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양 제 일 교 회
목양제일교회 교회안내 교회기관 설교말씀 예배생활 성경찬송 성도교제 교회소식  
                                                                                                            
 

 


:::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1-06-13 19:54:55, Hit : 306, Vote : 4
 http://www.mogyang.org
 https://youtu.be/6Tu3yJFO07Q
 믿음과 행함

무제 문서

요즘 기독교인의 약점 가운데 하나는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열의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부족한 까닭은 기독교인의 정체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등록하고 교리문답을 통과하고 세례를 받고 정규 예배에 참석하니까 나는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은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과연 이와 같은 것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진실한 증표라고 할 수 있을까요?

머지않아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불러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둘로 나누실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대답하기를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번에는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기를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대답하기를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라고 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들 앞에서 기독교인 행세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가르침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이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 주님의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기독교인 행세를 할 수 있지만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실상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기에 야고보 선생은 말씀하기를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1:22)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2:14)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언뜻 보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진리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로마서 328절에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고 했고, 갈라디아서 216절에는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방금 언급한 구절은 하나같이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야고보 선생은 믿음보다 행함을 더 강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행함을 믿음보다 중요하다고 한 것이 아니라 행함 있는 믿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은 그 본질상 행함이 함께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입으로는 주님을 믿습니다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기독교인답게 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주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서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먼저 회심의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회심 없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회심이란 입술로만 죄를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 가운데 변화된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예를 들면, 불법적인 방법으로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때까지의 불법을 회개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번 돈은 돌려주고 남에게 끼친 손해를 변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실한 회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 앞에서 말하기를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주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한국 교회 안에는 아직도 진실한 회심을 거치지 않고 예비 신자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지 않고 축복받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진실한 기독교인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을 백 퍼센트 지키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실천하려는 열망과 실제적인 노력이 확연히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선생은 실질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합니다.

“15)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17)이와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2:)

이 말씀처럼, 야고보 선생은 가난한 형제를 보살펴 주는 여부를 보아서 진실한 믿음인지 형식적인 믿음인지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가난한 형제를 보살펴 주는 것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선행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그러면 야고보 선생은 복음의 진리를 오해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야고보 선생이 말씀하는 요점은, 믿음으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믿음이 진실된 것인지 거짓된 것인지를 분별하는 기준을 언급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는 데 힘쓰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구제를 모르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오히려 그편이 이상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행함이 중요한 이유를 야고보 선생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8)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19)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21)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3)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25)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 선생은 두 종류의 신자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하나는 행함으로 믿음을 보여주는 신자이고, 다른 하나는 행함이 없는 위선적인 신자입니다. 지금 야고보 선생은 믿음과 행함을 가지고 참 믿음과 거짓 믿음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을 분간하는 기준은 입술의 고백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못하며, 믿는 것을 행함으로써 나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이사 가기 전에 점쟁이를 찾아가서 길일을 알아보고, 자녀를 결혼시킬 때 궁합을 알아본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거짓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나는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 믿습니다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믿음의 고백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야고보 선생은 이르기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구나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했습니다.

귀신들은 하나님이 한 분이신 사실을 철두철미하게 믿습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은 교리적으로 바른 지식이지만, 그것을 믿는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귀신들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을 믿고 떨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지는 않습니다.

나의 믿음이 진실한 것인지 아닌지를 아는 또 하나의 길은 나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귀신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제아무리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을 믿더라도 귀신들은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 대하여 교리적으로 바르게 알고 믿을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없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거짓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이단은 추종자들에게 한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는 계명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과연, 그럴까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14:15) “23)…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24)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14:)고 하셨습니다.

이뿐 아니라, 요한일서 2장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3)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아무리 믿음으로 구원받는 교리를 강조할지라도, 만약에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한다면, 이는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므로 그 사람의 믿음은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이므로 진실한 믿음을 가졌다는 인정을 받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거짓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믿음과 행위를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줄 알고자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허탄한 사람입니다. 믿음과 순종은 별개의 것이 아니고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와 같고,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둘은 언제나 함께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을 때 순종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물로 바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미 이삭으로 말미암아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재 가운데서라도 이삭을 살려내어 반드시 약속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의 절대적인 순종은 믿음의 행위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에는 반드시 순종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순종을 통해서 자기 믿음을 확증한 것입니다.

이처럼 진실한 믿음은 반드시 행함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침으로써 자기 믿음을 입증했을 때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야고보 선생은 기생 라합을 예로 들어서 재차 설명합니다. 라합은 여리고 성벽 위에서 주막을 경영하던 기생이었는데, 하루는 낯선 두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라합은 한눈에 그들이 이스라엘의 정탐꾼임을 알아챘으나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지붕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에 벌여놓은 삼대 속에 숨겨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여리고 왕의 사자가 왔을 때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라합이 거짓말을 했으니 잘못을 범한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그것은 성경이 다루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라합이 얼마나 정직한 여자였는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여인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을 숨겨주었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다시 말하면, 라합의 행함 있는 믿음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만일 그녀가 정탐꾼들을 숨겨준 사실이 발각되는 날에는 그 자신은 물론이고 그의 가족 모두가 반역죄로 몰려서 목숨을 잃게 될 것이 뻔합니다. 더구나 라합의 행동은 자기 민족을 배반한 반역행위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자기 민족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빼앗으려는 적국의 스파이와 내통한 반역죄는 죄질이 매우 나쁩니다.

그러나 성경은 라합을 정죄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의 사람이라고 칭찬합니다. 히브리서 1131절에 이르기를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였으며, 야고보서 225절로 26절에는 “25)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라합을 행함 있는 믿음의 소유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평가와 사람의 평가가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평가 중에서 하나님의 평가가 옳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언제나 정당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때라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신뢰하고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라합의 행위를 사람들의 편이 아닌 하나님의 편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라합은 하나님의 편에 서서 사태를 파악하였고, 그 결과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도와야겠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 일로, 여리고 성이 함락되었을 때, 라합과 그의 친족들은 다 목숨을 건졌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라합의 행위는 동족을 배신한 것이지만, 성경은 라합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라합은 비록 이방인이지만 선민의 조상 아브라함과 더불어 믿음의 인물로 인정받습니다. 그것은 그가 단순히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숨겨준 행함을 통해서 자기의 믿음을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라합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심을 믿었으나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을 숨겨주지 않았다면, 그녀의 믿음은 행함이 뒷받침되지 못했으므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했을 것이요 여리고 성이 함락되었을 때 영락없이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는 말씀과 같이 행함으로써 자기의 믿음이 진실함을 입증했던 것입니다.

또한 야고보 선생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구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장의사가 와서 죽은 사람을 예쁘게 꾸밉니다. 얼굴에 분도 바르고 머리도 빗기고, 좋은 옷을 입혀서 마치 잠자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실은 주검에 불과합니다. 그 속에 영혼이 없으므로 살아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의미가 없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 역시 죽은 것입니다. 입으로 믿는다고 하니까 믿음이 있어 보이지만 실은 그런 믿음은 무용지물에 불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믿음에는 행함이 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75세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하시기를 “1)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12:)고 하셨을 때, 그는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미지의 땅을 향하여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바치기 전에 이미 행함 있는 믿음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려움을 만난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풉니다. 특히, 한 교회의 지체인 신자들 가운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면 외면하지 않고 보살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 제자라고 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새번역 마 10:42)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행함 있는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주님의 인정을 받는다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큰일을 할지라도 주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무익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어려움을 만난 성도들을 보살펴 준다면 행함 있는 믿음을 가진 성도로서 주님의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9절에 이르기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행함 있는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먼저, 우리는 각자의 믿음을 행함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씨앗이 생명을 간직한 것인지는 싹이 나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죽은 씨앗은 아무리 비옥한 땅에 심고 물과 거름을 주어도 싹이 나지 않지만, 산 씨앗은 새싹이 돋아납니다. 믿음이 있지만 연약해서 행함이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경우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런 상태로 남아있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진실하다고 인정받지 못합니다. 진보를 나타내야 산 믿음이지 그렇지 않다면 거짓된 믿음에 불과합니다.

처음부터 아브라함처럼 순종하지 못할지라도 작은 것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듯이, 신앙생활도 비슷합니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십시오. 그리고 점점 순종의 단계를 높여 나가십시오. 죽은 나무는 자라지 않지만, 산 나무는 끊임없이 자랍니다. 아무쪼록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임을 명심하시고, 철저한 행함을 통하여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라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51   하나님 아버지의 집을 바라보라  mogyang 2021/09/24 25 4
750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mogyang 2021/09/10 24 1
749   끝까지 견디는 성도가 되라  mogyang 2021/09/04 35 0
748   거룩한 산 제사  mogyang 2021/08/24 77 7
747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mogyang 2021/08/23 62 5
746   주님을 따르는 성도가 행복한 이유  mogyang 2021/08/10 85 0
745   주님의 인정을 받는 믿음  mogyang 2021/08/05 90 2
744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준 사도의 권면  mogyang 2021/08/05 80 3
74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세 가지  mogyang 2021/07/30 99 4
742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  mogyang 2021/07/16 123 2
741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mogyang 2021/06/27 200 3
  믿음과 행함  mogyang 2021/06/13 306 4
739   생베와 새 가죽 부대  mogyang 2021/06/04 375 3
738   당신은 구세주를 믿는가?  mogyang 2021/05/25 497 8
737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면  mogyang 2021/05/06 4732 5
736   시련의 때에 할 일  mogyang 2021/04/21 558 10
735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  mogyang 2021/04/06 516 12

1 [2][3][4][5][6][7][8][9][10]..[45]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zero

[목사님 메일]   [전도사 메일]   [운영자 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