 모두 치료해 주셨습니다.
또한 귀신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온전케 하셨으며, 심지어는 죽은 사람들을 살리신 적도 있습니다. 베다니 마을의 나사로,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 회당장 야이로의 어린 딸이 죽은 것을 살리셨습니다. 이 외에도 물 위를 걸으셨고 갈릴리 풍랑을 명하여 잔잔하게 만드셨으며, 떡 몇 개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수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한번은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와 아이를 제외하고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남은 것을 열두 광주리 거두었으며, 또 한번은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어 마리로 여자와 아이 외에 사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놀라운 기적을 행하신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른 데 이유가 있지 않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이신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복음서는 이런 목적으로 주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가리켜 표적 곧 표시로서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그리스도가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표적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이 같은 표적들을 보고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복음서가 증언하듯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보고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본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였고 대다수는 호기심을 충족시킨 것으로 만족했으며, 예수님을 적대하던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은 도리어 예수님을 보고 귀신 들렸다고 하는가 하면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쳐주시자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방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어 마리를 가지고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사천 명이나 되는 큰 무리를 먹이신 기적을 행하셨을 때, 이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부류는, 단순히 떡을 얻어먹고 배가 부르니 좋다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탁월한 능력자이신 예수님을 그들의 임금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현세적인 축복을 받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잘못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을 내고 많은 봉사를 해도 믿음의 동기가 잘못되면 주님과 상관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둘째 부류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바로 알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기적의 떡을 받아먹었을 때 예수님이 하늘에서 오신 생명의 떡이 되심을 깨달아 안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을 비롯하여 신실한 추종자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들은 떡을 얻어먹지 않아도 변함없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떡은 고사하고 예수님 때문에 환난과 핍박을 받더라도 굴하지 않고 주님을 믿고 따르는 신실한 성도들을 말합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으매 우리가 주를 떠나 어디로 가오리이까?” 이와 같은 신앙자세를 갖고 끝까지 주님을 믿고 따릅니다. 신앙 연조가 길든 짧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이 올바른 성도는 어떤 시련과 환난 가운데서도 요지부동하며 결코 신앙의 길에서 이탈하는 법이 없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초대교회 당시에 수많은 순교자가 생겼는데 그중에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체포되어 많은 고문을 당하고 총독 앞에 끌려갔을 때, 총독이 선심이라도 쓰듯이 “자, 지금이라도 예수를 부인하는 사람은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총독의 제안에도 흔들림 없이 하나같이 기쁜 마음으로 형벌을 받는 편을 택했습니다.
그때 기독교인들을 고문하던 한 군병이 그러한 기독교인들을 보고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들이 믿는 예수가 어떤 분이길래 그를 믿는 일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까? 이는 필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이 군병은 총독과 기독교도들 사이에 오가는 말을 관심을 갖고 듣던 중에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기독교도들이 형장으로 끌려가는데 그도 총독 앞에 나서서 “나도 이들이 믿는 예수를 믿소. 그러니 나도 함께 죽는 데 동참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자진해서 순교의 대열에 합류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얼마나 복되고 위대한지를 올바로 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그 자체가 말할 수 없는 은총임을 알아야 합니다. 선심을 써서 교회에 나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나 같은 죄인을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 삼아주신 것이야말로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도란 이 은혜와 축복을 나만 알고 누릴 수 없기에 함께 나누자고 권하는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누구나 이 도(道)를 믿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마음을 닫고 거부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수월하게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처음 믿은 사람은 갓난아이와 같아서 자상한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자라게 되면 누가 무어라 하든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셋째 부류는, 예수님을 적대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그런 자들의 대표격이었습니다. 그들은 비뚤어진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예수님을 반대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린 된 사람을 고쳐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고 보게 되자 무리가 다 놀라 말하기를 “이 사람이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하기를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사 35:5-6)라고 했는데, 소경되고 벙어린 된 사람이 고침을 받자 사람들은 이 예언을 생각해 내고 예수님을 가리켜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 말을 듣고는 정색을 하고 말하기를 “이 사람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서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동일한 기적을 보고서도 백성들은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고 하였으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이는 귀신의 왕을 힘입은 것이라”고 전혀 상반된 태도를 보였으니 저주받을 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인즉,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구약성경을 연구하는 자들이므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몰랐을 리가 만무합니다. 필경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들을 보면서 ‘이 사람이 행하는 기적들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과 일치하지 않느냐?’고 내심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해야 하지만 그들은 그럴 마음이 없었습니다. 명백한 증거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서도 그것을 귀신의 왕을 힘입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마음이 완악하면 이처럼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방금 전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떡 몇 개를 가지고 4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똑똑이 보았으면서도 또 다른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 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을 볼지라도 믿지 못하고 또 다른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셨습니다.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힘쓰는 일입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인간사가 일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농사도 일기를 바르게 예측해야 파종이니 추수를 제때 할 수 있고, 기업체에서 상품의 생산량을 정하는데도 먼저 기후의 변화를 예측해야 합니다. 어디 멀리 여행을 할 때도 일기를 살피고 떠납니다.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가지고 천기를 분별했으나 현대는 위성을 비롯하여 첨단 기상예측 장비를 이용해서 상당히 정확한 예보를 합니다.
그러나 천기를 분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 시대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물론이고 세계 역사에 있어서도 지극히 중요한 때였는데, 그것은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이야 논외로 치더라도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고대해 왔던 선민으로서 깨어서 시대의 표적을 관찰하면서 그리스도를 맞이할 대비를 하고 있었어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기다려 왔던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셨으며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대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행하시는데도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그리스도에 대해 무관심했으며, 예수님께서 유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시자 도리어 자기들의 기득권을 잃게 될까 염려되어 예수님을 적대하고 방해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그들의 눈에 시대의 표적, 그리스도의 표적이 보일 리 만무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하신 말씀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주신 경고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37)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고 하셨습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파는 것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이므로 그 자체를 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영혼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하면서 일상적인 삶에만 몰두해서 살아가는 것은 멸망 받을 죄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 같은 삶의 태도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의 삶은 하나부터 열까지 죄 아닌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시대를 일컬어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얼마나 악하고 음란합니까?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했으며,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많은 표적을 행하시는데도 알아보지 못했다가 멸망했으며, 오늘날 인류는 물질만능주의, 과학기술과 쾌락추구에 완전히 몰두한 채 역사의 종말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6장을 보면, 노아 당시의 사람들이 다 육체가 되었으며,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였고 그 마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고 했는데, 이 평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가감 없이 해당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역사의 종착역이 가까운 때를 살아갑니다.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매우 임박한 때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사람들의 영적, 윤리적인 타락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인간이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스스로를 숭배하는 불신의 시대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무색할 정도로 동성애가 호응을 얻고 성적 문란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낙태를 죄로 정하지 않고 여성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라고 주장합니다. 돈 앞에서는 높은 자도 낮은 자도 굴복하는 시대입니다. 정통 기독교 신앙을 배척하나 온갖 우상숭배와 이단들이 기승을 부립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온 인류를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는 때가 머지않아 올 것을 예고합니다. 이 모든 것은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위한 무대를 준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에 앞서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며, 세계정부를 세우고, 경제, 사회, 문화 할 것 없이 모든 영역을 지배할 것이며, 사람마다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게 하고 그 표를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사고팔지 못하게 할 것이며, 스스로 성전에 앉아 하나님이라고 내세울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깨어 있어 현재 되어가는 시대상을 보면서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날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 있는 곳이 어딘지, 사람들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 관찰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의 분위기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습니까? 주님을 섬기는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같은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가지면 안 됩니다. 기독교인이 세속화되는 것은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이 기름 준비도 하지 않고 깊이 잠든 것처럼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진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면 절대로 믿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로마서 13장은 우리에게 이같이 경고합니다.
“11)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12)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시간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영적 상태를 진단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놀랍게도 이 말씀은 이천 년 전에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한 것입니다. 하물며 21세기가 5분지 1이나 지난 지금은 자다가 깰 때가 아니라 이미 단장을 마치고 문 앞에 서서 주님의 강림을 기다려야 할 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시대는 성도들로 하여금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게끔 모든 것이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누구라도 방심하면 거기에 속아 넘어갑니다. 오늘날 현실은 어떻습니까? 정신을 차리고 주님의 강림을 대비할 성도들의 대다수가 졸며 잠들어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합니다. 기독교인이긴 한데 기독교인답게 살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못하므로 실천하지 않습니다. 무슨 문제를 만나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기도의 능력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고 돈의 위력 앞에 복종합니다. 결국, 시대의 표적을 보지 못합니다.
성도들에게도 생활이 있습니다. 직장도 다니고 사업도 하고 자녀 양육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항상 영적으로 깨어서 시대의 표적을 살피고 분별하며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자기를 지키며 주의 일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성도들은 이 땅의 것들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영원한 천국을 바라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땅의 것들은 언젠가 다 불타고 말 것이나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공력을 심판받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몸으로 행한 대로 상벌을 받습니다. 그때 가면 이 땅에서 잘 살았는지 잘못 살았는지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그때에는 잘못을 시정 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7)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고 했습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고백입니까!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후회함이 없는 믿음의 생애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는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이란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나타내는 표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대속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는 가장 위대한 표적입니다. 이제 불신의 시대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목숨을 버려서 마지막 표적을 나타내 보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멸망하는 자들은 주님의 마지막 표적조차 믿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고린도전서 1장에 이르기를 “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한 것입니다. 표적이 먼저가 아니라 믿음이 먼저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위대한 표적을 보여줄지라도 믿지 않지만, 믿음의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귀에 들리는 것이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믿음을 지켜나갑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요나의 표적은 진실한 성도들을 위한 표적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다” 하신 후에 미련 없이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오래 머물면서 설득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이처럼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간, 성도님들의 영적 상태는 어떠한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고 하셨습니다.
교회생활을 한 것이나 직분자 노릇을 한 것이 공로가 되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러려면 항상 영적으로 깨어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고 불신앙과 세속으로부터 자기를 지켜야 합니다. 형식적인 기독교인이 아니라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어디를 가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표시가 나야 합니다. 불신 이웃들로부터 “당신의 사는 모습을 보니 과연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이 분명합니다.”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믿음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성령님께 저의 마음 눈을 밝혀주셔서 시대의 표적을 잘 분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 강림하실지라도 기쁨으로 맞이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튜브 주소 : https://www.youtube.com/watch?v=B9j-Ok92Akk&t=1273s ]






736   시련의 때에 할 일  mogyang 2021/04/21 12 0
735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  mogyang 2021/04/06 24 2
734   고난으로 대속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mogyang 2021/04/06 24 2
733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mogyang 2021/03/20 53 3
732   겨자씨 한 알의 비유  mogyang 2021/03/07 45 3
731   하나님을 사랑하라  mogyang 2021/02/15 59 2
730   하나님을 경외하라  mogyang 2021/02/15 42 2
  표적을 분별하는 성도 (2021년 1월 24일 주일예배 설교)  mogyang 2021/01/31 69 3
728   예수, 그는 어떤 사람인가?  mogyang 2021/01/02 113 2
727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  mogyang 2021/01/02 82 2

1 [2][3][4][5][6][7][8][9][10]..[74]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zero

[목사님 메일]   [전도사 메일]   [운영자 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