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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1-11-22 18:20:10, Hit : 72,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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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하는 그리스도인

올해의 추수감사절은 코로나 19가 창궐하는 때에 지킵니다. 코로나는 우리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벌써 2년이 되었으나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더러는 코로나 특수를 누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오늘 우리는 무엇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까요? 믿음의 관점에서 보면,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기 이전보다 더 크게 감사를 드려야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하고 왕과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으나 이제 완전히 망했구나 한탄하지 않고 “20)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21)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22)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3:)라고 말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백성이 비록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을지라도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면 다시금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태가 지나도록 여전히 코로나 19가 계속되어 생활에 어려움이 많지만 좌절하지 않고 감내해 나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머지않아 코로나 사태도 지나갈 것입니다. 밤이 오면 아침도 올 것이고, 하나님의 노염은 잠깐이지만 그 은총은 평생이며,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30:5). 오늘은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로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첫 번째로, 그리스도인은 받은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범사란 모든 일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범사란 모든 형편을 의미합니다.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구절은 아주 짧지만 실은 천금같이 무거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무슨 수로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쁜 일이 생기면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슬픈 일을 만나서도 감사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계획한 대로 일이 잘되면 감사할 수 있지만 실패했는데도 감사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건강할 때 감사하기는 쉬워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감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러면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불가능한 것을 실천하라고 명하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문제의 열쇠는 감사의 조건들을 찾아낼 줄 아는 우리의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가 쓴 「불가능은 없다」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캘리포니아 사막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새들이 살고 있습니다. 어떤 새들은 먹이를 찾아 큰 원을 그리며 날아다니나 아무것도 찾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벌새라고 하는 아주 놀라운 새가 있는데, 이 새는 황무지 위를 날다가 멀리 있는 선인장에 핀 아름다운 꽃을 발견하면, 쏜살같이 내려가서 새빨간 선인장 꽃에 부리를 꽂고 꿀을 빨아 먹습니다. 다른 새들이 아무런 먹이도 찾아내지 못할 때 이 벌새는 선인장 꽃에서 꿀을 얻습니다,

슐러 목사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말하기 위해 벌새를 소개했으나,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벌새야말로 어떤 불리한 형편에서도 감사의 조건을 찾아내는 그리스도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먼저, 우리는 기억의 창고를 열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쌓여 있는 잊혀진 보물들을 끄집어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지난 세월 동안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셨던 은혜로운 일들을 망각 속에서 꺼내어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위기에서 건져주셨던 일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보람되이 지냈던 일들, 기뻤던 일들, 성취를 이루고 좋아했던 일들을 기억의 창고에 방치에 두지 말고 되새겨 보십시오. 그리하면 그런 우리의 행위가 과거를 회상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내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를 알게 해 줄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지난날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처럼 소중한 일도 달리없습니다. 그 은혜로운 기억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일깨워주며 현재에 당면한 어려움을 이겨내게 하고 미래에도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 줍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복수를 피해 외삼촌이 사는 하란을 향해 길을 떠났는데 한 곳에 이르러 해가 졌습니다. 그가 맨땅에 돌을 베개하고 누워 잠이 들었는데, 꿈에 보니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보니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또 보니 하나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하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이같이 서원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야곱에게 복을 주셨으므로 그는 타향살이 20년 만에 대가족을 이루고 거부가 되어 귀향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형 에서와도 화해하였으므로 아무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때 야곱은 숙곳에 잠시 머물다가 세겜으로 옮겨 집과 우릿간을 짓고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이 같은 행동은 지난날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망각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는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환난으로 야곱을 깨우셨습니다. 하루는 외동딸 디나가 세겜 성의 여자들을 구경하러 갔다가 그 성의 추장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러자 이 사건에 분노한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과 고을 남자들을 속여 할례를 받게 한 후에, 삼 일째 가장 고통이 심한 때를 노려 성을 기습하여 모든 남자를 죽여버렸습니다. 이 사건을 알게 된 야곱은 너무 놀라고 두려워 넋이 나갈 지경이었습니다. 만약에 주변 고을들이 이 참극을 알고서 힘을 합쳐 덤비면 야곱의 가족은 몰사하고 말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이 지난날에 한 서원을 망각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만약에 야곱이 만사형통할 그때, 에서를 피해 도주하던 때에 그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에 대하여 잊지 않고 기억했더라면 세겜의 비극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늦게나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닫고 지난날의 서원을 갚기 위해 벧엘로 올라갔고 그곳에 단을 쌓았습니다. 야곱은 세겜을 떠나기로 하고 가족에게 이르기를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환난 날에 그와 함께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한 것이야말로 그가 각성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난날 어려웠던 시절에 받았던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마시고 자주 기억하면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태만해질 때, 세속에 마음이 끌릴 때, 과거에 받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시험이 많은 시대에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기독교인들이 믿음으로 살아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생존경쟁이 심해 양심을 지키며 정직하게 살려면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세속의 유혹이 많습니다. 물질에 대한 유혹, 쾌락에 대한 유혹, 성공에 대한 유혹 등이 세인들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똑같이 다가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세속에 의해 포위당한 상태와 같습니다. 황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아온 것은 우리의 결심이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을 지켜주셨기 때문인 것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으며 삼 년 이상이나 예수님을 따르면서 직접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교훈을 듣고 행하시는 이적을 목격했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이 행해졌던 현장에서 무리에게 떡과 고기를 나누어주었으며, 말씀 한마디로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주님의 능력도 경험했습니다. 심지어는 밤중에 갈릴리 물 위를 걸어오셨던 예수님처럼 그도 물 위를 걸은 적도 있었습니다. 비록 불어오는 바람을 무서워하다가 물속에 빠지긴 했지만 그것은 놀라운 신앙체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뿐입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다들 침묵하고 있는데,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여 주님의 칭찬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이만하면 어디를 가더라도 당당하게 믿음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예수님께서는 체포되시던 날 저녁에 마지막 만찬 석상에서 이르시기를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기를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으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것은 시몬이 자기를 과시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솔직한 심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주님께서 체포되셨을 때, 대제사장 관저의 뜰에까지 들어가 하인들 사이에 앉아 모닥불을 쬐던 중에 어느 여종이 그를 알아보고서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던 자라고 하자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부인했으며, 세 번째는 맹세하며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부인하였을 때 새벽닭이 울었고, 시몬은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습니다.

베드로는 큰 시험에 들었으나 완전히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고 믿음을 회복했는데, 이는 주님께서 그를 위해 기도해 주신 덕분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악한 세상에서 많은 시험을 당하면서도 지금까지 믿음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우리 믿음을 붙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26절에 이르기를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성도들의 몸을 성전 삼아 계시면서 성도들이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께서는 성도들의 마음을 감화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담대한 마음으로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1:6).

지금 세상은 노아의 때와 흡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형편에 대하여 “37)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24:)고 하셨습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이 멸망 받을 죄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들의 영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이 오직 세상일에만 몰두해서 사는 것이 멸망 받을 죄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기독교인들이 이와 같은 세인들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받아 믿음의 길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부요를 영적 부요로 착각하고 부족함이 없다고 여깁니다. 자기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지 못하고 각성이 없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같은 기독교인들에게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촉구하시며,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같은 주님의 간절한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18:8)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주님의 강림이 가까울수록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적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믿음을 지켜온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욱 분발하여 주님 앞에서 받을 상급을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역경 중에서도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평안을 가져다 주지만 그것은 육신에 속한 평안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 속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고 하셨는데, 주님께서 맡아주시는 짐은 죄의 짐을 의미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쉼은 심령의 평안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의 평안과 일상생활의 안일을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의 짐을 해결해 주셔서 모든 죄책에서 자유롭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르려면 반드시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3)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4)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6)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9;)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잘 믿으면 아무 고난도 없고 만사형통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2절에도 이르기를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려면 반드시 고난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으면 평안과 번영만 있을 것이라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나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받은 시험들은 감당할 시험들이며, 하나님께서는 미쁘시므로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우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고전 10:13).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일로 핍박을 당할 때 이상히 여기지 말고 당연한 것으로 알아서 믿음으로 이겨 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까지 우리가 시험을 이기고 믿음을 지켜온 것이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믿음을 우리에게 주신 분이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믿음의 작고 큼을 따질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믿음으로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17:20)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믿음이 작다고 핑계 댈 것이 아니라 순전한 마음으로 믿음을 실천하여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성도들은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에 이르기를 “3)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려면 고난 없이는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고난을 인내로써 이겨낼 때 신앙이 연단을 받게 되고, 연단을 잘 이겨낼 때 소망을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고난이야말로 성숙한 믿음을 갖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을 알아서 오히려 큰 기대를 가지고 고난을 이겨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겟습니다.

시편 119편을 지은 성도는 고난이 가져다주는 신앙상의 유익을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67)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71)

이처럼 우리가 고난을 통하여 영적 유익을 크게 받는다면 어찌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난을 감내하지 않겠습니까? 인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두 해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예배에 지장을 받았으며, 아직까지 예배 외의 모임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역병 사태를 통해서도 신앙에 큰 유익을 얻고 감사의 조건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다만 고통을 받은 것으로 그친다면 오히려 우리가 책망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인내와 절제를 배우고 어려운 이웃을 동정하는 법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 사태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연단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훈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욥과 같이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23:10)는 기대를 가지고 끝까지 믿음으로 역경을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씩 꼽아 보시기 바랍니다. 비록 코로나 사태로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불평 대신에 감사하고, 낙심 대신에 하나님 안에서 합력성선의 은혜를 기대하며, 기도생활에 힘쓰는 기회로 삼아 큰 응답을 체험하고, 원망 대신에 감사의 찬송을 불러야 하겠습니다. 때로는 하나닙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시더라도 이미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즉시로 응답해 주신다면 감사할 일이지만, 혹 늦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영위하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님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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