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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1-01-02 14:13:38, Hit : 153, Vote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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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그는 어떤 사람인가?

오늘은 예수님께서 풍랑을 잠잠케 하신 이적을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그 날 예수님께서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무리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다보니 어느덧 해질녘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8장을 읽어 보면, 하루 동안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그처럼 많은 일을 하시다보면 주님께서도 우리와 같은 육체를 가지셨으므로 무척 피로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휴식을 취하려 하지 않으시고 배에 오르셔서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호수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흉악히 귀신 들려 무덤 사이에서 지내는 두 사람을 구해 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두 귀신 들린 사람은 무덤 사이에서 지내며 돌로써 자해하였으며 심지어 쇠사슬로 묶어 놓아도 곧장 사슬을 깨뜨렸으므로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라” 하신 주님의 말씀과 같이 그들은 귀신들에게 사로잡혀 비참한 상태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피곤하신데도 불구하고 귀신들에게 포로 되고 눌린 그들을 자유케 하시려고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에 모시고 노를 저어 나아갔고, 예수님께서는 배의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잠이 드셨습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고 큰 물결이 일어 배를 덮쳤습니다. 유대인들은 갈릴리를 바다라고 불렀으나 실은 호수입니다. 그것도 우리나라의 소양호와 비슷한 면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어항처럼 사면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 조건으로 인해 북쪽의 헐몬산에서 거세고 찬 바람이 밀어닥치면 호수 위에 바람막이 형성되어 물을 끌어올리게 되어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는 풍랑이 일어납니다. 아주 잔잔한 상태에서 물결이 대작하게 되는 데 반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그 날 저녁에 경험한 풍랑이 그런 종류였으니,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곤히 주무셨습니다. 풍랑이 대작하는 가운데서 주무시다니 우리로서는 상상 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예수님의 모습은 하나님의 아들의 신성을 보여주신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바다를 지으신 창조주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는 노한 풍랑이 주님을 두렵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주님께서 타고 계신 배를 침몰시킬 수 없음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이 같은 이치를 알지 못했으므로 겁을 먹고 죽게 되었다고 아우성을 쳤던 것입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 세상을 괴로움이 가득한 바다 곧 고해(苦海)라고 했습니다. 바다는 항상 풍랑이 거센 것이 아닙니다. 잔잔할 때도 있고, 풍랑이 일 때도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때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비슷합니다. 잔잔한 바다처럼 평온한 시절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러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시련의 광풍이 불어 닥치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자기의 미래에 무슨 일이 생길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미래는 고사하고 당장 한 시간 후도 알지 못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지금 형통할지라도 내일 역경을 만날 수 있고, 지금 역경 중에 있더라도 내일 형통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말하기를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고 한 것입니다. 만약에 인간이 장래 일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도 장래를 알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엄위하신 권위 아래 복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경험이 말해 주듯이, 사람은 자기의 잘못이나 실수로 시련을 자초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원인을 알 수 없이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요 하나님께로부터 의로운 자라는 인정을 받았던 사람이지만, 불시에 무서운 재앙을 만났습니다. 전 재산을 다 잃어버렸고, 열 자녀가 몰사했으며, 온 몸에 불치의 피부암이 발했습니다. 그때 욥은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욥이 당한 고난보다 그를 더 괴롭게 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고난의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욥 뿐 아니라 우리도 경험하는 것입니다.
지금 전 세계를 공포 속에 몰아넣은 코로나 역병 사태가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이 같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을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요즘은 백신과 관련해서 정부의 방침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당국자들이 게을렀거나 사태의 심각성을 몰라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 보다는 코로나의 확산세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바른 정책을 세우려면 예측을 잘해야 하는데 이 점에서 실수를 하여 국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켰습니다. 코로나 역병사태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경제적인 시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건강상의 위기를 만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잔잔하던 갈릴리 바다가 갑작스레 광풍으로 뒤집어진 것과 비슷합니다. 이 외에도 인간관계에서 갈등과 어려움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이것 역시 광풍을 만난 배처럼 우리 인생을 위태롭게 만듭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미워한 나머지 들에서 쳐 죽였습니다. 가인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미움의 풍랑을 억제하지 못하고 형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돈에 대한 욕망, 쾌락에 대한 욕망 때문에 풍랑을 만난 배와 같이 마음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하신 대로, 마음속에 일어나는 광풍을 제어하지 못하면 결국은 자멸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위기는 영적인 풍랑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 풍랑을 제어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잃어버리고 세상을 좇아 살아가게 되고 맙니다. 그런 신자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의심하고 마음속에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의심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의심하면 결국 믿음의 길에서 완전히 파선하고 맙니다.
그러면 우리가 인생항해에서 여러 가지 풍랑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은 최선의 방책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씀해 줍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갑작스런 광풍을 만났을 때, 그들의 경험에 근거해서 배를 어거해 보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제자들 가운데 어부 출신이 네 사람이나 있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저녁 만난 풍랑은 어찌나 거세든지 제자들로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쉴 새 없이 배를 덮치니 배 안에 물이 가득했습니다. 물을 퍼내고 퍼내도 소용이 없습니다. 드디어 제자들은 기진맥진해 졌고 파선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예수님께서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예수님께 나아가 깨우며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하고 외쳤습니다. 이 같은 행동을 통해서 우리는 제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보는 듯합니다.
그들이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며 구원해 달라고 외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입니다. 바로 이점이 성도와 불신자의 차이점입니다. 또는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의 차이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위기를 만나면 먼저 자기 역량을 다해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힘이 부쳐 해결할 수 없게 되면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주님을 찾지만, 불신자들은 절망합니다. 이것이 성도와 불신자의 결정적인 차이점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위기 상황에서 주님을 깨우고 구해 주시기를 구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그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부르짖은 것은 믿음이 적음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더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사실인즉, 광풍이 배를 덮어 파선할 것처럼 위태로웠으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본다면 그들이 탄 배가 침몰할 수 없는 이유를 알고 그처럼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선 풍랑으로 배가 요동치는 중에도 주님께서 편안하게 주무시고 계신 것이 그들의 배가 무사할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제자들의 믿음이 적었으므로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는 책망을 들어야 했습니다. 제자들처럼 우리도 평소에는 믿음이 좋은 것처럼 생각하지만 정작 어려움을 만나면 당황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두려운 그 때 우리는 제자들처럼 기도로 주님을 깨워야 할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주님께서는 고물에서 주무시는 중에도 제자들이 처해 있는 사정과 형편을 환히 알고 계셨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그러한 수준이 못될지라도 그들이 주님께 나아가 도우심을 간구한 것은 잘 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난 까닭이 무엇일까요? 주님께서는 광풍을 통하여 그들의 믿음을 더욱 온전하게 세워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3)…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고 하신 대로, 우리는 시련을 통하여 믿음의 성숙을 이루게 됩니다. 만약에  우리 생애에 시련과 고초가 없다면 당장은 편하겠지만 실은 연단의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어 아무런 믿음의 성장이나 인격의 성숙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순금을 만들려면 용광로에 던져져서 정련의 과정을 통과해야 하듯이 우리의 믿음도 시련의 용광로를 거쳐야 정금 같이 순수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주님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풍랑을 겪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제자들을 통하여 기도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무서운 풍랑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며 구해 달라고 간구하지도 않았을 것이요, 결과적으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위기를 만났을 때 기도를 통하여 주님을 더 깊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기도야말로 성도들에게 주신 위대한 특권임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이르기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언제라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간구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을 아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특권입니까! 그러므로 이 귀한 사실을 알고 기도에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야고보 선생은 말씀하기를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약 4:2b)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아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깨우며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구했을 때, 주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웬만큼 잔잔해 진 것이 아니라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그토록 사납게 불던 광풍과 거센 물살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아주 고요해졌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능하신 창조주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혹 삶에 큰 위기를 만났습니까? 주님께 간구함으로 해결 받으시기 바랍니다. 누가 보아도 제자들은 파선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만드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당면한 문제가 아무리 어렵고 크다 할지라도, 혹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주님께서는 얼마든지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성도님들 가운데는 코로나 역병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만난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 나아가 기도로써 여러분의 사정을 고하고 도움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님들 가운데는 건강상에 광풍을 만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성도님들도 기도로써 주님을 깨우시고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부르짖으십시오. 불치의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들을 살리셨던 주님께서 그 크신 권능으로 성도님들의 질병을 고쳐주실 것입니다.
마음속에 미움의 광풍이 일고 있습니까? 욕심의 풍랑 때문에 힘들지는 않습니까? 주님을 깨우며 부르짖어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광풍과 물결을 명하시어 잔잔케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과 함께 영원한 천국을 향한 항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주님께서 인생 배에 임하여 계시므로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과 상관없는 세상 사람들은 인생의 모든 광풍을 혼자서 견뎌내려 하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부자가 되었어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인생은 무의미하며, 장차 심판의 광풍이 불면 초개처럼 날아가고 맙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 땅에서의 성공과 실패, 부자가 되건 가난하게 되건 상관없이 인생여정을 주님과 함께 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면 성공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 배에 항상 동승해 계시며 모든 악한 자들과 시험과 환난 가운데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어떤 위기를 만날지라도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가 부르짖을 때 즉시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서 붙들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의 기도에 지체 없이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시므로 응답이 늦어서 낭패를 당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되 가장 적합한 때에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해 같은 인생바다를 항해할지라도 주님과 함께라면 아무것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감사할 것은,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광풍을 만남으로써 처음 한 동안은 고생을 했으나 결국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올바로 알게 되는 은혜를 받았듯이, 우리도 역경과 시험을 통해서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유익한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온할 때에는 주님의 권능을 체험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위기를 만나면 그것도 우리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무서운 위기를 만날 때 주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언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장 극심한 고난을 받을 때였지 않습니까? 언제 홍해를 가르셨습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홍해 가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을 때였지 않습니까? 언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까? 광야에서 양식을 구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되었을 때였지 않습니까? 언제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보내 호위해 주셨습니까?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하던 출애굽 때와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가 엄습하던 광야에서 지낼 때였지 않습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위기와 역경을 만났을 때 위대한 구원을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크신 권능과 자기 백성을 향하신 사랑을 나타내 보이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광풍과 물결이 잔잔해지자 기이히 여기며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하고 탄성을 발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가르침을 받고 많은 기적을 목격하면서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못했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보내심 받은 훌륭한 랍비정도로 알았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행하시는 많은 기적을 보았으나 그것은 그들이 직접 체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곁에서 보는 것도 우리 신앙에 도움이 되지만 우리가 직접 주님의 이적을 체험하는 것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구경꾼처럼 신앙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주님의 기적을 직접 체험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은혜 받는 것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우리 자신이 직접 은혜를 받고 주님의 능력을 맛보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이론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알게 됩니다.
제자들이 사경에서 건짐 받았을 때 비로소 그들이 믿고 따르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올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더 이상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믿음이 아니라 체험에 근거한 산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생의 풍랑은 우리에게 큰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인생의 풍랑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가슴 졸이는 불안의 순간을 맛보게 하고, 뼈를 녹이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전에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위대한 영적 승리와 은혜를 체험하게 합니다. 평소에 건성으로 주님을 섬기던 사람에게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기도를 올리게끔 이끌어 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신앙을 한 단계 성숙시켜주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지식을 깊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풍랑 자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다가오는 시련은 어느 것 하나 우연한 것이 없으며 모두 다 주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서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에는 반드시 주님의 뜻이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그 뜻을 알지 못해서 답답해 할 때가 있지만, 그런 때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주님의 뜻이 선하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범죄와 잘못으로 풍랑을 자초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라도 주님께서는 징계를 통하여 우리에게 있는 찌끼를 제거하시고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일하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신 대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면한 모든 곤고함과 역경에 대하여 합력성선이 되게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의 인생 항해에 주님과 동행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삶에 위기와 시련의 풍랑을 만났을 때, 불안해하거나 두려워 마시고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시련의 파고가 아무리 높고 위협적일지라도 겁먹지 말고 주님께 나아가 부르짖어 간구함으로 위대하신 구원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체험함으로 믿음의 성숙을 이룰 뿐 아니라, 예수님이 어떤 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깊이 알고 고백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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