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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1-02-15 21:57:07, Hit : 59, Vote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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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youtube.com/watch?v=QLA-caAfdxw&t=1679s
 하나님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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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경외한다는 말은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두려운 분이신지를 아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수십 년 동안 기독교인으로 살아왔어도 신앙의 문턱을 넘지 못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시편 90편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로 알려진 것인데, 11절에 이르기를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 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라고 했습니다. 모세 오경을 읽어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얼마나 충성스럽게 지켜 행했는지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그만큼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겼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이며, 인류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사람입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던지 하나님께서는 소돔 성을 멸하시기에 앞서 그를 찾아오셔서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18:17)고 하셨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소돔 거민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렸고, 그 성 중에 의인 열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않겠노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18:27)라고 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는 자신이 티끌처럼 한없이 미약함을 절감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마음가짐입니다.

구약시대의 위대한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사야 역시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던 중에 여호와 하나님을 뵙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는 그때의 일을 이같이 진술합니다. “1)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6:)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었을 때 자신의 부정함을 절감하고 죽게 되었다고 절규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죄의 은총과 함께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이사야는 불신앙의 시대에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종으로 충성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시몬 베드로 역시 주님의 거룩하심을 경험하고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어느 아침,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수가에 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침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셨는데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였습니다.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셔서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시몬이 대답하기를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그리하였더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가 물에 잠길 정도로 가득 채웠습니다.

이를 보았을 때, 시몬은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이 단지 훌륭한 선생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깊이 체험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기를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하셨고, 그는 그 시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면 신앙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신앙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10:28)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사상 속에는 하나님이 없으므로 죄를 짓고 악을 행하면서 재미를 맛봅니다. 날이 갈수록 인간들은 더 깊이 타락할 것입니다. 심각한 점은, 기독교인 가운데도 세속화되어 가는 신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권면한 것처럼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2:12).

 

오늘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아울러 가져야 할 또 한 가지 신앙 자세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생활 40년을 마칠 즈음에, 모세는 백성을 불러 모으고 고별 설교를 하며 이같이 당부했습니다. “12)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손바닥과 손등처럼 언제나 함께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든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만약에 두 가지가 함께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거짓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부모로서의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동시에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는 두려운 분이면서 동시에 사랑이 한량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자음 받았으므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은 동식물과 달리 양심이 있어 선악을 분별하고 이성이 있어 사리(事理)를 이해하는데, 이같은 존재는 이 세상에 사람밖에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짐승이나 새나 물고기나 곤충으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에게 생명을 누리게 하시고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기의 노력으로 사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와 마시는 물, 먹는 양식, 땅이나 바다에서 채굴하는 천연자원 할 것 없이 어느 것 하나 인간들이 만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으신 것들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제껏 내 힘으로 살아왔습니다하고 대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당부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17)…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18)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8:)고 했습니다.

한편, 성도들은 지금까지 언급한 것 외에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신 이유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요한복음 3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구세주로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가 다름 아닌 사랑때문이라고 증언합니다. 요한일서 4장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이같이 언급합니다. “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하여금 대속의 죽음을 당하게 하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지만, 죄인들을 위해 죽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이 죄인들 가운데 우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 사실에 감격하여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요일 3:1)라고 말했습니다. 독생자의 보혈로 죄 사함 받은 것도 감사한데,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주셨으니 이처럼 파격적인 사랑을 어디서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이 실감나지 않거든 구원받기 이전의 우리의 실상과 구원받은 이후의 실상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디도서 3장은 이같이 말씀합니다. “3)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4)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5)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7)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면 성경을 열심히 탐구해야 합니다. 교회생활을 오래 했어도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것은 다른 데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이야기는 아무리 열심히 들어도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보아도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예배시간에 설교를 들을 때 정신을 집중해서 듣고, 사람의 말이 아니라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 믿음이 생깁니다. 설교를 듣고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면 그보다 더 큰 은혜는 없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기쁨과 감사가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하는 것은 다른 데 이유가 있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한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탕자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아들은 모든 것이 풍족한 아버지 집에서 지내면서도 행복한 줄 몰랐습니다. 그를 위해 하는 아버지의 말씀이 귀찮은 간섭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의 눈길이 닿지 않는 먼 나라로 가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를 졸라 상속재산을 받아내어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한동안 허랑방탕한 생활을 즐기다 보니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나라에 큰 기근이 들어 굶어 죽지 않으려고 들에서 돼지 치는 사람으로 취직했으나 무슨 대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돼지들이 막는 쥐염열매를 먹는 것이 고작이었으나 그나마 배불리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제야 이 아들은 떠나온 아버지 집을 떠올렸습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전에는 아버지가 자유를 억압하고 간섭하는 사람인줄 알았으나 이제 생각해 보니 아버지의 언행이 하나 같이 자식을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난이 아들의 아집과 편견을 깨뜨려 아버지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이에 아들이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갔습니다. 이 아들로 하여금 염치불구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만든 것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내가 이 꼴로 돌아가도 아버지께서는 나를 내치지 않으실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과연 이 아들의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들이 말하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하였으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기를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그 날 저녁에 아버지 집에서 아들의 무사 귀환을 기뻐하는 잔치가 열렸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 아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지루하고 부담스러운 신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도 그런 심령상태에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있지는 않은지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일을 더 좋아하고 하나님보다 세상일을 더 많이 생각하고 위한다면 이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망각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사는 것이 재미있고 흥미로울지 몰라도 그 영혼은 점점 허무와 절망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욕구불만에 사로잡혀 끝없이 애쓰지만 진정한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사마리아 수가 성의 여자처럼 세상 방법으로 내면의 갈증을 해소하려 하면 매번 실망하고 또다시 목말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사람은 영혼의 갈증을 완전히 해소하고 만족한 삶을 누립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화답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당부하기를 “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5)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여러 사랑의 대상 가운데 하나로 여겨 사랑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12:29). 사랑은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자발성을 생명으로 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알고 그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합니다. 그것도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준행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까요? 용돈을 많이 드리고 자주 옷이나 맛난 음식을 대접하는 것일까요? 물론 그런 것도 필요하지만 실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참으로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은 부모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불순종한 사울 왕에게 한 말이 무엇입니까?

“22)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라고 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명을 거역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사울 왕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대하여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18:1)라고 고백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가장 큰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본문은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 말씀입니다. “12)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여기서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부탁한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저절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14:15)고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마음과 힘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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