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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1-12-12 18:45:42, Hit : 50, Vote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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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아, 일어나라

무제 문서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인간의 가장 큰 비애를 가장 큰 기쁨으로 만들어 주신 내용으로서 성경에 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더불어 나인이라는 동네를 향해 걸어가시는데, 성문에 가까웠을 때 사람들이 한 죽은 사람을 메고 나왔습니다. 그 사람은 청년으로서 과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일찍 남편을 잃고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모든 희망을 걸고 살아왔는데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기 마련이지만, 어떤 죽음은 더 슬프고, 또 어떤 죽음은 덜 슬프기도 합니다. 제 명을 다 살고 별세한 경우는 슬픈 가운데서도 위로를 받습니다. 장수하면서 다복하게 살다가 간 사람을 문상하면 슬픈 분위기보다는 무슨 잔칫집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나인 성문에서 만난 상여 행렬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절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했습니다.

죽음이란 인간의 무력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노인의 죽음이나 청년의 죽음이나 죽음의 성격은 같습니다. 죽음은 다 인간의 한계를 말해줍니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어찌해 볼 수 없는 무력함, 허무함을 맛봅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새 생명들이 태어나고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떠납니다. 새 생명의 탄생은 기쁨을 주지만, 죽음은 슬픔을 안겨줍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날 때부터 몸 안에 죽음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인 릴케는 말하기를 과실 속에 씨가 있듯이, 인간은 모두 죽음이 자기의 몸속에 깃들어 있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한세상 살아가면서 그 씨앗을 키워나가다가 결국 죽음이란 결실을 맺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한번 죽어야 할 존재임을 알고 생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장례행렬이 유난히 슬픈 것은 그 주인공이 과부의 외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고 했습니다. 그 청년은 과부의 유일한 희망이었고 사는 보람이었는데, 죽었으니 그 과부의 비애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한눈에 모든 사정을 아시고 그 과부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야말로 주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대하시는데 바탕이 되는 마음입니다.

히브리서에 이르기를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4:15) 하였는가 하면,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2:18)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생들의 어려움을 이해하시고 동정하신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에게 큰 위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 과부를 동정하시고 다가가셔서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슬픔을 덜어줄 수 없는데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울지 말라고 한들 무슨 도움이 될까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슬퍼하는 사람에게 진정한 위로를 베풀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므로 울지 말라하신 것이 말치레일 리 없습니다. 이를 입증하듯이, 주님께서는 상여에 다가가셔서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리고 관을 멘 사람들이 멈추어 서자, 말씀하시기를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죽었던 청년이 곧 일어나 앉아 말을 했습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생명의 주님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이 한번이 아니라 적어도 세 번 나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어린 딸이 죽은 것을 살리셨으며,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이미 무덤에 장사지낸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나사로의 경우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이미 장사지낸 상태였으며, 썩는 냄새가 나는 데도 주님께서 그의 무덤에 가셔서 입구를 막은 돌을 옮겨놓게 하신 후에 나사로야, 나오라하셨더니, 죽었던 나사로가 온몸을 헝겊으로 감싼 채 걸어 나왔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이적을 단 한 번만 행하셨다면, 사람들이 그 신빙성을 의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이나 행하셨으므로 그 어떤 반론도 힘을 쓸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생명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들을 살리신 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정복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준 표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을 살리셨을 뿐 아니라, 친히 죽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인류 역사상 죽음을 이긴 자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누가 또 있습니까? 우리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장사되신 지 삼일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은 언제나 함께 언급되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거주하던 이방인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같이 말씀했습니다.

“3)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6)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8)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

성도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어떤 시험도 너끈히 이겨내고, 영혼의 구원 곧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도들도 주님의 강림이 더디면 죽음을 경험할 것이지만, 두려워할 것이 없는 것이 성도들의 죽음은 육신이 잠시 잠자는 것에 불과하며 그 영혼은 천국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구름을 타고 영광중에 강림하실 때 무덤에서 잠자던 성도들의 몸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부활의 몸으로 일어나게 될 것이며, 살아서 주님을 맞이하게 될 성도들은 홀연히 신령한 몸으로 변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은,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이유에 대하여 “14)…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15)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가 사람들의 삶을 노략질하고 있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폭력과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고통하며,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피해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한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철천지 원수인 뱀 곧 마귀의 머리를 깨뜨리고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 헤맬지라도 이미 치명상을 입고 패배한 상태입니다. 더구나 주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세력을 대할 때 겁먹을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6:11), 영적으로 각성하여 기도하며,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담대히 믿음으로 나아갈 때 마귀는 우리를 피할 것입니다(4:7).

요즘 코로나 팬데믹이 2년이나 계속되는 가운데 지루함과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생계에 위협을 당하는 사람들도 한 둘이 아닙니다. 이는 기독교인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힘든 가운데서도 이번 코로나 사태에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가 있음을 믿고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시편 91편은 코로나 팬데믹을 만난 우리에게 큰 격려를 줍니다.

“1)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2)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5)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6)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7)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하지 못하리로다할렐루야!

이 시편은 성도들은 절대로 병에 걸리지 않고 고난을 만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엘리사와 같은 위대한 선지자와 바울과 같은 능력 있는 사도도 병에 걸린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병에 걸렸음에도 두려움 없이 충실하게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성도들은 절대로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성도들도 병에 걸릴 수 있고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진실되이 섬기는 성도들에게는 질병이나 고난이 재앙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에게는 재앙이라도 성도들에게는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주어지는 연단의 기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혹 전염병에 감염되더라도 두려워할 것이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을 체험하는 기회로 선용할 수 있습니다.

사실이지, 우리의 삶이 언제나 편안하고 건강하다면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것은 일 년 열두 달 쾌창한 날만 지속되면 마실 물도 구할 수 없고, 농사도 지을 수 없고, 화재가 빈발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해 나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만큼 비도 오고 눈도 오고 바람도 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이 항상 편안하기만 하다면 긴장이 풀어지고 정신적으로 해이해져서 급작스레 위기가 닥치면 대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만사가 편안하면 영적으로 해이해져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심을 내지 못하고 세상의 즐거움에 마음을 빼앗기기 쉽습니다.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은 종말이 가까운 때로서, 성도들이 깨어서 주님의 강림을 대비해야 하는데, 영적으로 졸며 자느라 아무 준비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항상 깨어있게 하시려고 때때로 고난을 겪게 하십니다.

사도들을 보면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헌신하는데도 많은 시련을 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하고, 굶기도 하고, 누명을 쓰기도 하고, 병에 걸리기도 하고, 헐벗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핍박과 고난 때문에 사명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핍박과 고난을 감당하고도 남을 위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경험을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3)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 1:)

십자가 없이 영광 없다는 말과 같이, 고난이 없으면 위로도 누리지 못합니다. 고난이 없는데 위로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도 베드로가 헤롯 왕에 의해 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천사에 의해 옥에서 구출 받은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모든 시험과 환난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무슨 일로 두려워하십니까? 하나님께 두려움을 능가할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간증하기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강함을 자랑하지 않고 약함을 자랑합니다. 그것은 자기의 약함을 깊이 알수록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어려움도 너끈히 이겨낼 수 있도록 붙들어 주셨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예수님께서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신 것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밝히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일컬어 그리스도의 표적이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소문이 감옥에 갇혀 있던 세례 요한에게도 들렸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요한에게 말해 준 것입니다. 이에 요한이 제자 둘을 불러 예수님께 보내며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물어보게 했습니다.

드디어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찾아와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말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라고 했습니다. 마침 그때 예수님께서 여러 병자들과 악한 귀신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을 낫게 하시고 많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다가 요한의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성경에 예언한 바로 그 구세주이신지 아닌지를 아는 것은 구세주의 표적이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나는지 여부를 보아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은혜로운 말씀으로 많은 사람을 감동시킬지라도 병든 자들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표적을 행치 않으셨다면 하나님의 보내심 받은 구세주라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는 말씀과 같이 표적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입증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살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5:25)고 하셨습니다.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먼저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1:) 하신 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영접하는 것이며, 믿음으로 영접하는 자는 거듭남의 은혜가 임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완고한 유다 백성에게 말씀하시기를 “1)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55:)고 하셨습니다.

죽은 영이 살아나는 길은 무슨 선행을 하거나 자기의 의로움을 쌓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의 행위는 아무리 선하게 보여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면 됩니다. 듣기만 하면 그 다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십니다. 히브리서 412절에 이르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어 죽은 영을 살려내십니다.

에스겔서 37장은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환상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에 감동을 받은 에스겔이 보니, 어느 골짜기 가운데 섰는데 사방에 뼈가 가득했습니다. 더구나 그 뼈들은 심히 많고 아주 말랐으며 탈골된 지 오래되어 사방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고 하시기로 에스겔이 대답하기를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을 따라 대언했더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였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생기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또 에스겔에게 말씀하시기를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그가 명령대로 대언했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서 그들이 곧 살아 일어서는데 극히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 환상이 말해주듯이, 빛바랜 해골 더미가 큰 군대로 살아난 것은 오직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결과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청년아, 일어나라고 명하셨더니 죽었던 청년이 살아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고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딤후 1:7). 그런즉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거든 마음의 눈을 들어 생명의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마귀의 참소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주님의 품에 있는 성도들을 마귀가 감히 빼앗을 수 없습니다.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 하신 대로, 이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성도들을 두렵게 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뗘나지 마시고 언제나 주님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사망을 이기신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성도님들과 함께하시면서 모든 사악한 세력으로부터 지켜주시고 언제나 풍성한 생명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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