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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1-10-14 14:01:46, Hit : 84, Vote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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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사랑만큼 소중한 것은 달리 없습니다. 태아가 열 달 동안 엄마의 자궁 속에서 사지 백체를 이루는 것은 탯줄을 통하여 엄마에게서 산소와 영양분과 피를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태아는 오직 엄마의 사랑 가운데 생명을 공유합니다. 태어난 이후에도 한동안 아기는 엄마와의 일체감을 갖고 지냅니다.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자랍니다. 그러나 사랑이 결핍된 아이는 부자 부모를 두었더라도 문제아가 되기 쉽습니다.

사랑은 영유아기 뿐 아니라 청소년기와 청년기에도 필수적입니다. 청소년기는 이성에 대한 사랑에 눈을 뜹니다. 이 시기에 건전한 이성관을 형성하는 것이 나중에 이성을 대하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청년기는 적극적으로 사랑의 대상을 찾아 만나며, 사랑이 무르익으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룹니다. 사랑은 중년이나 노년에게도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사랑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공기처럼, 물처럼 필수적인 것입니다. 다만, 노년이 되면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따뜻한 교제를 나눌 기회가 줄어들므로 가족이나 친지들이 한층 더 배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에, 사랑은 주는 것이냐, 받는 것이냐를 두고 친구와 열띤 토론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솔직히 정답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보니 사랑은 일방적으로 주거나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사랑도 하나 주면 하나 받는 식이어야 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사랑은 주고받아야 사랑의 관계를 지속해 나가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치환 시인의 행복이라는 시는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는 구절로 시작하고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는 구절로 끝맺습니다. 이 시인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남녀 간의 사랑을 두고 한 말이지만, 사랑의 성격을 올바로 간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말하면서 빼어놓을 수 없는 것이 부모의 자식 사랑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그편이 기쁘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평생토록 자식에게 주는 사랑을 합니다. 혹 자식이 받기만 할지라도 부모는 변함없이 자식을 사랑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인간이 하는 사랑 가운데서 부모의 사랑이 가장 순수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부모의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부모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자식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에 비하면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잊지 말 것은 사랑은 사랑으로 화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 가운데서 최고의 사랑은 인생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아무리 순수한 사랑이라도, 알고 보면 조건적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은 상대방의 외모나 성격이나 여러 조건이 마음에 들어야 시작이 됩니다. 한편만 좋아하는 짝사랑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낳은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멀리 떠났음에도 사랑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에 이르기를 “7)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란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수고하고 희생할 마음을 갖지, 무가치한 것을 위해서는 그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은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그만큼 소중히 여기고 사랑했기에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한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희생하셨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그 어떤 사랑보다도 위대합니다. 진실한 신앙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에서 시작이 됩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기독교인으로 살아왔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려면 먼저, 성경을 통하여 중요한 진리들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사랑의 대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진화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물질로 된 몸과 비물질인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사람이 영적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것은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간이 가졌던 하나님의 형상이 없어진 것이 아니지만 본래의 모습에 큰 손상을 입었습니다. 마치 여러 갈래로 갈라진 거울이 사물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처럼, 본래 가졌던 온전한 인성이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들이 본래 가졌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구원이란 로마서 829절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한 대로,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범죄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운명에 처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죄란, 하나님을 거역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것이 죄입니다. 그리고 불순종은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명하시기를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으나, 아담은 뱀의 말에 넘어가서 하나님처럼 되려는교만한 생각으로 그 실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라 죽을 운명이 되었습니다. 범죄로 인해 그는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죄가 가져다주는 치명적인 결과는 하나님과 단절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으므로 하나님과 소통이 이루어져야 영적 생명을 누릴 수 있는데, 이 소통이 단절되었으니 영적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뵙기를 두려워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범죄로 인해 아담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깨어져 불화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창조주시며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 불화하게 되었으니 어찌 평안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불화한 사람은 사람들과도 불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어느 시대나 전쟁과 살상과 파괴로 얼룩져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민족의 역사에서건 억압과 폭력과 거짓과 다툼과 전쟁이 없었던 때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회만 해도 매일 같이 셀 수 없이 많은 범죄가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인간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대신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1장은 이같이 증언합니다. “20)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온갖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는데, 해와 달과 별들, 산과 바다는 물론이고 인간 영웅들과 동물들과 심지어는 버러지조차 숭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인간들이 처한 영적 실상이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리고 종교적인 타락은 윤리적인 타락을 동반했습니다. 로마서 124절 이하에 이같이 증언합니다. “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25)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28)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이처럼 인간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숭배에 빠지고 나자, 도덕적으로도 타락하여 동성애를 비롯하여 온갖 악한 행위를 자행하고 그런 짓을 하는 자들을 두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심각한 사실은, 수렁에 빠진 사람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빠져나올 수 없듯이, 인류는 스스로는 절대로 죄와 파멸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석가모니와 같이 인간의 비참함을 깨닫고 살길을 탐구한 선각자들이 있었으나, 그들 역시 하나님과 단절된 자들로서 구원의 길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잠언 1412절에 이르기를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하였는데, 인간들이 만든 종교들이 그러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범죄에 연관된 자들에게 책임을 물으셨습니다. 뱀에게는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게 하셨고,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자에게는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셔서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게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담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도 아담에게 대한 사랑의 배려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뱀을 저주하시면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하셨는데, 바로 이 말씀이야말로 범죄한 인간들을 위해 구세주를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타락을 안타까워하시고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고 구세주를 보내실 것을 언약하셨던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에 대한 언약은 아담에 이어 경건한 후손들에게 계승되었습니다. 그들 후손 가운데 두드러진 믿음의 인물들은 셋과 에녹과 노아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노아의 아들 셈에게 계승되었고 드디어 선민의 조상 아브라함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22:18)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네 씨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구세주를 가리킨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독자 이삭을 낳았을 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하신 약속이 성취될 것을 바라보며 기뻐했습니다. 독자 이삭의 출생은 그의 자손으로 구세주를 보내주실 것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 역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보증하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후손곧 구세주에 대한 약속이 이루어질 때가 가까워질수록 더 구체적인 예언들이 선포되었습니다. 주전 700여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는 예언하기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7:14)고 구세주께서 동정녀의 몸에 잉태되시어 탄생하실 것을 말하였으며, 이사야와 동시대 사람인 미가 선지자는 구세주가 나실 장소를 구체적으로 예언하기를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5:2)고 했습니다. 이 외에도 이사야서를 비롯하여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구세주의 탄생과 공생애 사역과 그가 받으실 고난과 부활에 대한 구체적인 예언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5:39)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성경은 구약성경을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에는 만물의 창조로부터, 인간의 타락, 죄와 죽음의 시작, 인류의 번성, 홍수 심판,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주제는 구세주에 대한 예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와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은 일점일획도 어김없이 때가 이르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에, 선지자들이 예언한 구세주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탄생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 가셔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 세 번에 걸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오셨으며,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회중 앞에서 이사야서 61장에 서두에 기록된 구절을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자리에 앉으시자 사람들이 일제히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자기가 구세주이신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사복음서는 예수님께서 구세주로서 삼 년 반에 걸친 공생애를 어떻게 보내셨는지 증언합니다. 사도 마태는 증언하기를 “35)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9:)고 했는데, 이로써 우리는 사람들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 종교가들은 일반 백성들을 무시하고 특히 세리들과 속된 자들을 죄인 취급했으나 예수님께서는 선한 목자가 길 잃은 양들을 불쌍히 여겨 보살피듯이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모세의 율법을 들먹이며 돌로 칠듯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으로 그들을 물러가게 하신 후에 떨고 섰는 여자에게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하시고, 그 여자가 주여 없나이다라고 하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짓고 연약한 인간을 깊이 동정하시고 불쌍히 여겨 살길을 열어주신 구세주의 모습을 대합니다. 심지어는 유대인들에게 이방인 취급을 당하던 사마리아 여자의 물음에도 진지하게 영생의 도리를 일러주셨고, 가나안 여자가 귀신 들린 딸을 위해 호소했을 때에도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구세주로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마치시던 그해의 유월절 예비일에 유월절 어린양이 희생되듯이, 자기의 생명을 만민의 대속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셨습니다. 곧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갖 누명을 뒤집어쓰셨으나 자기를 변호하지 않으셨고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셨습니다. 기왕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여 만민을 위한 대속 제물로 자신을 바치시는 것이므로 온전한 순종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곧 우리 인생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하신 대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기독교 신앙은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무리 교회생활을 오래 했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형식적인 신자에 불과하지 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사도 요한의 권면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독생자를 희생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았다면 그것으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그 사람은 구세주의 보혈로 죄사함 받았고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었으며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사람은 이제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합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랑으로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타산적인 사랑이 아니라 아가페 사랑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주 안에서 베푸는 사랑이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타산이 아니라 받은 사랑에 감격하여 온전한 사랑을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그리고 주 안에서 믿음의 식구들 간에 서로서로 사랑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성도님들의 마음에 차고 넘쳐서 언제 어디서나 순수한 사랑으로 행하게 되시기를 목숨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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