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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1-06-04 23:33:44, Hit : 21,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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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베와 새 가죽 부대

무제 문서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금식을 신앙생활의 중요한 척도로 여겼습니다. 경건한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금식을 시행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엣세네파 사람들은 광야의 동굴에서 지내면서 독신, 금욕을 신조로 하였고 정기적으로 금식을 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도 금식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지내며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지냈던 세례 요한의 제자들도 금식을 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예로부터 금식은 경건한 신앙생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행위로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시행되던 금식에 대한 규례는 모세가 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이스라엘 자손은 속죄일이 되면 하나님께 화제를 드리고 하루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스스로를 괴롭게 해야 했습니다. 이날에 금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후대에 내려오면서 속죄일이 아니라도 금식하는 신앙관습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며 권장할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를 뉘우치고 회개할 때와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큰 위기를 만났을 때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바리새인들의 잘못은 금식을 자기를 자랑하는데 사용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얼마나 자주 금식하느냐가 신앙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었으므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금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금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16)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고 하셨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도 얼마나 자주 했는지는 몰라도 금식을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 역시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사명을 다하기 위해 자주 금식하며 기도했을 것이고, 그의 제자들도 스승의 본을 받아 금식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확연히 다른 점이었습니다. 동시에 이것은 금식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눈에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금식하지 않는 것을 트집 잡아 예수님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을 하셨습니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신랑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 것이고, 제자들은 신랑의 친구들인 셈입니다. 이는 예수님 자신이 조상 적부터 고대하던 바로 그 메시아시라는 사실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메시아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신랑의 친구들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1)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61:)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즈음, 고향 나사렛 회당에 모인 회중 앞에서 이사야의 이 예언을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4:21)고 하셨습니다. 선민의 역사에서 메시아께서 오신 것처럼 기쁜 날이 어디 있을까요? 그것은 희년을 맞이하여 종살이에서 자유를 얻고,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해방된 것처럼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잔치를 열고 기뻐할 일이지 금식할 일이 아닐 것입니다.

메사야의 오심은 혼인 잔치가 열린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잔치에 초대받은 신랑의 친구들이 금식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고 하셨는데, 이는 십자가 고난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답변을 통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과는 완전히 다른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자는 신랑의 친구들로서 혼인 잔치에 참석하였으나 후자는 신랑의 초대를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님들도 주님의 초대를 받아 천국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하고 물었던 사람들은 메시아께서 오셨건만 여전히 구시대에 속한 사람들이었으므로 금식을 가지고 책잡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1)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면서 금식을 내세우는 그들은 낡은 옷이나 낡은 가죽 부대와 같고, 복음은 생베나 새 포도주와 같습니다. 생베란, 천을 짠 후에 잿물에 삶아 희고 부드럽게 처리하는 과정을 거치지 아니한 베를 말하는데, 아직 숨이 살아있어 물에 젖으면 느슨해졌다가 마르면 움츠러듭니다. 그러므로 옷감으로 쓰려면 늘어났다 줄었다 하지 않고 질감도 부드럽도록 여러 단계의 처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새 포도주 역시 담은 지 오래되지 않아 아직 왕성하게 발효가 진행되는 포도주를 말합니다.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맛이 순하고 향이 좋은 고급 포도주가 되며, 새 포도주는 아직 숙성되지 않아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복음을 생베와 새 포도주에 비유하신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생베와 새 포도주의 특성을 가지고 복음의 성격을 설명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첫째로, 생베와 새 포도주는 복음의 새로움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오해와 공격을 받으신 이유 중 하나는 그때까지 유대인들이 지켜온 상식들을 과감하게 어기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나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실 때 무리 중에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음을 보셨습니다. 회당에 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눈에 불을 켜고 예수님께서 그 병자를 고치시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신 다음에 무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하시며,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네 손을 내밀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그리했더니 즉시로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이를 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분이 가득하여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의논했습니다.

그들이 볼 때 예수님은 율법을 범하고 유대교의 전통을 깨뜨리는 사람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형식적인 안식일 준수에 치중한 바리새인들과 달리 안식일을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날로 삼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안식일 준수인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시 유대인들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하여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면 이 계명을 지킨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1)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5:)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계명을 형식적으로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했으나 예수님께서는 계명에 담겨있는 본래의 의도를 지켜야지 형식적인 준수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따라 사는 것은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본받아 형식에 치중하지 말고 신앙의 본질을 중요하게 여기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5)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7)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3:)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과 믿은 이후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고린도후서 517절에 이르기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난 성도들이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둘째로, 생베와 새 포도주는 복음의 역동성을 말합니다.

생베는 아직 풀이 죽지 않아 수축력이 강합니다. 새 포도주는 한창 발효 중에 있으므로 많은 가스를 만들어 냅니다. 이와같이 복음은 형식적인 종교 생활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이기고 악을 물리치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묻기를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만 전하시고 아무 능력도 행하지 않으셨다면 메시아라고 인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시어 불치의 병자들을 고쳐주셨고, 귀신들을 쫓아내셨으며, 죽은 자들을 살리셨으며, 떡 몇 개를 가지고 수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복음을 들은 자마다 죄를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세리가 회개하고 주님의 제자가 되는가 하면,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을 독실하게 따르는 경건한 여성이 되었습니다. 핍박자 사울이 회심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에티오피아 내시는 빌립 집사의 전도를 받고서 고국으로 돌아가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에티오피아를 기독교 나라가 되게 했습니다.

일제시대 때 유명한 깡패였던 김익두가 복음을 듣고 회심하여 복음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살인마 고재봉이 감옥에서 전도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처형을 당하기까지 삼 개월 동안 죄수 1800명을 전도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고 실천할 때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의지할 때 시험을 이기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9:23)고 하셨으며, 사도 바울은 이르기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머리로만 아는 신앙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을 실생활 속에서 나타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생베와 새 포도주는 복음의 순수성을 말합니다.

생베와 새 포도주는 오래 묵은 것을 가지고 만든 것이 아니고 새 실로 짜낸 베와 막 따온 포도로 담근 포도주를 가리킵니다. 그런 만큼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세가 전해 준 율법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거기에다 랍비들이 만들어 낸 이론들을 첨가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고르반입니다.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신 계명을 교묘하게 변질시켰습니다. 그리하여 부모에게 드려야 할 생활비를 드리지 않으려고 부모에게 가서 부모님이 나에게서 받으실 것이 고르반(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었습니다고 말하기만 하면 부모를 공양할 책임을 면케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들이 전해 준 전통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만든 전통이나 규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복음은 과거의 종교를 손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신 생명의 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10:8)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대적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의 특권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던 자들이었으나 예수님께서는 선한 목자로서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복음을 혼잡케 하는 자들이 많이 일어나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순수하게 믿고 행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낡은 옷과 낡은 가죽 부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첫째로, 낡은 옷이나 낡은 가죽 부대는 구태의연한 종교사상을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교는 대제사장들과 사두개파 사람들, 그리고 바리새파 사람들의 활동 무대였습니다. 전자는 성전을 중심으로 권익을 누렸고, 후자는 회당을 중심으로 세력을 뻗쳤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목자 없이 유리 방황하는 양들과 같은 처지였습니다. 유대 종교가들이 철저하게 계명을 지키고 자주 금식을 하고 자선을 베풀지라도 그것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하는 행동이었지 살아계신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당시 유대교는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날마다 깨어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 낡은 옷이나 낡은 가죽 부대처럼 되고 맙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실생활 속에서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그 결과,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감사가 없고 기쁨도 없고 습관적으로 무의미하게 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심령이 낡은 옷이나 낡은 가죽 부대처럼 변질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둘째로, 낡은 옷이나 낡은 가죽 부대는 인본주의 가치관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생활을 할 때에나 변함이 없이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천국 시민의 가치관이 있습니다. 산상수훈을 비롯하여 사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31절에 이르기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하나님 중심, 신본주의 가치관을 가지라는 명령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기독교인 가운데는 인본주의 가치관을 따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참신성을 상실하고 낡은 옷과 낡은 가죽 부대처럼 복음의 능력을 간직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생베 때문에 겉잡을 수 없이 헤어진 낡은 옷과 같고, 새 포도주를 담았다가 터져버린 낡은 가죽 부대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답게 복음에 입각한 가치관을 가지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낡은 옷이나 낡은 가죽 부대는 세속적인 생활 방식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따라 살면 본분을 망각하고 세속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영적으로 무능하게 되어 복음이 가르치는 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생활을 살펴서 세속화된 부분이 없는지 진단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합니다. 우리는 롯이 삼촌 아브라함을 떠나서 점점 장막을 옮겨 소돔성에 들어가 살았다가 소돔이 불에 타 멸망할 때 천사들에 의해 겨우 목숨을 건진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세속화는 치명적인 독과 같아서 신앙의 생명을 죽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21)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4:)고 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세속화를 거부하고 구별된 성도답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생베 조각과 낡은 옷은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서로를 해칩니다. 새 포도주와 낡은 가죽 부대 역시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낡은 옷을 수선하는데 생베를 쓰면 옷과 생베를 다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생활 속에 일부만 복음으로 대체하고 나머지는 이제까지 살아온 대로 하겠다고 하면 결코 올바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동시에 세상을 따라서 사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제대로 믿지 못하고 세상에서도 어중간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인도 아니고 불신자도 아닌 기형적인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냐, 세상이냐,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이냐,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살 것이냐를 결정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교묘히 절충해서 살아갈지라도 나의 신앙양심이 알고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전과 전혀 다른 삶입니다. 일부를 수리한 정도가 아니라 이전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새로운 피조물, 거듭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알고 실천함으로 생베와 같이 새롭고, 능력있고, 순수한 신앙의 사람이 되시고, 강력하게 발효하는 새 포도주를 담은 새 가죽 부대처럼 복음의 능력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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