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양 제 일 교 회
목양제일교회 교회안내 교회기관 설교말씀 예배생활 성경찬송 성도교제 교회소식  
                                                                                                            
 

 


:::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1-04-21 18:55:52, Hit : 81, Vote : 3
 http://www.mogyang.org
 https://youtu.be/DCIFoJpdm24
 시련의 때에 할 일

무제 문서

누구나 한세상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겪습니다. 왜 우리 삶에 시련이 오는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해서 명쾌한 답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운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기 인생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자기 인생이 가장 중요하고 자기가 겪는 시련이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시련의 때를 만난 성도들이 할 일이 무엇인지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첫 번째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하나님 앞에서 반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바둑 기사들은 대국을 마치고 나면 복기를 합니다. 복기(復碁)란 한번 두고 난 바둑의 판국을 비평하기 위해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아 보는 것을 말합니다. 복기를 해 보면 대국할 때 보지 못했던 수를 볼 수 있고, 승패의 원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 역시 복기가 중요합니다. 오늘 나의 삶이 어제의 결과물이라고 백 퍼센트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나 때로는 상당히 관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 왕에 의해 성전 성가대의 책임자로 임명된 아삽은 매우 경건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시편에는 그가 지은 시가 여러 편 수록되어 있는데, 73편을 보면 하나님께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깨끗하게 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데도 시시로 재앙을 당하고 징책을 받으나 악인들은 일평생 형통하게 살고 죽을 때조차 평안히 죽는 것을 보면서 시험에 들뻔했습니다. 그러나 아삽이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악인들의 형통은 복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하게 하여 파멸로 이끌어가는 것이며, 의인들이 징벌받는 것은 죄악에 빠지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이 집에서 복을 누리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욥기를 읽어보면, 욥이 당한 시련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함을 봅니다. 하루아침에 열 자녀가 몰사하였는가 하면, 그 많던 가축 떼를 다 약탈당하였으며, 그의 몸은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악성종양이 생겨 고통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소문을 듣고서 위문차 멀리서 찾아온 세 친구는 욥의 형편을 보자 할 말을 잃었습니다. 곧 그들은 이는 필경 욥에게 숨겨둔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서 회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욥을 오해한 것이었으니 욥기 11절에 이르기를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욥이 그런 재앙을 당할 만한 죄를 짓지 않았음을 말해 줍니다. 이처럼 우리가 겪는 시련 가운데는 우리 자신의 범죄와 어리석은 행위의 결과가 아닌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1:15) 하신 대로 우리는 자신의 죄와 허물 때문에 시련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을 만나거든 당황해하거나 성급하게 단정 짓지 말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겸비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복기해 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저의 마음 눈을 밝혀주시어 저의 죄와 허물을 깨닫게 해 주옵소서라고 구해야 합니다. 회개는 억지로 할 수 없으며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섬기려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지만, 때로 현실의 이익을 위해 신앙의 원칙을 어기고 타협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만 사정이 어쩔 수 없으니 원칙을 양보하자, 아마 하나님께서도 이해해 주실 거야또는 왜 나만 신앙원칙을 지켜야 하지, 너무 고지식하게 믿는 것은 좋지 않아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말하기를 죽은 파리가 향기름으로 악취가 나게 하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로 패하게 하느니라”(10:1)고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소한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수치스러운 결과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제궤의혈(堤潰蟻穴)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는데, 개미구멍이 마침내 큰 둑을 무너뜨린다는 뜻으로 작은 잘못이 큰 화를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이 말해 주듯이, 사소한 잘못을 고치지 않고 용인하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오고 맙니다.

우리는 시련을 만났을 때 그 원인을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나 국가나 사회에 전가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로는 시련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합니다. 성도들은 바깥으로 향하던 눈을 돌이켜 자기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10)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51:)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으면 누구든지 마음이 어두워서 자기의 허물과 죄를 알 수 없으며 계속해서 어긋난 길로 가다가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욥과 같은 의인도 하나님을 대면하게 되자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40:4)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옳으시고 정당하시므로 시련의 원인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욥은 극심한 고난의 끝에 이르러서야 이 사실을 깨닫고 “3)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 6)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42:)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였던 욥은 시련을 통하여 정금 같은 신앙인이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전보다 갑절의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세상에 시련을 전혀 겪지 않는 성도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시련을 통하여 성도들을 연단하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장에는 성도들이 시련을 당하는 까닭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5)…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7)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9)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11)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12)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12:)

우리가 시련을 당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만일 시련이 없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유치한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들기 위해 시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시련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게 하려면 인내로써 시련을 통과해야 합니다. 시편 119편을 지은 성도는 고백하기를 “67)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71)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시련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믿음으로 통과하면 다시금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셔서 자기 뱍성이 회개하면 뜻을 돌이켜 징계를 거두시고 상처를 싸매시며 맞은 자리를 고쳐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징계하시는 것은 아주 멸하기 위함이 아니라 깨닫고 돌아오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탕자의 비유를 보면, 아들이 아버지를 졸라 상속재산을 받아 먼 나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이 아들은 방탕한 생활로 재물을 탕진하였고, 그러고 나자 그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그는 연명하기 위해 들에서 돼지 치는 품꾼이 되었습니다. 그 대가는 돼지가 먹는 쥐염열매를 먹는 것이 고작이었고 그나마 배불리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제야 이 아들은 떠나온 아버지 집을 떠올렸습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이 아들은 면목이 없지만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갔습니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아들을 알아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들이 말하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기를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에게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주었으며 큰 잔치를 열고 즐거워했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를, 아들은 범죄한 우리 인생들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시련을 만났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반성하고 죄와 허물을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회복하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시련의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시련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직 우리가 믿음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생명을 누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의심하였기에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2:)고 하셨으나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오히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는 뱀의 말을 믿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것인가, 뱀의 말을 따를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하와는 뱀의 말을 택하고 그 과일을 따먹고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먹었습니다. 이는 두 사람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뱀을 신뢰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그들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시고 낙원에서 살게 하신 하나님을 불신하고, 피조물에 불과한 뱀의 말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명을 거역했으니 이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와를 꾄 뱀은 마귀를 가리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말쟁이고 인간의 삶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마귀가 하는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거짓말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말을 들으면 반드시 죄를 짓고 패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받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으며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무망하시므로 우리는 그 하신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무한하시므로 언제나 우리의 행복을 위해 보살펴 주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기의 기준이나 생각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판단할 자격이나 능력이 없으며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순종할 뿐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쳐갈 무렵, 모세는 그들에게 당부하기를 “12)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10:)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이 말씀 가운데 언급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서 잘못되었거나 망한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지, 반면에 하나님을 거역하고서 잘되고 흥한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지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욥은 말하기를 나의 가는 길을 오직 하나님께서만 아신다고 했습니다(23:10). 지당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므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아시고 섭리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을 믿는 것보다 하나님을 믿고 우리 삶을 맡기는 것이 현명한 일이 될 것입니다.

현대를 일컬어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풍조와 유행이 변화무쌍하여 내일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오늘 확실한 것이 내일은 불확실한 것이 되고, 오늘 믿고 의지하던 것이 내일이 되면 휴지조각처럼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정세(情勢)를 파악하느라 분주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렇게 살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삶을 지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일컬어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했습니다. 양이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따르듯이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누가 코로나 사태를 예측이라고 했습니까? 코로나 뿐 아니라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새옹지마의 고사는 해피엔딩을 말하지만 모든 세상사가 다 다행스러운 결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불행한 결말일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비결입니다. 이사야 222절을 보니 인간들이 신뢰할만한 대상이 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하여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영원불변하시므로 전적으로 신뢰하고 우리의 삶을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고후 1: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끔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을 만났을 때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유익한 기회로 선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귀히 보시고 모든 시련에서 건져주시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조국 유다 왕국이 멸망하지 않게 하려고 애끓는 심정으로 왕과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의 호소를 귀담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나다. 그리하여 유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주전 586년에 바벨론 군대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처참한 살육이 자행돠었고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 무너졌으며.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힌 채 백성들과 함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권면을 듣고 순종했더라면 멸망을 면했을 것이나 그들은 고집이 세고 의심에 사로잡혀 듣지 않았습니다. 시편 4920절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하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은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유다 왕국의 멸망을 지켜보는 예레미야의 심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그는 애통하는 마음으로 유다와 동족을 위한 애가(哀歌)를 지었는데, 구절마다 비통한 심정이 여실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망 중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생각하면서 소망을 붙들었습니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비록 하나님께서 유다를 매로 아프게 치셨으나 긍휼이 크시므로 자기 백성을 아주 멸하지 않으시고 다시금 은혜를 베풀어 죽을 자리에서 살려내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기다리는 자와 구하는 영혼에게 선을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기다린다함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구하는 영혼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라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묵묵히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믿음이 있는 성도들의 바른 자세입니다.

다윗은 일생일대의 시련을 만났을 때의 일을 이같이 간증했습니다.

“1)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40:)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42:5) 다윗처럼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시련을 만나 망하는 것은 시련 때문이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망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의 인물 가운데 무서운 시련을 겪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은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정과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선진들을 본받아 시련을 은혜로운 기회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25)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26)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아멘!






740   믿음과 행함  mogyang 2021/06/13 11 0
739   생베와 새 가죽 부대  mogyang 2021/06/04 22 0
738   당신은 구세주를 믿는가?  mogyang 2021/05/25 31 1
737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면  mogyang 2021/05/06 84 2
  시련의 때에 할 일  mogyang 2021/04/21 81 3
735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  mogyang 2021/04/06 75 7
734   고난으로 대속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mogyang 2021/04/06 76 5
733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mogyang 2021/03/20 107 6
732   겨자씨 한 알의 비유  mogyang 2021/03/07 103 5
731   하나님을 사랑하라  mogyang 2021/02/15 114 5
730   하나님을 경외하라  mogyang 2021/02/15 93 5
729   표적을 분별하는 성도 (2021년 1월 24일 주일예배 설교)  mogyang 2021/01/31 110 7
728   예수, 그는 어떤 사람인가?  mogyang 2021/01/02 153 3
727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  mogyang 2021/01/02 127 4
72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mogyang 2020/12/14 198 9
725   솔로몬의 탄식  mogyang 2020/12/13 163 3
724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라  mogyang 2020/12/13 126 4

1 [2][3][4][5][6][7][8][9][10]..[44]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zero

[목사님 메일]   [전도사 메일]   [운영자 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