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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1-06-27 21:25:21, Hit : 199, Vote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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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무제 문서

하루는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셔서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에 모시고 떠나니 어떤 열성적인 사람들이 탄 배들도 함께 했습니다. 마가복음서를 보면, 해변을 떠난 시각이 그날 저물 때라고 했습니다(4:35). 날이 어두워져 가는데, 제자들이 탄 배는 물살을 가르며 건너편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때에 주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셨습니다. 이는 그날 많은 사람을 상대로 바쁘게 보내셔서 몹시 피곤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해변에서 상당히 멀리 왔을 때였습니다. 주님께서 주무시는데, 마침 세찬 바람이 불어와 너울이 일기 시작하였고, 순식간에 배에 물이 가득 차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겁에 질린 제자들이 주님께 나아가 깨우며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깨어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곧 잔잔해졌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하시니,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놀라 말하기를 "도대체 이분이 누구신데 바람과 물결까지도 그 명령에 복종하는가?"라고 했습니다.

이 시간, 저는 본문을 통하여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위기를 허락하십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셔서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저녁에 해변을 출발했을 때는 기상 조건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바람이 세차게 불었더라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불어오는 초저녁의 감미로운 훈풍을 맞으며 상쾌한 기분으로 노를 저어 나갔을 것입니다. 더구나 주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는 것이니 마음이 흐뭇하고 든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해변을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제자들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광풍을 만나 죽을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우리가 주님의 명하신 대로 했는데 어찌 이런 위험한 일을 겪게 된 것일까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처럼 우리도 주님을 열심히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힘쓰는데 인생의 위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짓다가 위기를 만났다면 하나님께서 징계의 매를 때리신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여 징계하듯이 우리가 어긋난 길로 갈 때 사랑의 매를 때려 깨닫고 돌이키게 하십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데 힘쓰는데도 삶에 크고 작은 위기를 만난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까요?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생의 위기는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다의 특성은 변화무쌍한 것입니다. 날이 맑고 바람이 잔잔하다가도 순식간에 기상 조건이 돌변해서 번개가 치고 폭우가 퍼붓고 풍랑이 대작하기도 합니다. 성도들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세인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위기를 만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잠언 271절에 이르기를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하루,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좋지 못한 하루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시작은 좋았는데 결과가 나쁘기도 하고, 큰 기대를 걸지 않았는데 일이 잘 풀릴 때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우리의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갈 때가 적지 않습니다. 이에 대하여 솔로몬은 권면하기를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7:14)고 했습니다.

만약에 삶이 우리의 계획과 의도 대로 이루어진다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자만하며 악을 자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 일을 알 수 없으므로 겸손히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고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일회적인 인생을 살아갑니다. 가수 서유석 씨가 부른 노래에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노인이 존경을 받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지금 젊은 세대보다 먼저 젊은 시절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인에게도 앞으로 남은 날들은 여전히 경험하지 못한 것이므로 유종의 미를 거두려면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한편,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는데도 삶에 위기를 만나는 것은 믿음의 연단을 위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선민의 조상 아브라함은 벌써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자라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창세기 17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구십 구세 때에 나타나셔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99세 때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백 세에 낳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하셨으며, 아브라함이 그 시험을 통과했을 때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22:12)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위기를 만나거든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연단하셔서 한 단계 더 성숙하고 온전한 신앙인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알고 달게 연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주님을 잊고 살 때 인생의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본문을 보면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고 했습니다. 광풍은 예수님께서 잠이 드셨을 때 갈릴리 호수를 엄습했습니다. 제자들의 위기는 주님께서 곤히 주무시고 계셨을 때, 그들만의 역량으로 광풍에 휩싸인 배를 지켜내려 했을 때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제자들은 광풍과 싸우는 동안 주님을 망각한 상태였습니다. 때로 우리도 제자들과 같은 일을 겪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으며 사랑하지만, 어떤 때는 주님을 잊고 내 생각대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와 한 배에 타고 계시지만 주무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잠자는 사람과 대화하거나 의논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주님께서는 어떤 상태에 계신가, 깨어서 나와 소통하고 계신가 아니면 주무시는 것처럼 나와 주님 사이가 단절되어 있는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주님을 잊고 살면 언제든지 위기를 만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양이 목자의 눈을 벗어나면 길을 잃고 벼랑에 갇히거나 맹수에게 잡혀 먹히고 맙니다. 양은 목자와 함께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평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 인도하심을 따를 때 걱정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마귀는 우리의 관심을 세상으로 향하도록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이 세속 문화에 매혹되어 영적 무장해제를 당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돈이냐 하나님이냐?”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요구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욕심의 광풍에 사로잡혀 믿음에서 파선하는 신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화니 크로스비 여사는 생후 6주 만에 감기와 눈의 염증으로 시력을 잃었으나 일생을 주님과 동행하는 은혜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95세까지 살면서 찬송시를 8천 개 이상 작사했으며,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에 그의 작품이 여러 편 수록되어 있습니다. 크로스비 여사는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주 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크로스비 여사는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언제나 구속한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살았기 때문에 어떤 풍랑도 잠재우고 마음에 평안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7)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28)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10:)고 하셨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곁을 떠나지 말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감으로 모든 인생의 위기에서 보호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성도들은 위기를 통하여 뉘우치고 주님께로 돌아옵니다.

제자들은 호수를 건너던 중에 느닷없이 광풍이 불어오자 사력을 다해 배를 지탱하려고 했습니다. 제자들 가운데는 바로 그 갈릴리 어부 출신이 네 사람이나 있었으므로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순식간에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것만 같았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어부 출신 제자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광풍의 위력과 두려움을 너무나 잘 알았으므로 다른 제자들보다 더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절망적인 순간에, 제자들은 비로소 주님께서 그들과 한배에 타고 계신 것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때까지 풍랑이 대작하는 가운데 그들밖에 없는 줄로 알았는데 주님께서 한배에 타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제자들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이처럼 위기는 우리의 잠자는 정신을 깨우고 어두운 마음을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위기는 우리를 각성시키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도 같습니다. 논산훈련소에서 신병훈련을 받을 때 매일 아침 6시에 기상나팔 소리가 울리면 곤히 자던 훈련병들이 일제히 일어나 점호를 준비합니다. 기상나팔이 울리면 아무리 졸려도 벌떡 일어나야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인생의 위기 역시 우리의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역할을 합니다. 사람이 망하는 것은 위기 때문이 아니라 정신이 해이하고 타락한 것 때문일 때가 더 많습니다. 정신이 병들면 다른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신이 해이하고 병들었을 때 위기의 광풍을 보내셔서 현실의 위태로움을 각성시켜 주십니다.

제자들은 큰 광풍 앞에서 자기들의 무능을 절감했을 때 비로소 그들과 한배에 타고 계신 주님을 생각해 내고 나아가 깨우며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인간들은 무언가 자기에게 의지할만한 밑천이 있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인생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그렇게 자기의 무능을 자인하고 하나님께로 나아올 때 긍휼을 입습니다.

때로 우리는 영적으로 너무나 무기력해져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하는 줄을 알면서도 주저앉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두렵습니다’(13:3)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윗은 밧세바의 일로 범죄했으나 회개하지 않다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 죄를 시인한 후에 “10)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51:)라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그들과 한배에 타고 계신 것을 알았을 때 지체없이 주님을 깨우며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위기를 만났을 때 결국은 주님께 나아옵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 예수께로 나옵니다

십자가 은혜받으려고 / 주께로 옵니다

슬프던 마음 위로받고 / 이 생의 풍파 잔잔하며

영광의 찬송부르려고 / 주께로 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위기를 만나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오죽 힘들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동정하다가도 그러기 전에 제자들처럼 주님께 나아와 도움을 청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로마서 10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였고, 시편 865절에 이르기를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위기 앞에서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자이신 주님을 전해 주는 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네 번째로, 주님께서는 성도들이 나아가 부르짖을 때 위기에서 건져주십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나아가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부르짖었을 때, 예수님께서 잠을 깨시고 일어나셔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곧 그쳐 잔잔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지셨으므로 일을 많이 하시면 피곤하셨으며 음식을 들지 않으시면 시장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신 신성을 가지셨으므로 풍랑이 대작하는 배 안에서도 깊이 주무셨으며,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바람과 물결이 복종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이르기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람과 풍랑을 꾸짖으시니 바람과 풍랑이 창조주의 권위 앞에 복종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우리 삶을 엄습한 위기의 광풍을 향하여 잔잔하라고 명하시기만 하면 그 어떠한 가공할 위기도 일거에 해결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복음서를 읽어 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이적을 말해 줍니다. 병고의 광풍을 만난 병자들을 고쳐주셨으며, 귀신들에게 사로잡혀 정신이 파탄 난 자들을 온전케 만들어 주셨으며, 심지어는 죽은 자들을 살리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세리와 죄인들을 회개시켜 천국 시민으로 삼으셨으며, 자기만 알던 이기주의자를 변화시켜 가난한 이웃을 위해 재산을 내어놓는 선량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자기만을 위해 살던 사람이 주님을 만나자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광풍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이 시대는 개인이 통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 영역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으며, 사람들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이끄는 대로 끌려다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를 뒤흔들던 광풍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듯이 사람들은 이 시대의 광풍 앞에서 죽은 자처럼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 이 시대의 최고의 가치이고 불문율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광풍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결국 물에 빠져 죽듯이 믿음에서 파선하여 생명의 주님을 떠나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자들처럼 주님께 나아가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가공할 세속 문화와 돈의 위력을 잠재우고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제아무리 강하고 죄의 세력이 막강해도 창조주이신 주님의 능력 앞에서는 초개처럼 살라지고 말 것이며 성도들은 주님의 편에 서서 궁극적인 승리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즉 세상을 두려워 마시고 오직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광풍을 꾸짖어 잔잔케 하시어 제자들을 구해주셨던 주님께서 삶의 모든 위기를 잔잔케 하시고 성도님들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풍랑을 잔잔케 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을 보시고 믿음이 없는 자들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믿음을 활용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기에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가진바 믿음을 사용하는데 서툴렀습니다. 아무리 천하 명검이라도 그것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아야지 단지 손에 쥐고 있는 것만 가지고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믿음을 실생활 속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행함 있는 믿음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갈릴리 호수에 예상치 못했던 때에 광풍이 불어오듯이 우리가 살아 숨 쉬는 한 삶의 위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나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영원히 떠나지 않으심으로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위기를 만났을 때 두려워 마시고 인생의 배에 함께 하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믿음을 묻어 두지 마시고 부지런히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9:23)고 하셨습니다. 인생에 위기를 만났을 때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위기를 해결 받음으로 주님의 크신 능력과 사랑을 간증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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