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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1-12-15 18:33:49, Hit : 152,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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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의 용서와 구원

오늘 살펴볼 누가의 증언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극심한 고난을 당하시는 중에 보여주신 은혜로운 행위에 대한 것입니다. 그 날 이른 아침에 로마 총독 빌라도의 허락하에 예수님과 두 행악자에 대한 사형집행이 이루어졌습니다. 형을 집행하는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과 두 행악자를 해골산이라고 불리는 언덕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과 두 행악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땅 위에 세웠습니다. 두 행악자 사이에 예수님을 못 박은 것은 빌라도가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산헤드린 의원들에게 모욕감을 주려고 계획한 것이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글자로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패를 붙인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는 로마 군병 넷이 예수님의 옷을 하나씩 나누고 통으로 짠 속옷은 찢으면 사용할 수 없으므로 누가 갖나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관례에 따라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시편 22편은 메시아의 고난에 대한 예언인데, 거기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12)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13)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16)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많은 황소와 바산의 힘센 소들은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키며, 개들은 로마 군병들을 가리킨 것입니다. “수족을 찔렀다는 구절은 손발이 대못에 박힌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한 대로, 로마 군병들이 주님의 옷을 하나씩 나누어 갖고 속옷을 갖기 위해 제비를 뽑았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은 어느 날 어떤 자들에 의해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이미 예언한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구세주를 죽인 자들의 죄가 감하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원해서 저지른 악행들에 대하여 합당한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적부터 고대해오던 메시아께서 오셨으나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했을 뿐 아니라 로마 총독 빌라도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이에 대하여 요한복음 1장에 이르기를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고 했습니다.

가장 죄가 큰 자들은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의원들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백성의 신앙생활을 책임진 유대교의 지도자들로서 오랫동안 누려온 특권을 지키기 위해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죽이는 편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이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아시고 묵묵히 모든 고난을 감내하셨습니다.

잡히시던 날 밤중에,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실 때에도 당신의 뜻을 말씀드리되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구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22:42) 이와같이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셨기에 우리가 영원한 형벌을 면하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날 골고다 언덕에는 대제사장들을 비롯하여 서기관들과 유대교의 책임자들이 대거 몰려왔고, 수많은 구경꾼이 에워싸고 있었으며, 예수님의 어머니와 함께 온 여인들이 있었고, 형을 집행하고 형장을 관리하는 로마 군병들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서서 구경하고, 산헤드린 의원들은 비웃으며 말하기를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라고 했습니다.

로마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신 포도주를 주며 말하기를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나란히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 가운데 한 사람도 얘수님을 비방하기를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했습니다. 처형장의 분위기가 얼마나 소란스럽고 혼탁하고 사악했는지 너끈히 상상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추하고 살벌한 분위기 가운데서 모든 비방과 조롱의 대상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노하거나 욕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말입니다.

예로부터 죽음 앞에서 의연했던 인물들이 적지 않습니다. 주군을 위해 자기 목숨을 주저 없이 내던지는 신하들도 있고, 친구를 대신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식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사회정의를 위해 자기 한 몸 분신을 택하는 용기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죽음을 택한 사람은 악법도 법이라고 하면서 탈출을 권하는 친구들의 권면을 물리치고 조용히 사약을 마셨던 소크라테스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해 희생제물로 자신을 드리셨을 뿐 아니라,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자들을 용서하셨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죽음이 다른 사람들의 죽음과 다른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범치 아니하셨으며 거짓이 없으셨습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셨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악인들에게 갚으려 하셨다면 당장이라도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살라버릴 권세를 가지셨으나 길이 참으시고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는 주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 법을 배워서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함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그대로 사셨다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46)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5:)

그리고 한번은 제자 중 하나가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하였을 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11:2-4)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몬 베드로가 주님께 여쭙기를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18:21) 하니, 대답하시기를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아니라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찌니라”(18:22)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부모로서 자녀에게 용서를 가르쳐야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부모가 자녀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무턱대고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약함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용서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비방하기 전에, 나 자신의 허물을 생각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신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해야 하고, 신자들은 목회자가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제자들의 잘못을 지적만 할 것이 아니라 너그럽게 이해하는 관용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소에 용서를 가르치신 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참혹하게 고통당하시고 조롱을 받으시면서도 터럭만치의 원한이나 증오도 없이 진심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저희를 사하여 달라고,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 된 것이 감격스럽고 감사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용서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라고 일러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인정이 메마르고 관용을 찾아보기 어렵고 살벌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용서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 사건들을 보십시오. 폭력과 살인으로 보복하는 것을 어떻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상대방을 자기의 소유물로 여기는 야만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과 병적인 집착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요즘은 사람을 평가할 때 인품이나 성실성보다 외모나 재력을 중시하다 보니 젊은이들이 배필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보다 조건을 보고서 결혼하면 사랑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화목한 가정을 원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서로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상대방을 불쌍히 여길 때 그도 나를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의 실수와 허물을 용서할 때 그도 나에게 그같이 대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 쓰기를 “31)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4:)고 했습니다. 이 권면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서로를 대하는 태도일 뿐 아니라 가정을 비롯하여 직장에서나 또는 모르는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적용해야 할 원칙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범죄한 우리 인생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대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살펴볼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통받으면서 죽어가는 순간에도 한 영혼을 귀히 보시고 구원하셨다는 증언입니다. 앞에서 말씀한 대로, 총독 빌라도가 두 행악자 사이에 예수님을 못 박은 것은 대제사장들을 비롯하여 유대 종교지도층을 모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자기가 유대인의 왕을 강도 중 하나쯤으로 여긴다고 그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글자로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패를 붙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메시아께서 강도들 틈에서 고난받으실 것 역시 구약성경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사야서 5312절에 이르기를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무 죄도 없으셨으나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521절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들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시고 죄 그 자체가 되셔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강도들 사이에서 고난받으시는 것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강도들 사이에서 처형을 당하셨다고 악인이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주님의 죽음은 악인의 죽음처럼 보일지라도 실은 대속의 죽음이요 의인의 거룩한 죽음입니다.

반면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관을 쓰고 복장을 차려입고 십자가 아래에서 의기양양하여 예수님을 조롱했으나 그들이야말로 회칠한 무덤과 같이 위선적이고 추악한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의하면, 십자가에 달린 두 행악자나 대제사장들이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죄인들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저의 주장이 아니라 성경이 증거합니다.

로마서 3장에 이르기를 “9)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하였으며,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사람 가운데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보러 온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다 포함되어 있으며, 두 강도도 포함되어 있고,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니, 온 인류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기 허물을 지적받는 것을 죽는 것처럼 싫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죄인인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의인에게는 구세주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나 십자가 아래 있는 사람들이나 그들에 대한 성경 구절을 읽는 우리나 구세주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조건을 붙인 이유는 인간들은 국법이나 도덕률에 의해 여러 부류로 사람을 분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하면 수긍하지만, 당신도 강도와 같은 죄인이라고 하면 불쾌하게 여깁니다. 맞습니다. 우리 인간 사회에 적용되는 법과 범법자를 대하는 감정이 있으며, 이를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좌우에 못 박힌 행악자들은 그 당시의 법률에 의하면 십자가 형벌을 받을 악행을 저질렀음이 분명합니다, 둘 중 하나가 동료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범죄자들을 존중하지 않으며 사회에서 격리시키고 제거해야 할 존재로 여깁니다. 예수님의 좌우 편에 달렸던 두 행악자가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복음서는 침묵하고 있으나, 아마도 그들은 형장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침을 뱉고 욕하고 비웃음을 보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자기들 곁에서 고난받으시는 예수님을 지켜보면서, 더구나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자들을 저주하기는커녕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형장에 모인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예수님에게 집중된 가운데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의원들이 비웃으며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하는 것을 들으면서 행악자들도 호기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로마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예수님에게 신 포도주를 주며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 행악자 중 하나가 예수님을 향하여 비방하기를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했습니다. 그 행악자는 기왕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마당에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는데도 힘센 자들 편에 서서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멸망할 죄인들의 적나라한 모습입니다. 그런 자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해 태어난 지각없는 짐승 같아서, 알지도 못하는 것을 훼방하다가 짐승이 멸망하는 것 같이 멸망 당합니다(벧후 2:12).

한 행악자는 예수님을 향해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했으나, 다른 행악자는 그를 꾸짖었습니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서를 보면, 이 강도 역시 예수님을 비방했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나 누가의 증언에 의하면, 이 강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지켜보던 중에 감동을 받고 은혜를 입어 예수님이 만민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고난 당하시는 메시아이심을 알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가 죄인으로서 당연한 형벌을 받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는 그 사람이 죄를 회개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회개의 첫걸음은 자기가 죄인인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구원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자타가 인정하던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으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 회심한 이후로는 지난날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던 것이 사라지고 도리어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딤전 1:15)고 고백했습니다. 의인이라고 자부하던 그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자기는 죄인이라고 하다니, 예수님을 믿고 나면 상태가 나빠지는 것입니까? 정반대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거듭나지 못한 상태여서 자기의 영적 실상을 알 수 없으므로 의로운 자인양 착각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나면 비로소 자기의 실상을 올바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그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부탁하는 행악자를 긍휼히 보시고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구세주께서 친히 말씀하셨으니, 구원에 대하여 이보다 더 확실한 보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행악자는 그야말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파격적인 구원을 받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날 예수님께서는 오후 세 시에 운명하셨으므로 이 행악자가 주님을 대할 수 있었던 시간은 불과 몇 시간에 불과했습니다. 자칫 시간을 지체했다면 구원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행악자는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 구원받은 이 강도를 부러워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말하기를 이 강도는 평생 제 하고픈 대로 하면서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구원을 받았으니 얼마나 행운아냐고 했습니다. 참으로 한심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행악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로 구원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성도님들께서는 이 행악자를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일찍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교회의 일원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게 된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 겨우 구원받은 사람들은 주님의 일을 할 기회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장차 주님 앞에서 아무 상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불 가운데서 구출 받은 것처럼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누가가 말하려는 것은, 그 행악자의 회심보다 십자가에 달려 고난받으시는 중에도 한 영혼을 귀히 보시고 구원하신 주님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는 구세주의 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에 그를 믿은 성도들이 죄 사함을 받았으며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의 이 고백이 동일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하여 용서를 배우고 한 영혼의 소중함을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용서의 마음과 영혼 사랑하는 열정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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