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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사 님 설 교 말 씀 :::


  mogyang(2021-05-25 12:49:03, Hit : 547, Vote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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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구세주를 믿는가?

무제 문서

요즘 사람들은 건강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므로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습니다. 아픈 데가 없더라고 예방 차원에서 검진을 받으려 합니다. 건강한 줄 알았다가 검진을 받아보니 몸의 한 부분이 병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기 몸 상태를 알고 나면 갑자기 심각해지고 걱정에 사로잡힙니다. 의사에게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고, 의사의 처방에 귀를 기울이고 순순히 따릅니다. 그것만이 병을 고치고 건강을 회복하는 길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건강검진의 결과를 신용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그런 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요. 나는 이렇게 건강하다고요라고 말합니다. 의사의 오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대체로 우리는 검진결과를 신용하고 의사의 지시를 따르는 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기가 살 수 있는 최선의 방도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나 사람은 육체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육신뿐 아니라 영혼도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 백성에게 말하기를 “5)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1:)고 했습니다. 온 머리가 병들고,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다는 것은 영혼의 상태를 육신의 상태에 빗대어 언급한 것입니다. 생각하는 지체인 머리가 병들었으니 온전한 생각이나 선하고 의로운 생각을 할 수 없고, 그 대신 불온한 생각, 악하고 불의한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마음이 병들면 결국 자신을 해치는 행동을 하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사야 시대의 유다 백성은 신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의 영적 실상을 알려주고 하나님께 나아와 고침을 받으라고 하셨으나 그들은 끝내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환자가 의사의 진단을 불신하는 것과 같습니다. 의사를 신용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고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영혼의 의사이십니다. 마음과 정신에 치명적인 병이 들었더라도 하나님께 나아가 죄와 허물을 시인하고 회개하면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을 떠나서 죄를 물 마시듯 지으면서 사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면서 심판을 경고했으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대홍수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유다 백성도 비슷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졌고,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추악한 욕심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의 죄를 지적하시고 돌이키라고 간곡히 권하셨지만 기를 쓰고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하였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멸망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방주를 지었던 의로운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에 들어감으로 홍수 심판에서 구원받았으며,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 가운데서도 경건한 자들은 이방 나라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타락한 시대라도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노아 시대나 이사야 시대에 비해 나은 점이 있을까요? 아마 더했으면 더했지 낫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37)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24:)고 하셨습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오로지 육신의 일에만 몰두했듯이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세상일에 전념하느라 자기 영혼의 구원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힘쓰고 애쓰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진지하게 자기 영혼에 대하여 생각할 줄을 모르며 하나부터 열까지 육신의 일을 위해서만 살아갑니다. 그런 점에서, 노아 시대의 사람들과 판박이처럼 닮았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로, 요즘 양심과 도덕과 질서가 실종된 시대상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합니다. 뉴스에 보도되는 사건들을 보노라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사건들이 연일 일어납니다. 생명 존중의 가치관을 찾아보기 어렵고 온갖 종류의 폭력 사건이 쉴새 없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2천년 전에 말세 사람들의 형편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1)말세에 어려운 때가 있으리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2)그때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뽐내고 교만하고 하나님을 모독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감사할 줄도 모르고, 거룩하지도 않으며, 3)사랑이 없고, 용서하지 않고, 남을 헐뜯고, 자제하지 못하며, 사납고, 선한 것을 싫어하고, 4)배반하고, 조급하며, 거만하고,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고, 5)겉으로는 신앙심이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 능력은 거부할 것입니다. 그대는 이런 사람들과 같이 되지 마시오.”(딤후 3:)

성도님들께서는 여기 열거한 19가지의 악덕이 요즘 사람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매일 같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폭력과 살인 사건들을 보면서 세상이 점점 더 악해져 간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이처럼 혼란스럽고 악하게 된 데 대하여 이런저런 이유를 말합니다. 경쟁이 너무 심해서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이라고 하는가 하면, 빈부차가 심해서 생겨난 현상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정확한 진단은 사람들의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심각한 것은, 기독교인들도 조금만 방심하면 이 같은 풍조에 물들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2살 난 입양아 정인이 살인 사건은 많은 사람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더구나 정인이에게 폭력을 가해 죽게 한 부부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이라고 모두 다 선한 것이 아니긴 하지만 이번 사건은 세인들 가운데서도 찾아보기 힘든 비극적 사건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이 땅의 모든 기독교인을 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생겨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디모데후서 3장에 이미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고, 겉으로는 신앙심이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 능력은 거부할 것이라고 이미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기독교인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입니다. 곧 말세가 되면 신앙의 능력을 부인하는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게 생겨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우리는 이 예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 같은 신자가 되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단지 교회에 출석하고, 교리를 머리로 이해하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전능하심을 믿고 삶 속에서 신앙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죄의 세력 앞에서 무기력한 기독교인이 아니라 당당하게 믿음으로 맞서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기독교인답게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행하고,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손해가 나더라도 기독교인으로서 양심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이를 일일이 열거하려면 시간이 부족할 것이나,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기독교인들은 주님 안에서 살아가지만, 비기독교인들은 주님과 상관없이 자기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일을 하든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행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지만 삶 속에 아무 능력도 나타나지 않는 것은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자기 운명을 맡긴 성도들을 위한 것임을 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할 때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마태복음 9장의 말씀은 유대 사회에서 천대받고 이방인 취급 당하던 세리들과 죄인들 곧 불경건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고 삶에 극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말해 줍니다. 유대 나라는 정치적으로는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으나, 내부적으로는 유대교가 지배하는 종교 사회였습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세력을 잡고 특권을 누렸으며, 바리새파 사람들은 지역의 회당들을 중심으로 특권을 누렸습니다. 이 두 종파에 속하지 않은 일반 백성들은 전통적인 신앙을 지켰습니다.

한편, 세리들이나 죄인들 곧 이방인들과 거래하는 세속화된 사람들은 유대인이지만 동족으로서 대우받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사귀려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같은 장소에 함께 있지도 않으려 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세리들과 죄인들도 이 같은 대우를 당연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두개파 사람들이나 바리새파 사람들과 달리 그들을 용납하시고 스스럼없이 만나주셨고 심지어는 그들이 초대하는 식사자리에도 참석하셔서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행동은 그 당시 유대 사회의 통념에 비추어 볼 때 파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세리나 죄인과 교제하는 사람을 세리와 죄인처럼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리 마태가 초청한 식사자리에 기꺼이 참석하셔서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사건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마태는 가버나움 세관에서 사무를 보던 세리였는데, 하루는 예수님께서 세관에서 일하는 마태를 보시고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반 백성도 아니고 하필이면 동족의 미움과 배척을 당하는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마태는 놀랐을 것입니다. 감히 예수님의 제자가 되다니 말입니다. 마태는 뜸을 들이지 않고 즉각적으로 세관에 사표를 던지고 주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자기 집에서 잔치를 열고 예수님과 그 제자들과 동료 세리들과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마태의 집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대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리를 제자로 삼으셨을 뿐 아니라 그가 초대하는 식사자리에 참석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광경을 본 바리새인들이 가만있지 않앗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했습니다. 우리 말에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귀는 것을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하는데. 바리새인들은 너희 선생님도 세리나 죄인들과 같은 부류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조롱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모욕적인 비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비방에 대하여 침착한 어조로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다툴 생각이 없으셨으며, 다만 그들의 영적 무지를 일깨워 주시려고 그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세리와 죄인들을 위한 영혼의 의사를 자처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에는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바리새인들 역시 구원을 필요로 하는 죄인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의하면 세리나 바리새인이나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입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이 스스로를 의롭게 여긴 것은 성경에 대한 무지와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병을 고침 받으려면 먼저 자기가 병든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데, 바리새인들은 영혼에 중병이 걸렸으나 건강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건강하다고 우긴다고 건강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치료받을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세리들과 죄인들이 주님의 용납을 받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사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솔직히 시인하고 주님의 긍휼을 받고자 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다.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혼자 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않으며, 더구나 이 세리와는 같지 않습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런데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내고, 가슴을 치며 ',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서 자기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이 세리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세리 마태는 자기가 영혼의 병자인 것을 알고 의사이신 예수님께 나아왔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스스로를 의롭게 여겼으므로 의사이신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바리새인들보다 세리들이 먼저 천국에 들어가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구원은 기독교인이라고 누구나 다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지식으로 안다는 차원을 넘어 그 믿은 바를 실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명목상 기독교인이 아니라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영락없는 기독교인이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만 기독교인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기독교인이어야 합니다.

천국은 기독교인이 가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은 사람만 갈 수 있습니다. 마태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즉시 사표를 내고 주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이처럼 신앙은 결단을 수반합니다. 세리는 동족의 미움을 받는 천한 직업이었으나 마태에게는 생계를 보장해 준 고마운 생업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더할 수 없이 귀하므로 과감히 사표를 던졌던 것입니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은 이같이 고백합니다.

♪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유혹과 핍박이 몰려와도

주 사랑하는 내 맘 변치 못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영원히 멸망할 나에게 생명을 주신 것을 의심 없이 믿는 것을 말합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셨을 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먹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하라고 하시면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고 생명의 음료이니 너희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하시자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없어 모두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도 가려느냐?”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기쁘고 평안할 때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일로 고통을 받을 때에도 변함없이 믿고 따르는 것이 진실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자기를 높이고 돈을 숭배하고 쾌락을 좇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합니다. 사람들은 기독교의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대신에 이교도들처럼 온갖 것들에게 신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미모의 여배우들은 여신이 되고, 장사를 잘하면 장사의 신이 되고, 공부를 잘하면 공부의 신이라고 부릅니다. 마치 범신론자들이 모든 사물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신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신이 되려는 사람이 구세주를 믿을 리 만무합니다. 그들은 죄로 인해 영혼이 치명적인 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줄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영혼이 병들면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생각이 악하고 추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0)…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22)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23)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7:)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성도들은 주님을 본받아 겸손하고 청결하고 건전한 언행을 하며 생활 가운데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들을 맺습니다(5:). 시험의 폭풍우가 불어와도 전능하신 구세주를 믿고 두려움 없이 이겨나갑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역병이 번져 많은 사람이 고생합니다. 세인들은 코로나 확산의 책임을 애꿎은 교회에 전가하기를 좋아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교회처럼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18)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15:)고 하셨습니다. 기독교는 핍박이 있어야 신앙의 순수성을 보전해 나갈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깊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핍박을 겁내지 말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꺼이 받아야 합니다. 오히려 성도들은 건강한 자로서 영혼에 치명적인 병이 든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복음을 전하고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난날 우리는 다 길 잃고 방황하는 양들과 같았고 죄로 인해 영혼이 병든 자들이었는데, 이제 영혼의 의사로서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사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인이라는 선고를 받은 천국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런즉 구세주 안에서 은혜를 누릴 뿐 아니라, 아직도 죄 가운데 방황하는 불신 이웃에게 영혼의 의사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을 위해 열심 냄으로 구령(救靈)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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