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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1-02-15 21:43:59, Hit : 42, Vote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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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을 경외하라

무제 문서

오늘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신앙 자세가 무엇인지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기독교인 가운데는 마치 하나님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하나님께 무슨 생색이라도 내듯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신자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조차 알지 못한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유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우리가 말할 수 없이 큰 유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시므로 피조물들의 도움이 조금도 필요치 않습니다.

반면에 사람은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하나님을 의존해서 사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코로 산소를 호흡해야 하고 양식을 먹고 물을 마셔야 사는데, 이 모든 것을 스스로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부터 섭취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람은 독립적이 아니라 완전히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또 한 가지, 사람들은 인간을 강하고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하루살이는 곤충 중에서 가장 작고 하찮은 것에 속합니다. 몸집만 작은 것이 아니라 수명도 하루나 길어야 이틀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욥기에는 사람의 미약함을 하루살이에 비유해서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4:19)라고 했습니다.

하루살이에게 눌려 죽을 자라니 너무 과장된 표현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인간들은 하루살이가 아니라 현미경으로나 겨우 볼 수 있는 0.1~0.5 마이크로 메타에 불과한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고통을 당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티끌로 만들어진 피조물에 불과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에게 잡혀먹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간의 보잘것없음에 대하여 자주 말씀합니다. 이사야 40장에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고 하였고, 야고보 선생은 말씀하기를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4:14)고 했습니다.

우리가 경외하는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있는 자로서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능력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다스리십니다. 반면에 사람은 흙으로 지음받은 존재로서 죽으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창조주와 피조물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46:5)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이 한이 없으시고, 그 지혜가 한이 없으시며,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한정된 능력과 지능과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인생과는 차원이 다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자기 위치를 알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엎드려 처분을 기다려야 마땅합니다.

성경은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대하여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경외라고 합니다. 경외(敬畏), 히브리어 성경에는 יָרֵא 야레라는 말을 썼는데, ‘두려워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영어 성경은 두려워하다는 뜻인 fear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우리말 성경은 공경하면서 두려워한다는 경외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두려움이라고 말합니다.

첫째가는 계명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데, 이것 역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고서야 가능한 것입니다. 시편 211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하였듯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신앙의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므로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우리는 오래 살고 싶다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죽고 싶다고 죽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복을 받거나 화를 당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무엘상 26절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진리를 알 때 어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기독교인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독교인 노릇을 한다고 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다고 볼 수 없습니다. 거듭나지 못하고 기독교인 행세만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확신하지 못합니다.

본디 두려워한다는 말 속에는 존중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거 왕조시대에 백성들을 비롯하여 나라 전체가 왕의 소유였습니다. 왕이 곧 법이었으며, 왕명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지 어기면 처벌을 받았습니다. 백성들은 왕의 행차를 만나면 길가에 엎드렸습니다. 백성들은 언제든지 두려운 마음으로 왕을 대했습니다. 하물며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을 대하는데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세상의 군왕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므로 경외하는 마음으로 엎드려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시어 소돔을 심판하실 뜻을 말씀하셨을 때, 소돔 거민을 위해 간구했습니다. “23)…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24)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찌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25)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안심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오십 의인 중에 오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오인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가 거기서 사십 오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고 의인 열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아브라함이 자신을 일컬어 티끌과 같은 자라고 한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현현 앞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이 티끌같이 보잘것없음을 절감했습니다. 이로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얼마나 두려운 분으로 알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의 신앙을 인정하시고 선민의 조상이요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지 기꺼이 순종한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하란에 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지시하시기를 “1)…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12:)고 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아내 사라와 모든 가솔을 이끌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이었는지를 말해 주는 적절한 일화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에도 순종했습니다. 이삭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이 백 세에 낳은 독자일 뿐 아니라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고 하신 약속의 계승자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삭이 장가를 들어 후손을 낳지도 않았는데 그를 죽여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으니 이만저만 심각한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망설이지 않고 아침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길을 떠났습니다. 삼일 길을 걸어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산 아래 당도하자 두 사환을 거기 머물게 하고는 번제 나무를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산을 올랐습니다. 이삭이 묻기를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하니 아브라함이 대답하기를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에 이르러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칼을 쥐고 그 아들을 잡으려 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부르셨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니, 사자가 말씀하기를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있었습니다. 이에 그 수양을 가져다가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신 말씀이 중요합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결국, 아브라함의 절대적인 순종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했으므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지시하시든지 아니요가 없이 언제나 라고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아브라함처럼 하며 순종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라는 인정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든, 이해가 되지 않든 상관없이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 명령을 온전히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39절에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하신 대로,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힘센 사람, 지위가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기독교인이면서도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 비난을 겁내어 떳떳하게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방해를 받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두려워할 대상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언젠가 어느 여신자에게서 남편이 무서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여신자는 남편이 하나님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으면 믿음을 지켜나갈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는 직장의 상관이 하나님보다 더 무서워도 믿음을 지켜나갈 수 없습니다. 돈이 하나님보다 더 무서워도 마찬가지여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으로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내야 진실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지켜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을 보면 하나 같이 담대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권세를 쥔 왕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모세는 목자의 지팡이 하나 쥐고 대제국 애굽의 바로를 만나 내 백성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라는 하나님의 명을 전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 숭배자인 아합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를 만나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권세자들이 두렵지 않았을까요? 그들이 왕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하여 아모스 선지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3:8)고 했습니다. 두려우신 하나님, 왕들을 세우시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절대자 하나님께 비하면 아무리 권세가 큰 왕이라도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두려워하기는커녕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118:6)하고 담대히 선언할 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 곁에서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사람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킨 일로 체포되어 공회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두 사도는 이같이 담대히 선언했습니다.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공회원들은 고침받은 사람이 눈앞에 서 있는지라 할 말이 없었으므로 사도들을 불러 위협하며 이제부터는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두 사도로 하여금 이처럼 용기를 내게 한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이 행복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고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 세 분 조상에게서 상속받은 가장 위대한 유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장 강성했던 때가 언제일까요? 그것은 다윗 왕의 시대로서 왕을 비롯하여 온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언제 이스라엘이 쇠퇴한 것일까요? 왕과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였습니다. 선민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경홀히 여겼을 때, 하찮은 우상들과 이방 민족들을 두려워하며 그들의 압제를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자는 어디서나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을 보면, 사도 바울의 확신에 찬 믿음의 고백이 나옵니다.

“31)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33)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관련해서 성도님들에게 당부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자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부모를 둔 사람은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신앙으로 양육 받을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힘써야 할 첫째 의무는 자식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려준 말은 자식에게 하나님 경외하기를 가르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에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형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 애굽으로 끌려갔어도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주인 보디발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면서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요셉을 높이시니 바로의 꿈을 해석해 줌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높이시면 낮출 사람이 없고, 하나님께서 문을 여시면 닫을 사람이 없습니다. 성도님들의 자녀들도 요셉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당부했습니다. “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5)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찌니라”(6:)

요즘은 평생 공부라는 말이 유행하지만, 그렇더라도 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기가 있는 법입니다. 부모의 슬하에 있을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기본적인 공부를 하고, 청년기에 대학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바른 순서입니다. 노인이 되어서도 공부할 수 있지만 한창 일한 시기를 다 보냈으므로 취미로 하는 것은 몰라도 일을 하기 위한 것은 될 수 없습니다. 범사에 적합한 때가 있는 법입니다. 어렸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워야지 시기를 놓치면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간다면 그들의 일생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을 경외했더니 하나님의 복을 받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창대케 되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포기하고 물질과 성공을 좇아가면, 물질과 성공을 얻을지는 몰라도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믿음에서 파선하게 되어 실패한 인생으로 마감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시편 34편은 다윗이 지은 것입니다. 그의 시편은 단지 듣기 좋은 시구가 아니라 체험에서 우러나온 간증과 같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본디 베들레헴 시골에서 목동 노릇을 했습니다. 아버지 이새나 일곱 명이나 되는 형들이 하나같이 다윗을 무시했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을 방문하여 아들들을 다 불러오라고 하였더니 말째인 다윗을 제외한 일곱 아들만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므로 키크고 잘난 형들을 마다하고 막내에다 천대받던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다윗이 양이 목자를 따르듯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은혜로운 생애를 보여주는 표본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님들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이 복을 주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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